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넣기에는 아플 것 같지만 그래도 너무 귀여운 나의 첫째. 15개월을 지나며 나의 첫사랑은 점점 자아가 드러난다. 고양이 음수대를 가지고 놀고 싶어 한다거나, 부엌에 들어오고 싶어 하거나 할 때, 하지 말라고 하면 아랫입술을 삐죽 거리며 얼굴이 빨개지고 눈이 쳐진다. 그리고는 눈물이 맺힌다. 와앙~하고 울지는 않고, 눈물이 맺히는 수준에서 멈춘다. 체념이 빠른 편. 뭘 만지고 싶거나 입에 넣고 싶을 때 우리 한번 싹~ 쳐다보는 것이 너무 웃기다.
둘째가 태어나고 첫째는 꽤 잘 적응해 주었다. 다만 내가 들어서 안아주지 못하니 그것이 좀 서러운데, 할머니와 아빠가 잘 놀아주고 안아줘서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다. 다만 오늘은 오전 6시에 일어나고, 낮잠을 너무 늦게 잔 데다 1시간만 자고 아빠가 깨웠더니 기분도 상태도 안 좋았나 보다. 혹은 배가 너무 고팠던 걸까. 4시 반쯤부터 30분을 대성통곡, 오열이 시작됐다. 첫째나 우리나, 말은 안 통하고 서럽고, 난감한 시간이었다. 갑자기 확 화나는 게 남편은 자기 성격 닮은 거 같다고 한다. 다행히 5시에 저녁을 주니 저녁은 먹었고, 먹다 보니 기분이 나아졌다. 이건 나 닮은 듯. 그러고는 꽤 해피하게 저녁 시간을 마무리했다.
첫째의 오열이 귀에서 맴돈다. 화통을 삶아 먹은 듯, 단전에서 울려 퍼지는 분노의 울음. 그렇게 첫째가 오열을 할 때는 1초가 1분 같고, 표정은 멍해진다. 첫째는 모든 게 처음이라 그런지, 뭔가 늘 긴장하게 되고 압도되는 듯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첫째가 곤히 잠든 지금, 첫째가 그립다. 구글 포토에 가서 첫째 사진을 본다. 초보 엄마와의 험난한 생활을 예상하곤 마음을 단디 먹고 나왔는지, 아이는 37주에 나왔음에도 이미 많이 자라서 태어났었다.
첫째는 진통도 너무 예상외로 빨리 시작되고, 나올 때도 12시간이나 걸렸고, 나왔을 때도 3.6킬로였어서, 귀여운 아기라기보다는 뭔가 나와 아주 다른 생명을 맞이한 느낌이었다. 푸르뎅뎅한 피부와 콘 모양의 머리. 저렇게 큰 아이를 내가 낳았다고? 하는 생각이 컸었다. 그리고는 소아과 분들이 아기의 오른쪽 무릎이 문제가 있다고 해서 전문의를 만날 때까지 2주간 걱정하며 지냈었다. 처음 젖이 돌 때는 또 왜 그리 아프던지, 죽는 줄 알았다. 게다가 아이는 젖을 잘 빨지 못했고, 모유수유 동영상을 아무리 봐도 나는 모유수유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이는 못 빨고, 나는 모유가 잘 나오지 않고. 사실 모유수유만을 고집할 이유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분유를 먹이게 되었다. 그때는 내가 아직 수험생이었기 때문에, 원서 제출과 시험 등으로 육아 말고도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아직 엄마로서의 나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준비가 덜 되었었다. 이방인으로, 의미 있는 교류 없이 살다 보니 고립되어 더욱더 과잉이 된 나의 자의식. "나"로만 꽉 차서,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처리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사실 첫째가 돌쯤 되어서야, 누군가를 보호하고 돌보는 것에 익숙해지고 내 자아를 첫째와 나눠 쓰는 것에, 혹은 때로는 정말 넘겨줌에 적응이 되었었다. 그리고 아기 때의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고, 따라서 얼마나 소중한 가도 이해가 되었다. 아기가 나의 늘어난 할 일이나 책임이 아니라 그 이상의, 귀중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나를 엄마로 만들어준 첫째가 너무너무 예쁠 때쯤, 둘째를 낳게 되었다.
둘째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모유수유를 하고 있다. 6시간? 정도 진통하고 2.7킬로로 태어난 둘째. 둘째는 낳자마자 모유를 잘 빨았다. 그리고 작아서 그런지 품에 더 착, 안겼다. 첫째 때 유축하던 기억이 너무 싫어서, 그냥 내 컨디션이 허락하는 한 모유수유를 하려고 했더니 꽤 수월하게 진행 중이다 (동영상 많이 볼 필요 없고, 그냥 최대한 아기를 안고 모유를 주려고 하면 되는 거였다). 밤에는 분유를 준다. 이렇게 하고 있으니 둘째도 완모는 못하지만, 그래도 첫째보다는 오래 모유를 줄 수 있을 거 같다. 다만 모유수유하면서 첫째를 어떻게 돌보지, 하는 생각은 든다.
첫째는 처음이라 버겁다. 그런 만큼 애틋하고, 뭘 해도 자랑스럽다. 둘째는 수월하다. 그런 만큼 그냥 귀여운 것 같다. 첫째도 울고, 둘째도 울면 집이 응급실이 따로 없다. 그래도 아장아장, 쿵쿵 걷는 첫째와 쿨쿨 곤히 잠든 둘째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왜 많은 여성들이 전업 주부를 선택하는지 알게 된다. 이 아이들만큼 확실히 나와 관련된 일이 없다. 다른 일들은 다 나 아니어도 된다. 그러나 이 아이들의 생물학적 엄마는 나뿐이다. 생물학적 엄마라고 자동적으로 좋은 엄마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이 훨씬 높다. 가족에서의 나의 자리를 비우면서 까지, 꼭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을까. 뭘 얻든, 아이들과 멀어진다면 무슨 소용일까. 우선은 잠을 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