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4년

어느새, 겨우겨우 헤맨 만큼

by 다시

올해 말이면 만 35세가 된다. 겨우겨우 살아왔다. 겨우겨우 재수해서 하나 붙은 대학에 들어가고, 겨우겨우 대학을 졸업하고, 착한 남자 만나 겨우겨우 결혼하고, 일본어 배워서 겨우겨우 생존하다가, 미국 와서 겨우겨우 미국의 가장자리에 정착하고, 결혼 한지 거의 9년 만에 겨우겨우 만 35세 이전에 연년생의 엄마가 되었다. 겨우겨우 느릿느릿 살아오다 보니, 곧 만 35세이다. 시간 참 빠르다.


어제 성경 묵상 본문 중 하나는 요한복음 5장의 아픈 사람에 관한 본문이었다. 주인공은 베데스다라는 연못 근처에서 아주 오랫동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이 연못은 물이 동할 때 선착순 1명에 한해 병 치유의 기적이 있는 곳이다. 그는 낫고 싶었지만, 자기를 들어다 연못에 데려다줄 사람이 없어 38년간 그 근처를 맴돌고만 있었다. 희망의 가능성에 너무 오래 고문당한 상태. 혹은 희망이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어느 순간 하루하루 안주한 상태. 베데스다의 기적을 바라면서도 나는 그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체념한 상태. 세상은 영상 빨리 감기 하듯 돌아가는데, 본인은 화면 밖 관객이 된 것 같은, 고립과 소외의 상태. 그 사람은 몸과 마음 모두 아픔과 외로움에 지쳐있는 상태였다. 예수님은 주인공에게 자신을 소개하지도 않고, 낫고 싶은지 물어본다. 체념에 익숙해진 오늘의 주인공은 자신을 아무도 연못에 넣어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그를 연못에 던져주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게 한다. 그리고 그는 걷는다.


예전에는 이 이야기를 듣고 38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감도 오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만 38세가 멀지 않은 지금, 이제는 감이 온다. 거의 내 평생에 걸쳐 씨름해 온 나의 문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역시 만 38세가 얼마 남지 않은 남편과 긴 대화가 오갔다. 교만, 자신만의 원칙, 현실 도피, 나태 등 다양한 단어들이 오갔다. 그리고 부족한 사람들에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는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 문제들은 당장 해결되지 않겠지만, 문제 인지 또한 해결의 시작이다.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문제와, 모르는 문제까지 고치고 싶다고, 그런 장애물들을 박차고 걸어가고 싶다고 기도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행운임을 알면서도, 자주 도피하고 싶다. 핸드폰으로, 폭식으로, 팟캐스트 검색, 나의 고민 등으로. 잘하고 싶어서 두려운 것이다. 계획을 세우자니 다 해내지 못할 것 같아 두렵고, 매뉴얼 없이 뭐라도 시작하자니 막연하고, 매뉴얼은 답답하다. 현재를 살지 못하고 그 세 가지 상태에서 맴돌다 보면 시간은 가버리고 한숨이 나온다. 물론 육아는 희로애락, 총천연의 감정을 경험하는 현장이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감격스럽다. 이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함을 인정해야 정신 건강에 더 좋은 것 같다. 만삭에 14개월 아기를 돌보는 일은 고난도다. 어제는 이 고생에 지쳐버린 하루였지만, 오늘은 아이와 더 눈을 맞추고 사랑을 표현하는 데에 에너지를 쓰는 하루이고 싶다. 갈 지자로 걷더라도, 기더라도,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말자고 생각해 본다. 초고속, 직진, 이런 말들은 나랑 어울리지 않지만, 어디서 본 것처럼 헤맨 만큼 내 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또 오늘 하루를 지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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