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39. 의도적으로 일을 지연시키는 행위라면, 목적이 있기에 비난을 받더라도 정당성은 존재한다. 누구나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서다. 하지만, 고스트 사보타주는 누구도 모른다. 스스로 깨닫기도 어렵거니와 주위 사람도 알아채기 어렵다. 고스트 사보타주를 일삼는 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하나, ‘척’하기를 좋아한다.
둘, 하지 않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셋, 새로움을 싫어한다.
넷, 깐죽거린다.
다섯, 부정적이다.
여섯, 책임과 거리가 멀다.
일곱, 주도하지 않는다.
여덟, 꼬투리만 잡는다.
아홉, 문제점만 이야기한다.
열, 자기 의견은 없다.
열하나, 말만 앞선다.
열둘, 해결책은 없다.
열셋, 남 탓만 한다.
이 기준을 벗어나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런데도,
자기는 아닌 척,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으르렁거리는 꼴이라니,
정말로.
우려와 다르게, 우리 중 누구도 고스트 사보타주를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놀랍다. 모든 게 일사천리다.[239] 돈인가?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그래, 자투리에 거주하는 모두가 재건축을 통해서 돈을 벌고 싶어 한다. 386세대, X 세대, MZ 세대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돈 앞에서는 모두 하나가 된다. 세대 통합은 이렇게 쉬운 과제였단 말인가? 정말로 이처럼 쉬운 일이었는가? 입체적이라 믿었던 인간의 다양함은 단순함을 가리기 위한 포장이었을지도. 자괴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슬프지만, 한편으로 다행이면서도 기쁜 이 마음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돈을 좋아하는 게
나쁜 것은 아니잖아.
안 그래? 응?
40. 임 대표는 매주 한 번, 정호 님과 영상 회의를 한다. 이 회의는 임 대표만 참여한다. 한 번도 임 대표와 정호 님의 회의를 본 적은 없다. 임 대표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다고 믿을 뿐이다. 사무실이 아닌, 집에서 하는 것 같다. 퇴근 후, 배고파서 편의점에 들른다. 편의점 도시락과 즉석밥을 좋아한다. 편의점 도시락만으로는 양이 적다. 그렇기에 즉석밥 하나를 같이 산다. 컵라면은 이상하게 먹기가 싫다. 심적으로 건강을 해치는 기분이 들어서다. 하긴, 편의점 도시락도 몸에 해로운 것은 마찬가지인가? 그래도 기분은 그렇지 않다. 저녁을 밖에서 간단하게 먹는 이유는 아내에게 미안해서다. 아내는 꿈을 이루라고, 글을 쓰는 나를 응원했다.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기가 어려웠다. 꿈을 이루라고 아내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미안했다. 하지만 난 이기적이다. 오히려 생활비를 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마음은 편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순진한 아내는 말한다.
“자기야, 글 쓰느라 힘들지? 원래 창작은 고통이 필요해.
자기를 믿어. 곧 보상이 있을 거야.”
그래, 창작은 고통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내도 나도 이 길은 처음이다. 몰랐다. 정말로 몰랐다. 창작이라는 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우린 2년을 버티었다.
“자기야, 벌써 2년 째야. 언제 출간하는 거야?
그리고 왜 글을 안 보여줘?
정말 글을 쓰고 있기는 해?”
아내의 육감은 무섭다. 그래, 2년 동안 보여준 글은 없다. 도대체 2년 동안 무엇을 한 건가? 사실은 내려놓고 싶다. 오해하지는 말자. 정말로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쓰고는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미 출간할 정도로 충분히 많은 양을 썼다. 정말로. 그런데 도대체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캐릭터와 잘못된 길로 빠진 지 오래다. 작가로서 중심을 잡지 못한다. 캐릭터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대로 끌려간다. 너무나 멀리 왔다. 돌아가기도 어렵다. 아니, 다시 돌아갈 길을 찾는 중이다. 캐릭터와의 즐겼던, 수많은 추억을 날리고 싶지는 않아서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자기야, 아무래도 글 쓰는 것은 취미로 하고, 돈을 벌었으면 해. 가정은, 우리 가족을 지켜야 할 것 아니야. 그게 가장이니까. 매일 방 안에 박혀서 가정을 모른 척해도 이해했어. 자기는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너무 힘들다. 혼자서 이 가족을 지켜낼 자신이 없어.”
사랑하는 모든 게 무너지고 있다.
꿈을 이루려는 내 욕심으로.
