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간다 했지

바이러스, 자매 습격

by 다시

네시간만 잔 거치곤 상쾌한 아침이었다. 둘째는 일찍 일어나고 첫째는 비교적 늦게 일어나서 둘째와 여유 있는 아침시간도 보냈었다. 마르게 태어났는데 투실투실 해진 나의 마지막 아기. 이뻐 죽겠는 나의 첫째. 하지만 요즘 안아주면 부쩍 버틴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짐에 가서 나는 뛰고, 아이 돌보미 서비스가 있어 아이 둘을 맡기고 나오니 너무 행복했다. 그 길로 커피숍에서 커피도 테익아웃하고, 애들 공원 데려가서 햇볕 받으며 산책도 하고, 육아에 점점 더 익숙해지네, 하는 느낌이 들던 찰나였다.


의기양양, 집에 와서는 아이들 점심을 먹였는데 둘째가 먹은 것을 왕창 토하는 것이었다. 분수토. 처음에는 이유식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다 버리고 시간이 지나고 우유를 좀 줘봤는데 다시 분수토. 그러더니 자고 일어난 첫째가 저녁밥을 몇 술 뜨더니 갑자기 먹은 것을 주르륵 토하는 것이었다. 오마이. 사실 남편이 주말에 배탈이 났었는데, 우린 저녁식사 때 먹었던 돼지고기가 덜 익어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같이 먹은 사람들 중 두 사람이 같은 증상). 혹시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노로바이러스였을까?


그 와중에 아이들 보낼 데이케어 웨잇 리스트에 둘째를 올려놓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전화하고 (이거 진짜 큰일이다...), 소아과 둘째 정기 검진 예약하면서 첫째도 봐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하다 보니 오후가 지나있었다. 토한 거 치우면서도, 밥은 꾸역꾸역 먹었다. 식사는 내 셀프케어니까. 천만다행으로 오늘 교회 어른들이 식사를 챙겨주셔서 덕분에 요리할 필요가 없어 다행이었다.


겨우 아이들을 재우고, 너무 피곤해하는 남편에게 말해서 <폴아웃>이라는 게임 원작 아마존 프라임 드라마를 보았다. 핵폭발 후 지하 셸터에 살게 된 사람들의 후손인 여자 주인공이 납치된 아빠를 찾으러 지상으로 나가 겪게 되는 우여곡절에 대한 이야기. 그걸 한 에피소드도 못 끝내고 남편은 자러 가고. 나도 좀 내 시간을 가질까 하는데 울기시작하는 둘째. 자꾸 토하니 양껏 못 먹어 배고파서 깨는 것. 남편 말대로 1온스만 줄까 하다가 불쌍해서 2온스 주고는 기저귀를 갈았더니 다시 분수토. 일단 징징대도록 내버려두고 분수토 닦아내고... 자꾸 아기가 토하니 탈수가 걱정되어, 버린 기저귀도 다시 본다. 다행히 설사가 아니었다. 기저귀를 다시 접어 쓰레기통에 버리며 안도했다.


연년생 출산과 해외 육아 경험은, 나의 개인주의적 특성을 못마땅하게 보시곤 좀 고쳐보고 싶으셨던 신의 섭리였던 것일까. 그래서 내가 의대를 지원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연년생 둘째를 계획하는 것을 방관하셨던 것일까. 아님 사실 의대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아시고는? 의대를 포기할 명분을 주신 것일까. 여하튼 나의 요즘은, 나의 꿈, 나의 자아실현, 나의 생각에 골몰되어 있던 지난 10년? 8년 시간에 대한 형벌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모든 것에 나의 손길이 필요한 아기들 둘을 돌보며, 내 몸도, 마음도, 시간도, 그냥 내 삶이 잠식되어 가는 기분이다. 분명 아기들이 너무 예쁘고 소중하지만, 영화 <아가씨>에서 들었던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대목이 떠오른다.


지금은 의대는커녕 무슨 학교든 과정을 통과만 해도 기적이다. 오늘을 겪어보니, 학교는 8월 시작이고 곧 겨울이 올 텐데 어린이집 다니게 되어 엄청 아플 두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공부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의대를 생각한다. 왜일까. 예상보다 훨씬 외롭고 별거 없는 이민 생활에 대한, 내가 뭘 모르고 했던 선택들에 대한 보상심리로, 혹은 피해의식으로 집착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나이에 그 긴 공부를 하면 애들이 한창 자랄 나이에 같이 있어줄 수 없다. 그런데 도대체 왜? 공부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으면서?


여하튼 부모 됨은 엄청난 자기 부인인 것 같다. '나'에만 관심하던 나에게는 나름 빅뱅과도 같은 사건이다. 그냥 확 나를 놔버리면, 오히려 더 행복해질까? 뭔가를 추구하고 도모하는 나로 살아온 35년을 뒤로하고, 한 번 가족을 위해 살아볼까? 하지만 가족은 내가 아닌 걸. 나는 자식을 보상으로 삼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서 더 나를 놓지 않으려 몸부림친 것이기도 했다. 자식의 잘 됨은 나에게 선물이지, 보상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것 같은데, 그냥 가족을 위해 다 포기하고 한번 헌신해 볼까? 그렇게 안주해 볼까? 이민자 여성 자아실현의 무덤, 미국 시골에서의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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