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52. 승기 집에 도착해 돼지감자차를 마신다. 당뇨에 좋다고 이생망 과장님이 즐기던 차다. 승기는 아무 말 없이 차만 마신다. 승기가 입을 열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무엇을 들어도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카테피아의 건설이 우선이다. 카쿠르터를 위한 인생 2막만 생각하자. 잠시 논쟁은 그만두자.
“예전에 임 대표가 말했던 것 기억나? 부자의 지갑을 열어 우리의 주머니를 채우겠다는 생각. 어떻게 생각해?”
“승기야, 임 대표의 말을 오해하면, 우리가 부자를 속여 돈을 벌겠다는, 그런 사기를 치겠다는 것처럼 들려. 하지만 그런 뜻이 아닌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잖아.”
“난 모르겠는데? 무슨 뜻인데?”
“그러니까, 승기야, 임 대표의 말은 확실한 투자로,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 부자의 지갑을 열겠다는 뜻이잖아. 너는 그렇게 생각 안 해? 그게 아니면? 부자의 지갑을 열겠다는 게 정말로 사기를 치겠다는 뜻이겠어?”
“그래, 합리적 추론이지. 네가 하는 말이. 우리가 사기나 치는 범죄 집단을 도모한 게 아니니까.”
돼지감자차는 뜨겁다. 돼지감자차는 섬유질이 풍부해 변비에 도움이 된다. 확실치는 않다. 그렇다고 한다.
“승기야, 뜸 들이지 말고 그냥 말해. 들을 준비는 끝났어. 무엇을 말해도 당황하지 않아. 별 것 아닌 내용이면, 정말 뭐라고 한다. 진짜로.”
돼지감자차는 따뜻하다. 돼지감자차는 열량이 낮아 체중 조절에 도움이 된다. 확실치는 않다. 그렇다고 한다.
“승기야, 괜찮다니까. 준비됐다고. 어린애처럼 내 관점만 옳다고 우기지 않아.”
돼지감자차는 미지근하다. 돼지감자차는 이눌린 성분이 있어 혈당 조절에 도움이 된다. 확실치는 않다. 그렇다고 한다.
“답답해서 돌아가시겠다. 승기야. 도대체 뭔데? 이러다 날 새겠어.”
돼지감자차는 식었다. 돼지감자차는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된다. 확실치는 않다. 그렇다고 한다.
“효상아, 폰지사기[252]로 부자들의 지갑을 열고 있어. 우리는 지금 범죄자야. 그래서 끝까지 말 안 하려 했어. 문제가 생기면, 넌 몰랐다고 하면 되니까.”
돼지감자차는 차갑다. 돼지감자차는 철분이 풍부해 피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확실치는 않다. 그렇다고 한다.
모든 게 확실치는 않다.
그렇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래서 믿었을 뿐인데.
53. 폰지사기? 내가 이해한 그 폰지사기? 머리가 멍하다. 아니 쪼개지는 느낌이다. 편두통이다. 속이 메슥거린다. 구역질까지 난다. 폰지사기가 무슨 뜻이었지? 문자적 해석을 하기 어렵다.
“폰지사기? 내가 아는? 뉴스에서 빈번하게 나오는 그 단어? 폰지사기? 그럼 재건축 사업은? 이게 다 가짜야?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두 눈으로 확인을 하는데? 그럼 그동안 아파트 매매는 뭔데? 카쿠르터와 조합원의 영업 활동은? 어떻게 이게 폰지사기라는 거냐? 장난하지 말고.”
“효상아, 전부 거짓은 아니야. 재건축 사업은 진짜야. 카테피아 건설도 진짜고. 다만, 부자의 돈을 빼앗아 카쿠르터와 소액 투자자를 배부르게 하는 거야. 재건축 사업은 진짜지만, 그 사업을 미끼로 해외사업투자를 부자에게 유도하고 있어. 해외 사업 관련 내용은 거짓이야. 그렇게 부자의 눈먼 돈으로 우리는 인생 2막의 기회를 쟁취하고.”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카쿠르터와 서민의 돈은 속여 뺏는 게 아니라서? 그리고 부자의 돈으로 이들은 곧 인생 2막의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 상황을? 그렇다고 해도 범죄에 연루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효상아, 마지막 기차는 이미 떠났어. 주사위를 던진 거야.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언제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어? 임 대표, 아니 우현이가 언제 이 사실을 네게 공유했냐고.”
