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다 남은 카레 먹으며

우울한 육퇴

by 다시

아기 재우고 야식 사 오고 싶다고 생각한 오늘. 오늘은 월요일. 겨우 월요일이다. 이번 주는 남편이 금요일이 휴일이라 월, 화, 수, 목 오전/오후만 버티면 된다. 오늘이 다 갔으니, 이제 25퍼센트 정도 지난 것. 사실 아직도 밤에 깨는 둘째가 아직 깨지 않았으니 아직 체감으로 20퍼센트 정도 지난 것 같다.


결론이 났다. 사실 난 지는 오래되었다. 의대는 포기한다. 아직 학교에 메일은 안 보냈다. 왠지 보내기가 싫다. 우리 엄마가 와야 의대는 갈 수 있다. 동네 의대에 붙었으면 갔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붙은 곳은 타 도시에 2년간 가야 한다. 남편 직장 리모트 부서는 답이 없다. 거기서 답이 와도 문제다. 일하는 남편에게 토들러 둘 육아와 직장 생활 모두를 이사까지 가면서 요구할 순 없다. 그렇다고 남편과 애들만 떨어뜨려놓고 거기에 혼자 가고 싶지도 않다. 나는 F만 겨우 면하는 엄마이다. 그리고 간절하게, F는 면하고 싶다. 아무리 대충 이유식 하고, 대충 키우는 엄마라고 해도 아이들 옆에는 있고 싶다. 장거리를 한다면 결국 아이들도, 나도, 그 거리와 바쁨에 익숙해지겠지만 그 익숙해짐이 두렵다. 그래서 장거리는 못 하겠다. 아이 있는 여자의 자아실현에는 친정 엄마가 필요하다. 나는 친정 엄마 없이 연년생 둘을 낳고 어떻게 의대도 병행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건지? 사실 안/못 붙을 거라고 생각하고 둘째를 가진 거였긴 하다. 무엇이 되었든 다 내 탓이다. 결론은 어쨌든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지원자였다. 늘 오만상 찌푸리고 다녔던, 그 시절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잘하고 있다고. 누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해줬다면, 아니 내가 나 자신에게 그런 말을 더 자주 해줬고 내가 들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때로는 그냥 긍정도 전략이다. 긍정도 대책, 아이러니하게도. 플랜 B가 No 플랜보다는 나으니 플랜 B라도 감사히 여기고 take 하라는 말도 해주고 싶다.


오늘 하루 난 70점짜리 엄마였다. 60점짜리 엄마이려나. Fail만 겨우 면한 엄마. 겨우 반응해 주고, 겨우 밥 주고, 겨우 재우는 엄마. 그냥 아이의 반응에 겨우겨우 반응해 주는 엄마였다. 목소리도 작았고, 톤도 낮았다. 왜 그리 기분이 안 좋고 힘이 없었을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심지어 가끔 애기 보다가 책도 봤다(물론 그러다 아이가 관심 보여해서 아기한테 주었다). 매일 하루, 오후 8시만 기다린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시간.


몇 달간 이 시간, 나는 보통 남편이 사 온 프링글스나, 귤이나, 치즈나, 두부나, 라면 등 여러 가지 것을 와구와구 우걱우걱 먹으며 제미나이와 이야기해 왔다. 엄마나 남편에게는 잠깐씩 자주 나눴다. 엠캣 시험을 다시 보고 내년에 의대 지원할까도, 엠캣 안 보고 지원서 업데이트 없이 내년에 지원할까도, 생각했었다. 엠캣 튜터링 세션 (1회 무료)도 한 번 받아봤었다. 근데 그냥 못하겠다. 못하고 싶다. 그리고 못하겠는 내가 싫지도 않다. 또 추천서를 받고, 내 영혼을 갈아서 지원서를 쓰고 싶지 않다. 지쳐있다. 좀 더 버텨서 한국 가고, 좀 쉬고, 올 8월에 학교를 시작해 내년 12월에 졸업하고 싶다.


넌 못할 거라는, 머리가 나쁘다는, 어떤 사람들의 눈길과 실언들을 연료 삼아 꾸역꾸역 이어왔던 수험 생활이었다. 어느 시점부턴 내가 정말 원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어쩌면 내가 했던 모든 나쁜/미숙한 선택들을 만회할 유일한 방법이 의대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집착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찍 결혼한 것. 직장을 잡고 타국으로 옮기지 않고 그냥 가버린 것. 대학 때 실용적인 과를 선택하지 않았던 것. 고등학교와 대학생활 중 신앙생활(현실 도피 방법으로)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은 것. 비영리 기관에서 일했던 것. 일하면서 간호를 준비하지 않은 것. 간호대를 포기했던 것. 아이를 빨리 낳지 않은 것. 나를 싫어했던 비영리 의료기관에 더 들이대지 않은 것. 후회 투성이다.