41. 암울했다. 눈을 감는 버릇이 생겼다. 현실을 모른 척하고 싶어서다. 다시 눈을 뜬다. 현실의 문제는 그대로다. 사라지지 않는다. 지옥 같다. 하지만 맞설 자신도 없었다. 누군가 이 상황을 구원해 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매일 기도했다. 그리고 응답이 왔다. 우현이다. 하나님께 감사한다. 우현이의 제안은 가족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었다. 카페에서 우현이에게 받은 천만 원을 현금으로 뽑아서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는 펑펑 울었다. 처음으로 느꼈다. 눈물은 슬픔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진실을. 조금은, 아내의 미안한 마음을 달래 주고 싶었다. 편의점 도시락과 만남을 그렇게 시작한다. 편의점 도시락은 아내를 그동안 힘들게 했던 미안함이다. 비가 온다. 쉬이 그칠 비는 아니다. 사무실로 돌아가서 우산을 챙겨야 한다. 밤늦게 임 대표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다. 다들 퇴근한 이 시간에?
“아버지, 아직 승기와 효상이에게 이야기하지 못했어요. 시간이 필요하다고요. 승기와 효상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모르겠고요. 한순간에 모든 게 무너질 수 있어요. 전 그게 무서워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아들, 시간이 없어. 빨리 진행해.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예상한 일이야. 너도 예상한 일이야. 시간을 끌수록 우리에게 불리해. 힘들면 내가 직접 말하고.”
무엇을 말한다는 거지? 뭐가 무섭다는 거지? 알 수 없는 말만 한다. 일주일이 지났다. 임 대표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궁금해 미치겠다. 승기에게 다가가 슬쩍 운을 띄운다.
“승기야, 임 대표가 무슨 말 안 해?”
“효상아, 임 대표가 왜? 무슨 일 있어?”
“승기야, 그게 말이야, 일주일 전에 들은 말이 있는데, 그게 좀 꺼림칙해서. 정호 님과 대화했던 내용이 좀 수상해.”
“효상아, 아직도 그 타령이냐? 저번에 이야기 끝난 것 아니야? 너도 참 병이다. 병. 지금 재건축 관련 문제로 골치가 터질 지경이다. 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해. 그리고 우리에게 전달할 사항이 있으면 곧 하겠지. ”
내가 예민한 건가? 그럼 도대체 그들의 대화는 무엇인가? 그래, 할 말이 있으면 곧 임 대표가 하겠지. 전화가 울린다.
“안녕하세요, ○○의 ○○ 기자입니다. ○○지역 재건축 진행하는 카테난조가 맞나요?”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죠?”
“드디어 실체를 확인하네요. 그러니까 카테난조가 ○○지역 재건축 진행하는 게 맞지요?”
“네?, 그게 무슨?”
42. 직감적으로 대답을 잘못한 것 같다. 프로젝트를 언론에 노출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았지? 심장이 빨리 뛴다. 손에서 땀이 난다. 갑자기 속이 메슥거린다. 커진 눈동자를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 목소리가 떨린다. 승기가 당황한 내 표정을 알아채고 전화를 가로채 스피커폰으로 받는다.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의 ○○ 기자입니다.”
“그런데요, 무슨 일로?”
“○○지역 재건축을 진행하는 게 카테난조가 맞는지 확인 차 전화했습니다.”
“기자님, 그게 왜 궁금할까요? 저는 그게 더 궁금하네요.”
“실례지만 전화받은 분은 누구시죠?”
“누구인지 기자님에게 말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나저나 무엇이 궁금해 전화했나요?”
“아,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몇 가지 제보가 들어와서요. ○○지역 재건축 관련해서요.”
“무슨 제보요?”
“그건 아직, 취재 중이라 말씀하기는 어렵고요.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제가 기자님이 궁금한 사안을 답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만 전화 끊습니다.”
“아 잠시만요, 성격이 급하시네요. 그러면, 제보를 바탕으로 안 좋은 기사가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를 원하세요?”
“기자님, 무슨 말씀하는지 이해가 가지를 않네요. 안 좋은 기사라니요? 무슨 불법이라도 저지른다는 전제하에 말씀하는 것 같네요. 불쾌합니다.”
“그러니, 간단하게 질문 몇 가지 할게요. 그리고 내용을 추려서 정식으로 대표님 인터뷰 요청을 해도 될까요?”
“그래요, 말씀하세요.”
