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치라니

그럴 바엔 알리오 올리오

by 다시

어제는 사람들에게 실망한 날이기도 했고, 사람들한테 여전히 실망하는 나에게 실망한 날이기도 했다. 대화를 하다가, 자존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고치고 친구들을 더 사귀어보라는 말을 들었다. 혹은 내가 그렇게 이해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 나도 내가 자존감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들이 요즘 한 둘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왠지, 자존감 고쳐보겠다고 계속 그 문제에 매몰되어 봤자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곧 만 35살. 평생 이런 자존감으로 살아왔다. 더 나아질 수 있을까 과연? 그리고 사실, 그렇게 나쁜 자존감도 아니다. 이불킥 하는 순간들도 있지만, 그래도 꽤 잘 살아왔다고 나를 토닥거려주곤 한다. 착한 사람과 결혼도 했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고, 잘은 아니어도 하루하루 내 손으로 건사하고 있다. 대학 학비는 내가 갚았다. 알바였지만, 일도 해봤다. 학교들도 합격했다. 멍청한 선택들도 많이 했지만, 그게 내 최선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날 끌어주기를 아주 바라왔지만, 누가 누굴 끌어주나. 그냥 인생은 내 하기 나름이고 그게 내 실력. 결국 선택하는 것도 책임지는 것도 나의 몫. 누군가가 꿀팁을 주면 좋겠지만 그건 선물일 뿐 디폴트는 아니었다.


나는 교회에서 신앙 생활 하면서 만난 친구들이나, 단체 생활을 하다가 나랑 같이 어쩔 수 없이 엮여서 같이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 말고는 친구들이 없다. 오래 봐야 알고 싶은 사람인가 보다, 나는. 아마 나한테서 얻을 것이 없어 보이기에 그럴 것이다. 인정한다. 실제도 그렇고. 어차피 나는 여러 사람 신경 쓸 능력도 에너지도 없다. 그냥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는 스타일이다. 그냥 내 생긴 대로, 친구가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살아가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를 고쳐서 친구를 더 만들라니. 다른 누군가도 그런 소리를 했었다. 나가서 친구를 만들라고. 지인을 만들라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겠지? 하지만 나는 지인을 만드는 일도, 친구를 만드는 일도 힘들다. 그냥 내가 한번 대접하고, 말을 걸고, 안부를 물어주고, 이런 식으로 관계를 시작할 순 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들인 시간이나 노력이 헛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잘 안 맞지만 그때 같이 좋은 시간 보냈으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렇게 누군가에 상처받거나 안 맞는다고 느끼는데, 다른 사람도 나에게 그렇게 느끼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늘 생각한다. weird와 bad를 구분하되, bad만 걸러내면 된다. weird 정도야 얼마든지 감당가능하다, 서로 예의만 어느 정도 갖춘다면. 전에 장난 삼아 본 인터넷 무료 사주에서 나는 사주에 화개살이 있다고 했었다. 뭐 외롭고 고독하고, 예술인? 종교인? 의 살이라고 했던 듯. 예술인은 아닌 것 같고, 그래도 이렇게 다 자는 시간에 나 혼자 브런치에 끄적이면서 혹은 신앙생활을 통해 숨통을 조금씩 트이는 것 보면 맞는 말인 것 같았다.


글쎄, 곧 만 35세다. 젊다면 젊은 나이지만 중년. 이 시점에서 나를 바꾸고 친구를 갑자기 만들고 이런 게 가능한가.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에겐 가능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별로 나를 그렇게 바꿀만한 이유를 못 찾겠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어쩌면. 하지만 그냥 친구를 더 사귀기 위해서? 아니다. 이제 학부형이 될 테니, 아이 친구들 부모에게 좋은 인상은 아니어도 나쁜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더 꾸미고 그럴 생각도, 계획도 있다. 하지만 그냥 나가서 캐주얼한 친구 만드는 것이 나에겐 늘 어려운 일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데, 나는 그냥 받아들였다. 나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쓸데없이 진심인 편이고, 비실용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 그런 것이 내가 친하게 지내고 싶은 혹은 나와 어쩔 수 없이 지내야 하는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준다면, 슬픈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자존감은 오락가락 하지만 대체로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결정적으로, 뭘 한다고 더 좋아질 것 같지가 않다. 약을 먹으면 기분이 훨씬 좋아질까 싶기는 하다. 아님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걸 시작해서 살이 빠지면 더 확 행복해질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상담이 도움 될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상담사가 별것 아닌 것으로 징징댄다고 생각할 거라고 의심하는 내 마음이 문제일 것이다. 나에겐 너무 큰 문제인데 상담사에게 나의 일을 들어주고 대화하는 것은 돈 받고 하는 일이다. 뭔가 나의 아픔이 누군가의 일이라는 사실이 늘 나는 불편했다. 전에 생명의 전화 봉사활동을 한 나의 얕은 경험에 의하면.


