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시작된다
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들었을까. 뭔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훨씬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혹은, 훨씬 더 좋은 것들은 내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착하고 성실하고, 잘 도와주는 타국 출신의 남편은 정말 나를 위해 하늘이 내려준 선물 같았다. 어디서든 일할 수 있고, 어디서든 살 수 있어 보이는 남편이 너무 듬직해 보였다. 사실 선물 맞고, 듬직한 것도 맞다.
남편은 극안정 지향 주의. 학생인 나와 살면서, 혼자 가장이 되면서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 큰아들, 외벌이... 어깨에 늘 짐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 나는 그냥 무심코 넘기던, 남편만이 해오던 고양이 정수기 청소가 얼마나 번거로웠는지 알게 되면서, 다시금 남편이 얼마나 혼자, 그리고 묵묵히 고생해왔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은 가정에 충실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남편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저 정도 실력이면 더 도전하고 욕심부려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있다. 그러나 나는 평강 공주가 아니다. 나는 알지 못하는 다른 분야에 이미 열심히 종사하고 있는 남편한테, 뭘 더 해보는 것이 어때, 이렇게 해보는 것이 어때라고 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느껴진다. 이제 우리도 30대 중반, 누군가의 조언과 제안으로는 한계가 있다. 자신이 원해야 열심히 할 수 있고 길이 생긴다.
지금의 소도시에서의 안정된 삶을 감사하게 여기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과는 별개로, 내가 생각했던 행복했던 이민, 결혼 생활에 대한 꿈과 환상이 다 걷힌 기분인 것은 사실이다. 이것도,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내 성향 때문일 수 있겠다. 촌스럽고 유치하지만, 결혼 전에는 남편과 무엇이든 꿈꿔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은 남편을 힘입어 내가 무엇이든 꿈꿀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도 나를 힘입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보였다. 하지만 10년이 다되어가는 지금, 나는 남편과 나의 객관적인 능력을 다 파악했다. 내가 의사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 늦은 나이에 비-수술과 의사를 해서 우리의 삶이 그렇게 크게 좋아질 것 같지 않다. 남편은 지금 다니는 종류의,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면서 살 것 같다. 누군가의 힘을 입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힘을 입어도 결과를 못 내는 사람도 입고, 무엇이든 다른 사람의 것을 쓰는 데에는 대가가 있다, 최소 내 마음의 가책이라도.
아직 젊고 철딱서니가 없는지, 우리의 안정된 이 소도시에서의 삶이 답답하다고 느껴진다. 대안도 없으면서. 그냥 우리의 능력치가 다 파악되었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손에 꼽을 수 있게 추려지면서 뭔가 허탈하다. 나의 꿈과 환상에 빠져서, 원가족과 떨어지고 모국어와 익숙한 문화에서 떠나온 결과가 이거라니. 이렇게 사는 게 목표라면 모국에서도 충분히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혹은 더 적은 노력으로 이렇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차라리 남편을 그때 한국 직장을 잡으라고 할 걸 그랬나. 왜 남편 직장부터 생각하나. 내가 졸업하고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생각부터 했어야지. 내가 그럴 깜냥은 되었나. 고등학교 졸업 당시부터 문제였지. 아니 입학부터 문제였지. 그렇게 생각하면 문제 아닌 것이 없다. 연년생 육아로 힘들어서 그런지, 그리고 첫째의 말이 너무 느려서 그런지 삶이 너무나 비루하게 느껴진다. 비루한 내가 이루어가는 최선의, 비루한 삶.
확실한 건, 동경과 꿈으로 지탱하는 삶에서 이제 벗어나고 있다는 것, 벗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 누가 내 삶을 바꿔줄 수 없다는 것. 내가 비루하면 삶은 비루하다는 것. 내가 얻은 것만 나에게 남는다는 것. 누군가를 바라볼 때, 특히 그것이 남편과 자식이라면, 꿈과 환상은 빼고 그들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내가 하지 못한 무언가, 내가 동경하는 무언가를 이뤄줄 거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나의 비루함도 그냥 그대로 바라봐 주고, 받아 들어야 한다는 것.
곧 결혼 10년 차. 진짜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꿈도, 희망도, 환상도, 동경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