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게 다 속상한 며느리

다 내 선택

by 다시

이것도 시간이 많아서 그런 걸까. 시댁과 전화통화를 하는데 내가 먼저 안부를 묻지 않으면 절대 나의 안부를 묻지 않으신다. 전에 이민 생활의 힘듦과 자신이 아이들 낳고 키우는 게 힘들었다는 말씀 자주 하셨는데, 이민 생활의 힘듦이야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종류지만 아이들 낳고 키우는 것이 힘들었다는 말씀은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입에 늘 이 말이 고여있다. 혼자 두 명 키워 보셨어요?


이런 말이 얼마나 쓸데없는지는 알고 있다. 아이를 연년생으로 낳은 것은 나의 선택이다. 하지만 나는 시댁이 도와주신다는 약속을 받고 연년생으로 낳은 것이었다. 여러 사정 상 그것은 안되게 되었다. 다 이해가 가는 상황인데, 나는 소인배라 때로 화가 올라온다. 친정과 떨어지게 되는 결혼을 한 것도 나고, 늦게 아이를 낳기로 한 것도 나고, 연년생을 낳기로 한 것도 나다. 아이들을 키울 때 주변의 도움은 있으면 좋지만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내 친정도 못 도와주는데 시댁한테만 바라는 것도 사실 어불 성설이다. 여하튼 노오력이라도 해서,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나다. 나는 결혼을 통해 나의 밑바닥을 자주 확인한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건강한 나의 딸들. 감사할 일들 뿐이다. 나의 아이들을 내가 키우는데 왜 힘든지 모르겠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이야 당연한데, 요즘 정신적으로 힘들다. 몸이 힘들어서 마음도 힘든 걸까? 하나 키울 때와 둘을 키울 때는 기동력이 정말 다르다. 어디를 나가는 것이 훨씬 힘들다. 엄마와 미끄럼틀을 타고 싶은 2살 다되어가는 첫째와 엄마 품에 안겨있고 싶은 6개월도 안된 둘째. 둘째를 아기띠에 매고 첫째와 미끄럼틀은 탄 적도 있는데 아마 그걸 누가 사진으로 찍었으면 가관이었을 것이다. 둘째는 엉겁결에 롤러코스터를 탄 셈. 오늘 아침은 둘 다 비슷하게 일어나 배고파했던 데다가 둘 다 나를 찾아 정말 몸이 두 개였으면 하고 절실히 바랬다. 첫째는, 나를 정말 좋아한다기보다는 둘째가 나한테 안겨있는 것이 너무 샘이 나는 것 같다.


정신적으로 힘든 건, 어쩌면 괜히 연년생을 낳아 두 아이 모두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 그렇다. 나야 내가 선택한 힘듦이니 어떻게든 감당해야 하고 사실할 수 있지만, 두 아이는 내 의지로 이렇게 터울이 적게 태어나 사랑을 충분히 못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 괴롭다. 과도한 질투나, 혹은 애정 결핍을 갖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 놀다가 가끔 앵~ 하고 우는 첫째를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정신적으로 나는 건강하지만, 때로 내가 도움을 잘 청하지 못하고, 잘해야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는 그런 성향이 있다. 나의 딸들이 그런 성향들을 타고났을까 봐, 그리고 연년생으로 태어난 것이 그런 성향을 트리거할까 봐 걱정이다.


다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연년생 딸들에 대한 미안함은 나중에, 아이들과 더 소통이 될 때 더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힘든 건 어쩔 수가 없다. 내가 뭘 해도 invisible 하다고 느껴지는 시댁과의 관계. 한편으론, 내가 뭘 그리 바라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날 생각해 주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엔 산후조리 때 많은 도움을 받았고,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에겐 나도 무관심하면 된다. 도리를 다하되 관심이나 마음을 주지 않기. 사람들은 다 관심과 사랑의 기준이 다르다.


나는 내 딸들에게 어떤 친정 엄마가 될까. 아낌없이 주되 존경받는 엄마가 되고 싶은데, 그건 가능할까. 밤이 깊어간다. 딸들은 또 하루 컸고, 난 또 하루 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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