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안녕하세요, 고민했는데요, 거래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발전할 기미도 없고, 이곳에 더는 있고 싶지는 않네요. 바로 앞에 펼쳐진 금싸라기 땅을 볼 때마다, 너무나 화가 나고요, 그래요. 그때 만난 부동산에서 계약서를 쓰면 될까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결정을 잘하셨습니다. 계약을 정말로 결심한 게 맞나요?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그래요, 새로 시작하고 싶네요. 모든 게 힘드네요.”
“좋습니다, 지금부터 우리 회사의 계획을 말씀할게요. 인생 2막의 기회입니다.”
“드디어 이야기를 듣네요, 제일 궁금한 게 이 부분입니다. 도대체 왜 비싸게 이곳을 사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사장님, 30년 된 아파트를 사들여, 재건축하려고 합니다.”
“재건축이요? 벌써 우리 아파트가 30년이나 되었나요? 하긴, 아파트 외벽의 페인트가 벗겨진 것을 볼 때마다 을씨년스럽네요. 가끔 여기가 사람이 사는 곳이 맞나 싶기도 합니다. 그게 가능해요? 외진 곳이라, 누구도 이곳을 개발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 대부분 노인이라, 관심도 없고요.”
“그래요, 그래서 사장님을 콕 집어서 연락했습니다. 사장님의 결심이 재건축을 위한 첫걸음이라서요.”
“저를 콕 집어서요? 왠지 무섭네요, 그나저나 재건축하면 시세가 많이 오르려나요? 아 그리고 추가분담금과 초과이익환수 등 부담할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역시 사장님을 선택하기를 잘한 것 같네요. 사장님처럼 똑똑한 사람이 우리는 절실해요. 일단, 시세는 고민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곧 대한민국에서 가장 멋지게 변할 경제특구지역이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걸어서도 갈 수 있다고요. 아직은 극비인데요, 대형 건설사에서 재건축 관련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대형 건설사에서 재건축을 준비한다고요? 그렇다면.... 음....”
“사장님, 이럴 줄 알고 말을 아꼈어요. 설사, 대형 건설사에서 재건축 관련해 발표하더라도, 그게 언제일지도 모르고요. 진행을 안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제시하는 가격으로는 절대로 매물을 팔 수도 없습니다.”
“그렇군요,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형 건설사가 재건축을 고려한다고 아파트를 팔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다만, 당신네 회사가 재건축한다면, 아파트를 파는 게 맞는가 싶어서요.”
“일단, 사장님이 물어본 추가분담금과 초과이익환수에 관해서 이야기할게요. 초과이익환수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게 없습니다. 이 지역은 면제입니다. 더군다나, 이 지역을 개발할 계획은 없습니다.”
“정말 다행이군요. 한시름 놓았네요.”
“그리고 사장님, 경제특구지역의 면적은 1,000만㎡, 300만 평입니다. 약 10만 명의 인구 유입을 추산하는 신도시입니다. 물론, 경제특구지역을 걸어서 갈 수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경제특구지역의 중심에서 이곳은 꽤나 멀리 떨어져 있어요. 아시지요?”
“그럼요,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거리지요. 중심부까지는.”
“맞습니다, 그리고 도시 공학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게 있는데요, 계획인구를 10만 명을 생각하지만, 실제로 유입하는 인구는 5만 명이 안 된다고 예상합니다. 결정적으로 이곳으로 들어올 사람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인구는 점점 씨가 말라갑니다. 이곳은 서울에서 떨어진 지역이고. 아무리 좋은 시설을 만들어도, 서울만 할까요? 결국, 건물을 지어도 유입될 인구가 턱없이 부족해 유령 도시가 될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도 있습니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요, 정부가 두 팔 걷고 홍보를 하는데요? 유령 도시라니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그래요, 소문을 믿을 이유는 없어요. 대한민국에서 이곳보다 뜨거운 지역은 현재까지 없으니까. 하여튼 그런 이유로 300만 평이나 되는 이 지역을 계획대로 개발하는 게 실제로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에요.”
“그렇군요. 생각해 보면 그렇네요. 사람을 물건 만드는 것처럼 뚝딱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을 이어가면, 걸어서도 경제특구지역을 갈 수 있는데, 상식적으로 왜 이곳의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을까요? 그리고 왜 아무도 이곳을 개발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맞아요. 어차피 경제특구지역 전체를 개발할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중심부 노른자 지역은 정부와 대기업의 차지입니다. 그리고 중심부 지역에서 멀어진, 그러니까 사장님이 살고 계신 지역과 가까운 경제특구지역은 사실 투자가치가 없어요. 하지만, 이 지역까지 개발할 거로 굳게 믿은 투자자, 즉 개미들이죠. 이들은 결국, 투자한 원금을 잃을 확률이 높습니다. 원금만 손해 보면 다행이죠. 제반비용[234]까지 고려하면, 정말 인생에서 가장 최악의 투자입니다.”
