몸도, 마음도.
감기에 걸렸다. 콧물과 기침, 그리고 근육통. 어디서 걸렸는지 모르겠다. 아기와 갔었던 도서관 스토리타임에서 걸렸을까? 임산부 주제에 도서관 스토리타임에 마스크도 안 끼고 다닌 게 문제일지... 입시 결과로 스트레스받은 게 트리거가 되었나 싶기도 하다. 게다가 아기도 며칠간 투명한 콧물이 있었는데, 아기한테 내가 옮은 걸까? 아기는 혹시 집에 먼지 때문에 그런가 하여 집도 청소했고, 청소 덕택인지 좀 나아진 것 같기도 하다. 좀 자고 일어나니 괜찮고, 주변 분들의 마음씀으로 많이 나아졌다. 덕분에 어수선한 몸도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다 (이분들은 나의 답답한 마음 상태나 입시 결과는 모르신다). 자격 없는 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는 은혜로운 일요일이었다.
아마 내일이면 입학처의 답변이 올 것이다. 그러면 이제 결과는 더더욱 확실해진다. 다음 스텝들을 차분히 밟으면 되는데, 서럽고 억울하다. 차라리 아파서, 마음이 아플 에너지도 없어서 다행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입시를 다시 할 마음은 없다. 그냥 어떻게 해서든 돈 벌고 애기들과 남편과 좋은 시간 보내고, 노후 준비하며 살아갈 수 있으면 그게 내가 살 수 있는 최대의 행복한/보람된 인생인 것 같다. 의대 입시 실패라는 것이 내가 꼭 겪어야 했던 경험인 건 아닌 것 같다. 판단력이 부족했던 내가 매우 징그럽고, 싫을 뿐이다. 아니면 겪어야 했다고 믿어봐야 하는 것일까. 미국 생활의 경험치를 올려줬다는 점에서?
사실 오늘 남편과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다. 나는 남편이 말하는 주제에 관심이 없었고, 관심을 쓸 만큼 에너지가 있지 않았다. 남편은 실수로 이유식 용기를 깼고, 어차피 자신이 잘 치울 텐데 그거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한 내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나는 아픈 나를 위해서 육아는 열심히 하지만 뭔가 정서적? 배려가 없는 게 속상했고, 남편은 내가 자신의 수고는 알아주지 않으면서 청소 더 잘하라고 한 내가 서운했다.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둘 다 컨디션이 안 좋다는 데에 있다. 남편은 요즘 일이 많아 일요일인 오늘도 출근하고 돌아왔고, 내일도 휴가이지만 잠깐 회사에 나 갔다 와야 할 수 있다. 게다가 오늘은 거의 육아를 도맡아 했다. 나는 뭐 임신 중이고, 몸도 안 좋고, 입시도 실패한 상황이다. 내가 왜 기분이 나쁜가에 대해서 남편을 설득하고 싶었고, 내가 원하는 사과를 받아내고 싶었는데, 피곤해서 그냥 말았다. 내가 너무 체념적이고 염세적인 태도를 가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남편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남편은 사랑이 있는 가정에서 자랐지만, 혼자 알아서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던 터라 정서적 지지나 배려를 많이 받지 못하고 자란 것 같다. 나는 정서적 지지와 배려에 대한 기준이 남편보다는 높은 편이다. 하지만 남편에게 없는 것을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들고, 불편하다고 얘기는 하지만 사실 딱히 뭐가 많이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도 안 든다. 이 사막에서 서로 싸우고 답답해하면 뭐 하나. 수고와 봉사가 사랑의 언어인 남편을 수용해 주고 이해해 주자는 생각. 하지만 둘 다 컨디션이 좋아지면 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든다. 일단 오늘은 서로 어깨를 툭툭치고, 수고한다며 짧은 포옹으로 휴전했다.
엄마 아빠가 골골, 아웅다웅한 오늘도 아기는 자란다. 아기는 이제 제법 엄마의 눈, 코, 입을 손으로 가리킬 줄도 안다. 언어를 이해한다기보다는 톤과 모션을 이해하는 느낌이기는 하다. 자기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서 음식을 조금씩 먹기도 하고, 빨대컵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조금 알아가는 느낌이다. 보통은 우리가 물을 먹여주는데, 오늘은 자기가 컵으로 물을 마시기도 했다. 이렇게 조금씩, 빠르게 아기가 자라 가고 있다.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기만도 모자란 시간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내어주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