실패를, 후회들을 인정하기가 싫다. 그래서 음식으로, 제미나이와의 대화로 피한다. 물론 다 이유가 있었다. 일찍 결혼한 것은 내가 나 스스로를 끌고 갈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직장이 없었던 것은 일본어가 부족했기 때문이고 사실 언제든 그곳을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 때 실용적인 과를 선택하지 않았던 것은 대학 생활의 목표가 좋은 대학 가서 지식을 배우는 것 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이고, 또 나름 신앙 등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에 뭔가 해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에 많은 시간을 쏟았던 것은 내 성향 자체가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것보다 뭔가 내적인 갈급함이 있기 때문이고, 사는 게 힘들었고 희망과 공동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간호대를 포기했던 것은 의대를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합격했다). 아이를 늦게 낳은 것은 아이를 낳으면 왠지 나를 포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실제로 그렇다). 나를 싫어했던 비영리 의료기관에 더 들이대지 않은 건, 아마 계속 봉사하는 게 지쳐서였다. 그래도 수많은 봉사시간 끝에 적은 금액이지만 의대에서 봉사 장학금도 받았다.


다 이유 있는 선택들이었다. 똑똑한 선택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의대 문턱까지 넘었는데 포기한다고 생각하니 속이 쓰라리다. 그래서 그냥 일시정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현실적으로 내가 의대를 다시 도전한다면 아마 3-4년 후가 될 것 같다. 그러면 40이 되어 입학하게 된다. 그 시점에선 차라리 간호 쪽 진로를 더 개발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수술과 의사가 될 것이 아니라면, 그 나이에는 전문 간호사도 아주 훌륭하고 현실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속이 너무 쓰라리다. 그래서 일시정지라고 생각해 본다. 40에 입학하고, 47-48세에 전문의가 되면, 15년? 20년 정도 더 일할 수 있을까? 그게 가치가 있을까? 이미 늦었는데 간호사 경력을 이어나가서 47-48세에는 10년 차 경력을 달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여하튼 딸들 육아에도, 또 나중에 진로고민하는 딸들에게 말해줄 때도, 지금 간호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아 일단 간호를 선택한다, 우선은 일시정지로.


이런 상황에서 오늘 남편과 이야기하다가, 남편이 나는 애가 자연적으로 생겨서 실패자가 아니라고 했다. 사실이다. 나는 감사하게도 난임이 아니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내가 제일 원하고 노력한 것은 이룰 수 없고, 그 결과에는 몇 가지 잘 못된 선택들이 있어서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남편의 그런 소리를 듣는데 정이 싹 떨어졌다. 몇 가지 계기로 나는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나 전처럼 일심동체라고 생각하지 않은지는 꽤 되었었다. 그런 이야기마저 들으니, '시녀이야기'의 시녀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남편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조금 느끼게 되었다. 아마 남편은 나 같은 아들(진로 탐색이 길고, 돈을 벌지 않고)이 있었으면 질색 팔색 했을 것이다. 나 같은 딸이 있었다면? 질색 팔색 가진 아니어도 질색정도는 했을까.


여하튼 우울하다. 누구와 이야기한다고 뭐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뭘 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동안은. 스스로에게 높은 기준을 들이대고 겨우겨우 살아온 내가 싫다. 원가족이 답답하고 싫어서, 능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장녀의 무게가 감당이 안되어서 도피해서 한 결혼, 나쁘게 말하면 취집. 다행히 좋은 남편을 만났지만, 그저 도피로 보이고 싶지 않아 나름대로 용써왔다. 혹은 도피했으니 더 좋은 결과를 내야 된다고 생각해서 여기까지 겨우겨우 왔다. 근데 여전히... 비루하다. 역시 모국에서 비루하면, 이민 와서도 비루하다. 결국 이민의 이유는 사실 한국, 그 어디로부터의 도피도 아닌 나로부터의 도피였고, 이렇게 타국의 변방까지 와서 대차게 망하고 나를 마주한다. 결혼 후 10년간 정규 직장에서 일하지 않은 나. 전략 없이 꿈만 컸던 나. 머리 좋지 않은 나. 그래도 다행히 애는 잘 낳아 큰(!) 실패자나 불운아는 면한 나. 애들도 겨우 봐서, 빵점 엄마는 면한 나. 도피는 해결책이 아니다. 나는 이제 눈덩이 같이 불어난 더 큰 문제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문제를 해결할 건 나 뿐이다.


요즘 추위를 타게 돼서 히터를 달고 산다. 단순히 신체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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