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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녹아 없어지는 나

그래도 나를 사랑하기

by 다시

너무 피곤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의 하루하루가 녹아 없어진다. 내 하루이지만, 내 하루가 아닌 나날들이다.


첫째 아이의 울음소리에 깨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우유를 데워준다. 그리고는 내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는 바닥에 앉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아이가 책장 넘기는 것을 바라본다. 팟캐스트나 유튜브를 뒤적거리지만 들을 만한 게 없으면, 아이가 내 핸드폰에 눈독을 들이기 때문에 핸드폰을 아이의 손이 안 닿는 곳에 올려놓는다. 전날 잠을 설쳤으면 나도 에라 모르겠다, 퍼즐 매트 위에 누워버린다. 아이는 내 안경을 자꾸 만지려고 한다. 나는 안경을 소파 위에 놓지만, 이제 아이가 커서 소파 위 안경을 잡기도 한다. 그러면 차라리 소파 밑에 안경을 놓는다. 여기는 아직 아이가 닿을 수 없다. 자기도 하고, 누워 있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아침 먹는 9시. 아이에게 빵, 바나나, 피넛버터를 아침으로 준다. 아이는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는 빨대컵으로 물을 준다. 별로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는 휴지나 수건으로 아이 손과 테이블을 대충 닦고, 화장실 가서 손과 얼굴을 씻긴다. 아이는 화장실에 있는 물건들 (아기 치약, 로션, 등등)을 가지고 놀고 싶어 한다. 허락해주고 싶지만, 안된다고 하고 뺐는다. 그리고는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때로 아기는 운다. 나는 좀 달래주거나 놀아주고, 바닥에 떨어진 음식 부스러기들을 휴지로 훔쳐 테이블 위에 놓는다. 이젠 테이블 가장자리에 무언가를 놓으면 아이가 서서 그 물건들을 떨어뜨리려고 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놓을 때 최대한 테이블 중앙에 놓아야 한다. 좀 놀아주다가, 도서관에 행사가 있으면 도서관에 간다. 아니면 노래를 불러주거나, 책을 읽어주거나, 하면서 시간이 간다. 11시쯤 우유를 준다(사실 아이 우유 섭취량이 많아서, 이제 간식으로 줘야 한다). 책/노래/대화로 시간을 보낸다. 이때부턴 그저 아이가 빨리 낮잠을 잤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보통 도서관에 가면 도서관에서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잔다. 도서관에 안 갔다면, 아이는 12시에 점심을 먹고 좀 놀다가 오후 1-2시 사이에 겨우 잠이 든다. 1시간 반-2시간 정도 잔다. 언제든 아이가 낮잠을 잘 때, 나는 점심을 먹고, 설거지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책도 본다. 그러다 보면 남편이 오고, 나는 방에 들어가 잔다. 신기하게도, 요즘은 왠지 너무 피곤해서 오후에 낮잠을 자도 밤에 새벽 1시 이전에 잘 수 있다.


원래 첫째는 한동안 잠 방면에 있어 아주 효녀였다. 밤에 우유 먹으면서 잠에 들어서, 그저 침대에 데려다 놓기만 하던 첫째였다. 그런데 요 며칠, 침대에 내려다 놓기만 하면 오열해서, 우유를 먹이던지 노래하며 다독여서 다시 재워야 하는 상태다. 별거 아니지만, 이게 그렇게 힘들다. 다시 잠에 쉽게 들어주는 첫째로 돌아가줬으면 하면서도, 울다가 안아주면 울음을 그치고 내 품에서 잠이 드는 첫째의 모습이 귀엽다. 그리고 동생이 태어나도 첫째가 아기인데, 첫째가 이렇게 떼쓰고 아기짓 하는 것을 잘 받아주지는 못해도 그 마음을 인정해 주어야지 하는 생각도 든다.


요 며칠은 첫째 재우고, 남편과 넷플릭스의 시리즈 <더 레지던스>라는, 백악관 내 살인사건을 다루는 추리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이 시간이 그렇게 꿀 같다. 정말 딴 세상 이야기 같다. 자기 삶을 살고 있는 듯한 캐릭터들. 오늘 본 에피소드에서, 한 등장인물이 나중에 로마를 가고 싶어 하고, 싱글맘으로 연애도 하고 있는 그런 캐릭터였다. 나는 어디도 가고 싶지 않고, 로맨틱한 감정도 그립지 않다. 그저 자고 싶고, 쉬고 싶다. 허리가 아프니 최대한 기저귀를 덜 갈고 싶다. 뭔가 하루하루 삭제되는 기분이 슬프지만, 정말 내 기본 욕구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나의 피로는 임신 때문인지, 육아로 인한 우울/무력감 때문인지 모르겠다. 두 이유 다 맞을 것이다. 둘째를 낳고 나면, 하루하루 더 피곤하겠지. 이 생각에 잠이 안 오거나 무척 슬퍼질 때가 있다. 한편으로는 그때는 임신하지 않은 상태이니, 그나마 좀 나아질까 하는 생각도 있다. 둘째를 낳고 나면, 시간 내어 근력 운동을 더 해보고 싶다. 근데 너무 나에게 강제하려고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일단은 그저 내가 지금 너무 피곤하고, 쉬고 싶은 욕구가 가득하다는 상태임을 그저 받아들일 일이다. 요즘 박우란 정신분석가의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더 생각을 정리하고 싶지만 일단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나의 욕망과 욕구, 쾌락에 솔직해야 한다는 것. 그러면 딸들도 자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는 것. 완벽한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런 나를 수용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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