“저도 사실, 고민했어요. 말씀하신 지역에 투자할지를. 안 하기를 정말 다행입니다. 천만다행. 이러한 정보를 모르는 개미라면 투자를 잘못해 속앓이 좀 하겠어요. 여하튼 나라는 누구의 편인 것인지. 어휴.”
“그러니까, 사장님은 행운아입니다. 지금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까요.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사장님이 필요해서 접근했다고.”
“저도 그게 참 이상합니다. 저처럼 평범한 사람에게 얻을 게 무엇일까요? 그나저나 대놓고 접근했다고 하니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사장님이, 다른 지역에 살고 있다면, 관심이 없었겠지요.
하지만, 사장님은
첫 번째, 집주인입니다.
두 번째, 이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세 번째, 준공 후 30년이 지난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네 번째, 사장님은 젊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장님은 돈을 벌고 싶어 합니다.”
“듣다 보니, 제가 중요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하하하”
“아니요, 사장님은 우리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사장님이 도움 없이는 인생 2막, 재건축의 희망도 사라집니다.”
“어깨가 무거워지네요. 그냥 집을 팔고 싶은 사람인데요, 그래요, 이야기나 들어봅시다. 제 역할은 무엇인가요?”
“물론, 사장님이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면, 사업의 차질은 생기겠지요. 하지만, 사장님을 대신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만, 다른 이보다는 우리와 함께 걸어갈 파트너로 사장님이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집을 팔고 오천만 원의 수익을 낼지, 아니면, 이보다 큰 수익을 꿈꾸어 인생 2막으로 나아갈 기회를 쟁취할지를, 오늘 이야기를 듣고 결정했으면 합니다."
“거창합니다. 그래요, 말씀하세요. 준비됐습니다. 휴, 이게 뭐라고, 귀에서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요.”
“재건축하려면, 조합을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조합장을 사장님으로 추대[235]할 생각입니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을 설득해 우리 회사에 매물을 넘겨 재건축을 실현하는 게 조합장의 주요 업무입니다. 조합장을 맡아 재건축을 위해 힘을 쓰면 미리 제공하는 인센티브가 있습니다.”
“인센티브요? 구미가 당깁니다. 무엇인가요?”
“재건축으로 방향이 정해지면, 거주민이 재건축 동안 다른 지역에서 지낼 비용이 필요합니다. 아파트를 매도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지요. 거주 비용은 필요합니다.”
“현재, 측정하는 거주 비용은 조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3천만 원에서 최대 5천만 원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장님이 조합장으로서 거주민의 행복을 책임져 재건축의 길로 나아간다면, 1억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1억을 활용해 사람을 설득하세요. 재건축조합을 만들 수 있게 힘써주세요. ”
“1억이요? 생각지도 못한 금액이네요. 그나저나 3천만 원의 거주 비용은 적은 금액 같네요. 그 돈으로 이사할 동네가 있을까요?”
“사장님, 이 아파트에서 집주인이 직접 거주하는 경우는 500세대 중, 78세대입니다. 이미 조사가 끝났어요. 그러니, 78세대를 제외한 나머지 세대를 임대한 집주인은 재건축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전세 또는 월세로 거주하는 사람을 걱정할 이유도 없습니다. 전세나 월세로 계약한 사람 중 계약의 종료 시점을 시작으로 재건축을 시작합니다. 물론, 돌려줄 전세 보증금 또는 이사할 비용이 부족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재건축으로 돌아올 이득을 고려하면, 각자 감내해야 할 몫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를 설득하는 게 본인의 역할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은 없나요?”
“그리고, 조합원들과 협의를 통해 공급가를 결정하면, 더는 추가분담금도 없습니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도 그대로 진행합니다. 추가분담금은 여러분의 몫은 아닙니다. 일반분양으로 들어오는 계약자에게 순차적으로 추가분담금을 공유할 생각입니다. 재건축을 통해 우리는 최대 826세대를 지을 생각이니까요.”
“826세대? 우리 아파트 단지만 고려해 진행하는 사업이 아니군요.”
“맞습니다. 그래서 사장님의 역할은 아주 중요합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더 궁금한 게 있나요?”
“없습니다. 생각보다 큰 제안입니다. 일주일 정도 고민할 시간을 주세요.”
37. 일주일 후, 밝은 목소리로 그는 카쿠르터에게 연락한다.
“결정했습니다.
저도 인생 2막의 기회를 쟁취하고 싶습니다.
무엇을 하면 될까요?”
