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없는 육아와 답 없는 입시 결과에 답답할 때
둘째를 기다린다. 이젠 언제든 태어날 수 있다.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허리가 아파서 아고고.. 를 입에 달고 산다. 아기는 마지막 초음파를 보니 여전히 작은 편. 누가 소고기랑 수박이 아이 크기를 키우는데 좋다고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요즘 내 입맛이 그런 건지 소고기랑 수박이 당겨서 요즘 많이 먹고 있다. 뭔가 기력이 달리는 거 같아서, 코스트코에 소꼬리를 팔길래 핏물 빼고, 인스턴트팟에 1시간 익히고, 1시간 끓여서 소꼬리 곰탕을 만들었다. 소꼬리곰탕 먹은 지 너무 오래돼서 무슨 맛이어야 하는지 모르는데, 뽀얗게 올라온 거 보면 잘 된 거 같기도 하다. 나름 지방도 잘라냈고, 냉장고에 넣어놓았다가 기름도 한번 걷어냈다. 시댁에서 도와주시러 오신 지 3일째. 덕분에 잠도 많이 자고 훨씬 수월하다. 둘째 낳으러 가면 혼자 남을 첫째 걱정도 안 해도 된다.
시댁과의 관계는 쉽지만은 않았다. 잘 맞는 소수의 사람들과 편하게 지내오던 나에게 문화도 배경도 다른 시댁은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하지만 몇 년에 걸쳐 봐 온 시댁은 착한 분들이었다. 표현 방식과 문화가 다를 뿐. 가족마다 모두 다른 문화가 있다. 적절히 웃어넘기고, 못 본 척하면서 지내고 있다. 저분들도 나의 어떤 부분을 참고 있겠거니, 하면서. 그리고 미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마음에 굳은살이 늘은 것도 시댁에 대한 내 마음을 개선하는 데에 한몫한다. 천차만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 그냥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당신들 갈 길 가소! 나는 내 갈 길 갑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만사 편하다. 내면의 평화는 소중하고, 나의 소중한 제한된 에너지를 긍정적인 곳에만 쓰고 싶기 때문.
소꼬리 곰탕과 한인 슈퍼에서 산 김치를 먹으며, 원기를 보충해 본다. 나의 소중한 체력. 요즘 쉽게 방전되는 나의 체력. 체력 방전은 정신 건강의 방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육아는 분명 축복이고, 임신도 그러한데, 내 몸과 집에 갇힌 기분이 들게 된다. 육아에는 출구가 없다는 육아 선배의 말이 딱 맞다. 내가 출구가 있다고 느끼든 어떻든, 첫째는 잘 자라고 있다. 점점 서있는 시간이 길어간다. 기저귀 때문에 더 뭉툭한 뒤태를 자랑하며 어제 보다 더 오래 서있는 나의 아기. 1년 3개월을 바라보며, 드디어 홀로 서기 시작한다. 한 걸음씩 걷는 횟수도 늘었다. 한 걸음 걷고는 바로 앉아버리곤 하지만, 기특하다. 많이 컸다. 링을 꽂는 장난감도, 원래는 링을 빼기만 했었는데 이제 링을 다시 꽂을 줄도 안다. 펜스에 옷걸이를 걸었다가 빼는 것을 좋아하는데, 자기 맘대로 안되면 소리 지르면서 성질내는 것도, 바닥을 두드리는 것도 귀엽다.
밤에 잠에 들려고 할 때마다 작년 출산의 기억이 떠올라 괴롭다. 왈칵, 하고 양수가 터지던 기억. 고통에 몸부림치던 병원 가는 차 안. 에피듀럴 주사의 따끔함. 아기가 잘 빨지 못해 모유수유에 어려움을 겪은 것. 내가 운동을 심하게 해서 아이가 37주에 나온 건가 슬펐던 기억. 반만 걸린 무통과 길고 긴 진통. 이걸 또 해야 한다니 내가 미쳤구나, 싶다. 선배맘들 이야기를 들으며, 연년생 대학 학비 걱정이 벌써부터 들기도 한다.
동네 의대 대기자는 꽤 많이 빠졌고, 3명만 더 빠지면 나에게도 기회가 온다. 작년 사이클을 보면 지금 시점부터 오리엔테이션까지 1명 정도 빠졌다. 다 학교 확정했을 때라서 솔직히 3명이나 더 빠질 것 같지 않다, 현실적으로 보면. 어떤 결과이든 나에게 필요한 결과일 거라고 믿고 있지만, 때로 불안감과 걱정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 오늘은 성경공부에서 사도행전에 대해 배웠는데, 바울이 화끈하고, 열정적이고, 직설적인 스타일이라 그런지 하나님도 그런 식으로 바울에게 일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지근한 스타일이라서, 이렇게 대기자 명단에 아슬아슬하게 머물며 기도하게 된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후회 많았던 입시 생활, 다시 하고 싶지 않고 다시 한다고 해도 더 잘할 수도 없다. 나는 나로 살뿐. 1등으로 떨어지나 꼴찌로 떨어지나 떨어진 건 똑같다. 소아시아로 가고 싶던 바울을 마케도니아로 인도하시고, 아테네에서 바울의 가진 재능으로 초기 기독교 개론을 전하게 하신 주님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때로는 기적으로, 때로는 은인들로 바울을 도와주신 하나님을 생각해 본다. 나는 바울과는 180도 다른 사람이다. 그래도 같은 하나님이 나를 살피심을 기억하며, 나의 계획과 생각에 매몰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