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고 있을까
오늘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내가 신청하고 싶은 장학금은 공부와 레지던시를 마친 후 재향군인 병원에서 6년 정도 일해야 한다. 재향군인 병원이 어떤지 좀 알고 싶은데, 아이들을 돌보며 일할 정도로 시간을 낼 수는 없어서, 시간 운용이 자유로운 봉사를 시작했다. 장소는 동네의 재향군인 병원의 응급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응급실인데, 결국 다시 응급실이다.
큰 병원 응급실은 아니지만 동네 어전트케어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았었다. 응급실 특유의 빠르고, 환자를 근본적으로 치료한다기보다는 안정화에 중점을 두는 진료가 재밌어 보이기도 했지만 답답하기도 했었다. 기본적으로 진료자가 환자를 다시 보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 않은 공간. 스크라이브로서의 일은 결국 적응했지만, 나는 응급실/어전트 케어라는 공간의 "일회성"이 잘 적응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퇴근하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기에 결국 오후 시간에도 운영되는, 응급실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사실 지난주에 시작했는데, 봉사활동 전부터 컨디션이 안 좋더니 갑자기 식은땀이 나고 몸이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집에 와야 했다. 결국 약 먹고 만 하루를 꼬박 앓았다. 더운데 에어컨을 조금이라도 틀면 너무 추워서 폭염에 에어컨도 못 키고 운전하고 집에 온 기억이 난다.
오늘 드디어 본격적인 시작. 일찍 가서 배지도 픽업하고, 응급실에 도착했다. 내가 주로 하는 일은 환자를 엑스레이 실이나 시티 이미지를 찍는 곳으로 운송하는 일이다. 배지 픽업하는 곳에 있던 젤리가 날 살렸다, 계속 서있으며 대기 타다가 환자를 휠체어에 태워서, 혹은 침대채로 이동시키는 일은 체력 소모가 많이 되는 일이었다. 출산 후 오른쪽 골반이 자주 아픈데, 끝나고 집에 올 때도 아팠다. 재향군인 병원의 환자들은 확실히 전에 일했던 어전트케어와는 다르다. 짧은 관찰 결과를 말하자면, 일단 당연히도 환자들 중 소아가 없다. 환자들은 퇴역군인이라 그런지 대부분 중장년층의 남성들이다. 또한 환자들과 스태프들 모두 퇴역군인들이 많아서 그런지 인내심이 많은 느낌이랄까, 뭔가 느긋하면서도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이다. 일반 병원의 날 선 분위기가 좀 덜한 것 같다.
비슷한 시간에 봉사하는 B와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친절하고 사명감이 남다른 사람이다. 침대를 어떻게 끄는지, 이미징 촬영 장소로는 어떻게 이동하는지 등에 대해 다양한 팁을 주었다. 환자들과도 금방 라포를 형성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나의 아이들 사진을 보고는 귀여워해 주어서 고마웠다. 환자분들도 친절했다. 봉사자가 하는 일을 고마워해주었다. 자신의 군 복무 경험에 대해 조금씩 말해주기도 했고, 한국과 인연이 있는 분들도 있었다. 어떤 환자와 그분의 군복무 이야기를 이야기하다가, 자녀가 있는 여성 군인의 고충 (파병) 이야기를 들었다. 군 장학금도 고려하던 나로서는 힌트 (신청하지 않는 방향으로)를 들은 느낌이었다. 인터넷에서 읽은 이야기이긴 했지만, 실제로 들으니 더 도움이 되었다.
돌아오고 나니, 집이었다. 산후조리 도와주러 와주신 엄마의 정성 담긴 저녁 식사를 먹으며, 첫째가 내가 없는 동안 내 방문을 두드리며 날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이 아팠다. 한편으로, 나는 오랜만에 미국인 어른들과 이야기하며 충전도 되고, 자극도 되었다.
사실 지난 이번 화요일까지만 해도, 나는 호르몬의 영향에, 붙어도 붙은 게 아닌 것 같은 입시 결과에다가, 그나마 이런 결과도 아이들이 어려서 포기해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했었다. 사실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화요일에 산부인과 검진으로 만난 내 담당의사와 이야기하다가, 내가 붙은 학교의 학생들의 산부인과 로테이션을 감독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분 자신은 의대와 레지던시를 마치고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나에게 의대와 육아를 병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You can make it work"). 물론 그 사람이 긍정적으로 이야기한다고 해서,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똑똑하지 않다. 공부는 아주 힘들 것이고, 나는 아이들과의 시간을 아주 마음 아프게 포기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다른 가족의 육아 도움도 없을 것 같다. 착한 남편과, 데이케어뿐.
설상가상으로, 얼마 전 통과된 법안 때문에 대학원 진학자들의 정부 학자금 대출에 연간 금액 제한이 생겼다. 따라서 내가 신청하는 장학금들의 경쟁률이 더 세질 것 같다. 쟁쟁한 사람들의 스펙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나의 나이, 능력 등을 생각하면 갑갑하다. 일단은 어쩔 수 없다. 장학금 지원 관련 하는 데 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도 안되면, 다른 길을 찾아 성실히 임하면 된다. 어떤 결과든 희소식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너무 지치거나, 우울해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다음 챕터를 향해 뚜벅뚜벅 기쁘게 걸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