그렇게 시작했다. 카테피아의 건설을 위한 첫 번째 프로젝트가. 조합원 모두는 막다른 골목에 서 있다. 이들은 누구보다 새로운 기회가 절실하다. 그들의 절실함은 다른 이의 절실함을 끌어낸다. 현재까지 재건축 사업은 순조롭다. 이사 비용 문제로 가끔 껄끄러운 잡음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 원만하게 해결한다. 재건축을 반대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눈앞에 펼쳐진 벼락거지의 현실은 자투리에 거주하는 많은 이에게 상실감을 선물했으니까. 결국, 개인의 심리를 자극해 군중의 힘으로 키운다는 블루 고스트의 전략은 성공이다. 감히 누구를 의심했다는 말인가? 생각할수록 부끄럽다. 블루 고스트는 투자의 신이다.
모두 한 마음이다.
모두 한 방향이다.
그래서 모두 행복하다.
그래야 한다. 행복하려면.
38. 재건축을 위한 진행은 순조롭다. 재건축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 사무실로 노인 한 분이 찾아왔다. 아비 주름살을 삼킨 이마, 눈가에 펼쳐진 수십 개의 새끼 주름, 그리고 칼에 베인 듯한, 깊게 팬 팔자 주름을 지닌, 여든 살은 족히 된 노인은 서운함이 그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섭섭해. 이런 일 있으면, 어린 친구가 아닌 우리 또래가 이런 일을 맡아서 진행했어야 해. 여기 대부분 우리 또래인데, 어린 친구가 조합장을 맡으면 쓰나. 경험이 없어 판단력이 떨어질 게 뻔한데? 지금이라도 70대 중 한 명을 부조합장으로 선출하는 게 어떠한가? 사실은 내가 하고 싶네. 40대가 무엇을 안다고? 어린아이한테 이러한 중대한 일을 모두 맡길 수는 없지. 난 말이야. 과거의 이쪽 경험도 풍부해. 자네는 모를 수도 있지만, 그곳에 거주하는 노인네들, 지금이야 이냥 저냥 살지만, 예전에는 힘 좀 썼던 사람이 많아. 내가 구심점[236]이 되어서 재건축을 보다 빨리 시작할 수 있게 힘을 쓰겠네. 서로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나.”
부조합장으로 임명한다. 노인에 관한 생각은 조금씩 바뀐다. 일을 꽤 잘 해내서다. 그 어르신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진행하기는 어렵다.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열정적이다. 그리고 강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알 수는 없다. 조합장과 부조합장의 세대 간의 갈등을 우려했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는 생각하는 방향은 다르다고 느껴서다. 40대와 70대의 협업은 가능할까? 혹시라도 연륜을 앞세워 조합장의 계획을 시시콜콜[237] 따지며 방해하지 않을까? 마치 시시콜콜 따지는 게 모두를 위한 일인 것처럼 말이다.
조용한 태업.
고스트 사보타주.[238]
태업과 사보타주라 하면 조합에 가입해 단체 행동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쟁의행위라 생각한다. 조용한 태업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오늘도 너와 나 우리는 조용한 태업인 고스트 사보타주를 실행 중이다. 많은 이가 이처럼 일하면서, 조직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고스트 사보타주를 실천하는 수많은 조직원은 이처럼 말한다.
모두 YES를 외칠 때,
한 사람은 NO라고 해야 한다.
얼핏 들으면, 누구나 공감할 변명이다. 그리고 대견해한다. 그리고 스스로 치명적인 전략가라 생각한다. 프로젝트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한다고 믿어서다. 회사 생활을 하면 이런 사람은 정말로 많다. 단연코 말하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이 많을수록 프로젝트는 잘못된 방향으로 흐른다. 자연스레 관련한 일 모두 지연된다. 조용한 태업, 고스트 사보타주다.
산으로 가려했다면, 산으로 가야 한다.
바다로 가려했다면, 바다로 가야 한다.
산으로 가다가 바다로 향하면,
바다로 가다가 산으로 향하면,
결국, 아무 곳도 갈 수 없다.
to be continued....
[234] 제반 (諸般): 어떤 것과 관련된 모든 것. 여러 가지.
[235] 추대 (推戴): 윗사람으로 떠받듦.
[236] 구심점 (求心點): 어떤 역할의 핵심적인 인물이나 단체 등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
[237] 시시콜콜: 자질구레한 것까지 미주알고주알 따지고 캐는 모양.
[238] 근로자들이 자기의 요구 조건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일부러 게으름 피우며 일함으로써 사용자를 압박하는 단체 행동을 사보타주라 하며, 태업(怠業)이라고도 한다. 스트라이크의 경우처럼 작업을 완전히 중단하는 것은 아니고 직장에 머물면서 일응 작업에 임하나 조합의 지도ㆍ명령에 따라 은밀한 가운데 작업능률을 저하시켜 사용자에 압력을 가하는 쟁의행위의 일종을 말한다. [출처:국세법령정보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