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날은 역시 혼자 카페에
엄마의 날을 맞아 아침 일찍 카페에 나왔다. 혼자 이렇게 오붓하게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다. 카페는 어머니의 날을 맞아 가족과 브런치를 즐기러 온 어머니, 할머니들로 가득하다. 둘째 출산이 얼마 남지 않은 나는 혼자 독서하고, 브런치 하는 망중한의 시간을 즐겼다. 얼마 전 북클럽에 초대받아 책을 읽고 있는데, 그게 동기부여가 되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나의 눈부신 친구,라는 얼굴 없는 이탈리아 작가의 4부작 중 1권. 작고 가난한 동네에서 자라며, 교육 기회의 유무로 어린 시절 서로의 눈부신 단짝이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주 내용이 이었다. 교육 기회가 있는 아이, 교육 기회가 없는 아이, 가정환경이 안정적인 아이, 그렇지 못한 아이는 정말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여자 아이들의 경우, 공부를 잘하면 좋지만 사실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가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아직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집 형편에 감당할 수 없는 학교를 붙었을 때 부모님은 나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걸까?
고등학교 졸업 며칠 전, 나는 학비를 장기간 못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졸업 후 학자금 대출을 갚고는 나는 학비를 간간히 소액 갚았고, 현재는 소강상태다. 부모님과 연락이 되지 않고 졸업 일자는 다가오자, 학교 행정실은 담임 선생님을 통해서 나와 부모님을 호출했고, 엄마와 행정실 직원 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각서 같은 걸 썼던가, 기억이 안 난다. 다만 플라스틱 파일 같은 곳에 다른 학비 미납자 학생들과 부모들이 쓴 문서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이 기억나는 것으로 보아, 아마 나도 쓰지 않았을까 싶다. 공부도 돈도 없이 신앙만으로 꾸었던 유학에의 꿈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 같은 자리였다. 아, 하나님은 내가 한국에 있기를 바라시는구나/나는 유학을 갈 수 없구나. 그러고는 학비 벌고, 예배드리고, 하며 재수의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해 나와 부모님은 한 번도 다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부모님 대로 학비를 대지 못해 부끄럽고, 나는 나대로 무리해서 명문고를 진학해 놓고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해서 (재수해서 대학 진학) 그랬던 것 같다.
얼마 전 엄마랑 전화를 하다 뜬금없이 이 일에 대해 돌려 돌려 꺼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냥 괜히 과거를 들춘 기분. 내가 원하던 서로에 대한 사과나 반성으로 그 당시에 결론이 나지는 못했다. 그냥 이 일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론 없이 끝났다.
간호대 유예를 신청했고, 의대 유예 신청 형식을 받아놓은 상태이다. 이사는 여전히 가기 싫고, 장학금 등 필요한 일 처리가 많다. 배가 불러 아기 보는 것도 쉽지 않다. 결론 없이 유야무야 하는 선택들을 많이 했었다. 내가 모자라서, 혹은 롤모델이 없어서. 두 딸의 엄마가 되는 지금,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용기 내어 전속력으로 마무리 짓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