“해외 사업 투자 관련 내용은 이미 알고는 있었지. 하지만 이 사업은 전적으로 블루 고스트 영역이라 거짓이라고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어. 그래서 관심을 끊었고. 그날, 기자가 회사에 전화한 날. 그날 들었어.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지를. 효상아, 당시에 나도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어. 돌아가기에는 우리만 믿고 따라온 사람이 너무나 많아. 그리고 전세 사기를 당한 후, 결심했어. 괴물이 되겠다고. 기억나? 울먹이며 임 대표에게 고마워하며 말했던 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여전히 우리는 좋은 일을 하고 있어. 노선이 명확할 뿐이야. 모든 사람에게 오아시스를 제공할 수는 없어. 모든 이가 천국에 들어갈 수는 없는 것처럼. 우리는 심판관이야. 카테피아에 들어올 수 있는 자들을 심사하는. 처음부터 부자는 올 수 없었던 곳이야. 카테피아는. 효상아, 물러날 수는 없잖아. 안 그래? ”
설득되지 않는다. 승기의 말은 멍멍이가 짖는 소리다. 그렇게 들린다. 다 그만두고 사라질까? 아니면, 자수하자고 설득? 그것도 아니라면? 당장 그만두면? 자수해 감옥에 가면? 아내에게 전해줄 생활비는? 그럼 내 인생은? 우현이에게 직접 들어야겠다.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알겠어. 승기야. 말해줘 고마워. 혼자서 큰 짐을 짊어지느라 힘들었겠네. 그래도 시간은 필요해. 혼자서 생각도 해야 하고, 우현이 만나서 직접 들어야겠어. 미안하다. 시간을 끄는 것 같아서. 돼지감자차 다 식는다. 식으면 모든 게 쓸모없다. 어서 마셔.”
54. 범죄? 폰지사기? 예상하지 못했다. 사업이 문제라고 하길래, 금전적 혹은 카쿠르터 혹은 조합원의 문제라 생각했다. 카쿠르터가 모집한 서민의 투자금으로 부자를 홀려 그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게 우현이의 전략이다. 아니, 블루 고스트의 전략이다. 우현이에게 관련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내 귀의 문제라 판단했다. 누구도 우현이의 발언을 문제 삼지 않아서다. 하지만, 혹시나 했는데, 역시 그랬다. 모두가 미쳐가고 있다. 냉철한 승기조차. 승기는 자기의 처지를 이미 결정했다. 범죄 집단의 수괴가 되기로. 승기의 인생을 돌아본다. 마음의 상처가 크다. 무정함과 무관심에 찢겨 너덜너덜해진 승기의 영혼을 모르는 바 아니다. 전세 사기를 당했을 때, 승기에게 누구도 손을 뻗지 않았다. 승기는 믿는다. 국가가 자기를 버렸다고. 승기는 확신한다. 각자도생해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고. 그리고 우현이를 만나서 설득할 수 있을까? 만나서 무엇을 설득할 수 있을까? 카테피아를 포기하자고? 다 같이 자수해 감옥에 가자고? 사는 대로 생각했던, 우울했던 그때로 돌아가자고? 나는 지금 왜 괴로운가? 그래, 하기 싫어서다. 그래, 그렇게 말하기 싫어서다. 동물과 인간을 판단하는 마지막 보루[253], 양심은 내게 말한다. 불편한 이 감정을 외면하지 말라고.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죽어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대표실에 앉아 있는 우현이가 보인다. 노크한 후, 대표실로 들어간다. 속마음을 말하니, 우현이는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쭉 내민다. 우현이의 아버님이 자주 보이는 특유의 표정이다. 우현이는 점점 정호 님을 많이 닮아간다. 생각도 표정도 행동도. 때로는 그게 무섭다.
“효상아, 아직도냐? 또 그래? 승기가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한 거야? 승기도 요즘 부쩍 실망스러워. 내가 말했잖아. 널 믿지 말고 블루 고스트를 믿으라고. 왜 같은 소리를 반복하게 하지? 일단, 지금은 말하기가 어려워. 다른 일정이 있어서. 지금 나가야 해. 이따가 퇴근하고 보자. 사무실로 다시 올게. 꼭 기다려라. 이야기 오래 끌어서 좋을 것 하나 없다. 어휴, 승기는 도대체 무엇을 말한 거냐?”
모두 퇴근 후 사무실에 홀로 남았다. 승기가 남는다고 했는데, 그냥 보냈다. 우현이의 태도를 보면, 십중팔구 승기는 욕먹을 것 같아서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우현이와 승기의 관계는 사무적인 듯하다. 혼자 있으니, 사무실은 제법 크게 느껴진다. 사무실 전등을 다 끈다. 그리고 대표실의 등만 켠다. 대표실에서 어둑한 사무실을 바라본다. 승기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지금의 괴로움은 존재하지 않는 감정이다. 블루 고스트의 훌륭한 전략에 이미 승복해서다. 무엇을 의심하는 일도 더는 하지 않았다. 어쩌면, 듣지 않았어야 한다. 그랬다면, 지금도 사람들을 위해 선한 일을 한다고 굳게 믿을 수 있어서다. 승기 말대로라면, 우리는 카쿠르터와 소액 투자자인 서민에게 좋은 일을 한다. 부자의 돈으로 그들의 배를 채우니까. 반쪽짜리 선행도 선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양심은 아니라고 한다. 양심은 그만두라고 경고한다. 양심은 지금 위험하다고 소리친다. 하지만, 카테피아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더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던, 골방에 갇혀, 글을 쓴다는 거창한 허세를 뒤로, 불안에 떨며 살고 싶지는 않다. 우현이 말에 설득당해 이 감정을 깊숙한 골방에 가두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진심으로 그러고 싶다.
to be continued....
[252] 폰지사기(Ponzi scheme)란 실제로는 이윤을 거의 창출하지 않으면서도 단지 수익을 기대하는 신규 투자자를 모은 뒤, 그들의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배당(수익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자행되는 다단계 금융 사기 수법을 말한다. [출처: 나무위키]
[253] 보루 (堡壘): 지켜야 할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