“재건축 관련해, 조합원을 모집한다고 들었는데요, 일반적인 방식과 달라서요. 확인한 결과, 재건축조합이 아닌 지역주택조합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정확하게, 재건축입니까? 지역주택조합입니까?”
“그게, 왜 문제가 있습니까?”
“아시다시피, 재건축조합의 자격 조건은 해당 사업 용지 내 건축물과 토지를 소유한 자입니다.”
“그런데요?”
“그런데, 카테난조는 주택을 소유하지 않는 다른 이에게도 조합원 자격을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는 지역주택조합의 자격 조건입니다.”
“그래서요? 재건축조합으로 시작해서 투자가치가 좋다면 대상을 확장해 지역주택조합이 될 수도 있지요.”
“그곳은 어떠한 개발 계획도 없어요. 그런데도, 앞으로 개발 계획으로 부동산 가치가 오를 거라는 소문을 누군가 악의적으로 퍼뜨리고 있습니다. 제보에 따르면, 소문의 진원지[240]가 카테난조입니다. 그 소문을 이용해 자격이 없는 사람을 설득해 투자자로 모집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몰라서 묻는데, 지금 진행하는 지역에 개발 계획은 있나요?”
“왜요, 정보를 말하면, 기자님도 투자 좀 하려고요?”
“혹시 모르죠? 그럴지도 모르죠. 저는 기자입니다. 대중에게 정말로 좋은 소식이 있다면, 누구보다 먼저 알리고 싶습니다.”
“기자님, 어디서 무엇을 듣고 이러한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소식을 대중에게 누구보다 빠르게 알리고 싶다고요? 정보는 공유할수록 가치가 떨어집니다. 굳이 왜요? 우리 프로젝트에 너무 많은 관심은 사양합니다.”
“좋은 사업이라면, 알려서 더욱더 투자금을 모으는 게 정상 아닌가요? 왜 굳이 숨기려고 하죠? 문제가 있는 사업이 아니고요?”
“정말로 무례한 사람이군요. 기자님 주위는 늘 문제만 있나 보네요. 보이지 않는다고, 알 수 없다고, 나쁘다고 단정 짓는 것은, 누구한테 배운 발상입니까? 기자라면, 공정하게 사견[241] 없이, 사건을 대하는 게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사건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사건이라는 말씀이지요?”
“말꼬리 잡지 마시고요. 제 말은 처음부터 답을 정해 놓고 묻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그래요, 곧 사건이 터질 수 있겠네요. 기자님 때문에요. 기자님의 펜은 어떤 것보다 무서운 살상 무기입니다. 당신의 상상력으로 쓴 기사가 누군가의 인생 2막을 망치는 일이 될 수 있다고요. 아시겠어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실 확인 차 전화 드렸지요. 그러니 답변해 주세요. 개발 계획도 없는 그 지역에서 개발 계획이 있는 것처럼 선량한 사람을 속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리고 제보에 의하면 토지를 일괄적으로 매입하려고, 이사하기 어려운 세입자를 적은 보상금으로, 그들을 길거리로 내몬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사실인가요?”
“적은 보상금이요? 그리고 속이다니요? 누구를요? 그 말, 책임질 수 있는 발언인가요? 아까부터 모든 대화는 녹음하고 있습니다.”
“속인다는 말은 조금 과했네요. 저는 단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개발 계획은 정말로 있단 말인가요?”
“기자님, 우리는 대중의 노출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생 2막의 기회를 쟁취하려고 사력[242]을 다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원하면, 기사를 내지 않는다는 조건, 오프 더 레코드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대표님과 상의해야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무엇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들, 인생 2막의 기회를 쟁취하려고 사력을 다한다?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오프 더 레코드로요? 그건 일단 대표님과 상의 후 다시 말씀하시죠. 아무래도 자주 연락해야 할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도 그 투자에 관심이 있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함과 직책을 알고 싶습니다.”
“김 승기입니다. 그리고 직책은 기획전략 부서의 팀장입니다. 대표님과 상의 후,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다음에는 얼굴 보면서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그래요, 김 팀장님.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to be continued....
[239] 일사천리: 강물이 빨라, 한 번 흘러 천 리에 다다른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 거침없이 빨리 진행됨을 이르는 말.
[240] 진원지 (震源地): 사건이나 소동 따위를 일으킨 근원이 되는 곳의 비유.
[241] 사견 (私見): 자기 개인의 생각이나 의견.
[242] 사력 (死力):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쓰는 힘. 죽을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