요즘의 나에게 변함없이 힘이 되어주는 건, 내가 요즘 점심시간에 아이들 둘 다 자거나 혹은 둘째만 깨어있을 때 후다닥 해 먹는, 알리오 올리오다. 면을 삶고, 면수를 조금만 그릇에 담아놓고 버리고, 면 삶은 그릇에 면이 삶아지는 동안 만든 편마늘을 올리브유에 볶다가, 면을 섞고 올리브유, 약간의 간장, 멸치액젓을 약간 넣어 만들어내는 1.5인분의 알리오 올리오. 그 파스타를 허겁지겁 먹고, 먹어도 먹어도 꽤 오래 줄지 않는 것 같은 그 느낌이 뭔가 나의 마음에 안정감을 준다. 게다가 혼자 후루룩 먹을 때 오는 그 해방감. 따뜻한 파스타가 내 위장에 척척 들어갈 때마다, 왠지 마음도 채워지는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든다. 착각이다. 마음은 안 채워진다. 하지만 너무 달콤하고 편안한 착각이다. 죄책감에 약간의 샐러드를 먹는다. 그러고는 남편이 오고 나서 대화 몇 마디 하다가 나는 들어가 낮잠을 자버렸다. 혈당 스파이크일까? 방금 체중계에 올라가 보니 1킬로가 쪘다. 첫애 임신 전과 비교하면 3킬로가 찐 샘이다. 나는 콜레스테롤이 높은 편. 음식 조절하고 체중 조절 해야 한다. 나중에 내 아기들 산후조리 해주려면 건강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모든 게 실망스러울 때에는, 그리고 불확실할 때에는, 그냥 야매 알리오올리오만 한 위로가 없다.


폭식은 부끄러운 일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셀프케어는 아니다. 뜨개질, 산책, 조깅, 베이킹 이런 건 다른 사람에게도 말할 수 있는 셀프케어다. 하지만 폭식은 좀 다르다. 그렇지만 난 폭식이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하려 한다. 폭식은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물론 나에게는 안 좋다. 그렇지만 내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나를 해하겠다는데, 타인이 무슨 상관인가? 약간의 마늘과 파스타면이면 경제적으로도 큰 무리가 가지 않는다. 물론 셧다운으로 좀 예민한 시기이긴 하지만, 거의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내가 마늘 약간과 파스타 약간, 간장 약간, 집에 있는 유통기한도 확인 안 한 멸치액젓, 건강에 좋다는 올리브유로 나의 늘 비슷한 하루를 보상하는 것에는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예전에 본 다큐 중에 <노 임팩트 맨>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자신이 환경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해보며 살아가는 (프로젝트성이었나) 남자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링크드인도 없고, 쇼핑도 거의 안 하고, 소셜 라이프도 거의 없는 나, 집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는 나야말로 노 임팩트 휴먼이다. 때로 고독하고 때로 외롭고 때로 슬프지만 그렇다고 나를 바꾸고 싶지도 않다. 만성 질환이 있다고 생각하고, 너무 나빠지지만 않도록 관리하면서 살고 싶다. 일단은 알리오 올리오를 먹으면서 버텨보려고 한다. 오늘은 체육관 안 가고 그냥 자야겠다. 아직 소화되고 있을 나의 점심 알리오 올리오를 아쉬워하고, 내일 먹을 알리오 올리오를 그리워하며. 안녕, 내일 또 만나, 결국 콜레스테롤이 되어 내 혈관 어딘가를 떠돌며 나의 영원한 일부가 되어버릴, 알리오 올리오, 나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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