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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테난조 Nov 15. 2023

Episode 14: # 개미지옥, 12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Episode 14:

# 개미지옥, 12화





48. 목적어를 쏙 뺀 기자와 승기의 대화는 끝났다. 아무 말 없이 서로 밥을 먹는다. 불청객이 되어서, 이들의 대화에 난입해 묻고 싶다. 위태로운 사생활이 무엇인지. 하지만 그러면 못나 보인다. 인사 팀장으로 소개했는데, 관련한 일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시인하는 꼴이니. 적당히 눈빛으로 맞장구를 쳐 주는 게 현명하다. 그렇다고 문을 박차고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화가 난다. 오늘따라 바닷가의 비린내가 코를 더욱더 자극한다. 해산물이 문제다. 문제. 승기에게 인사 후 기자는 자리를 뜬다.



“승기야, 도대체 뭐야? 뭐가 위태롭다는 거냐? 궁금해 미치는 줄 알았다. 말 좀 해줘.”

 

“효상아, 그래, 궁금한 것 참느라 고생했다. 기자, 그 새끼 말이야. 기레기로 소문이 자자하더라고. 아니면 말고 식의 소문으로 소상공인 또는 중소기업에 빨대를 꽂아 피를 빨아먹는 양아치 삼류 기자야. 조사하니까, 그렇게 상납금을 바치는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이 꽤 되더라고. 이 새끼의 행동이 왜 더 양아치답냐면, 중견기업 이상의 규모는 건들지도 않아.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은 힘이 있으니까. 반격하지 않을, 힘없는 기업만을 골라서 괴롭히는, 하여튼 아주 저질이라고.”

 

“그래서, 그 기자의 위태로운 사생활이 뭔데?”

 

“그 새끼 게이야. 동성애자라고. 한 달에 한 번 게이바에서 여장하고 공연을 해. 아까 그 새끼에게 보여준 사진은 게이바 내부였어. 아마 그 사진을 보고 기겁[248]을 했겠지.”

 

“승기야, 그러면 무슨 방법으로 위태로운 사생활을 공개하면서 현재의 삶을 지킬 방법은 있기는 해? 임 대표와 무엇을 상의한 거야?”

 

“임 대표와? 상의를? 물론, 임 대표도 알고는 있지. 그 기자가 동성애자고 기레기라는 사실은. 하지만, 임 대표는 그저 잘 처리하라고만 이야기했어. 아무것도 몰라. 그리고 그런 기레기 사생활을 왜 지켜줘야 해? 피눈물 흘린 기업이 한두 개가 아닌데? 사실 이미 다 알렸어. 그놈 주변인 모두에게. 그놈이 게이라는 사실을.”

 

“승기야, 조금 과한 처사가 아닐까? 그렇게까지 해야 해? 그가 이루었던 모든 게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효상아, 정신 차려. 그놈은 기레기라고. 우리한테 상납금이라 받으려고 입질을 해댄 놈이라고. 그런 놈한테 무슨 동정을 해? 더 웃긴 게 무엇인지 아냐? 동성애자 관련한 기사를 몇 개 썼는데, 그놈 하나같이 동성애자를 부정적으로 그렸어. 도대체 이게 무슨 심리냐? 지도 게이면서 같은 게이를 부정하는, 그런 심리. 그리고 그놈이 무너져야 회사 관련한 기사를 쓰더라도 신뢰성이 떨어져.”







49. 얼마나 화가 난 걸까? 눈썹과 입술은 떨린다. 승기가 이렇게나 큰 눈을 지녔던가? 쌍꺼풀이 있었던가? 커다랗게 뜬 눈으로 누구라도 잡아먹을 기세다. 흥분을 이겨내지 못한다.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승기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한다. 목표를 위해 그 어떠한 불순물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태도다. 하지만, 우리가 떳떳하면 그게 무엇이든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꼭 이렇게 해야 했을까? 극단적이다.



“승기야, 그래도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우리 사업은 떳떳해. 기자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다고. 그러니 어떠한 기사가 나오더라도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없다고. 안 그래?”


“안 효상!! 못 알아듣는 거야? 내 말을? 지금 민감한 시기라고!! 쓰레기 기레기가 내는 거짓 기사로도 타격을 받을 수 있어!! 진실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아직도 모르겠어? 인간은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아해. 그저 그들이 보고 싶은 진실만 볼뿐이지. 진실은 늘 왜곡돼. 왜 어린애처럼 구는 거야?”



아이고, 깜짝이야. 대관절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는 게냐.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거냐? 이대로 물러나면 정말로 어린애다.



“승기야, 말이 좀 심하네. 어린애라니? 요즘 너와 임 대표만 이야기하고. 뭘 알아야 대처를 하지. 언제 나와 상의를 했어? 그렇잖아, 일반 직원처럼 대하고. 왜 우리 사업이 정말로 문제가 있어? 그래서 도둑이 제 발 저린 거냐?”

 

“미안하다. 효상아, 갑자기 소리를 질러서. 그래 네 말이 맞아. 우리 사업은 문제가 있어. 임 대표와 상의한 끝에 결정했어. 너에게도 공유하기로. 난 끝까지 반대했어. 심약한 [249] 네가 감당할 일은 아니라고. 하지만 임 대표는 너를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같이 가자고 한 거야.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사업에 문제가 있다고? 그렇다면 기자가 말한 게 모두 사실이라는 소리인가? 그럴 리가 없다.



“승기야,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우리 사업에, 카테피아에 문제가 있다고?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아? 심각한 것은 아니지? 그렇지?”



승기는 나를 뻔히 쳐다본다. 입술을 다문 채, 눈을 찡그린다. 결심이 아직 서지 않은 듯하다. 내게 말해야 할지를.



“효상아,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 모른 채 오늘처럼 살아갈 수 있어. 하지만, 듣고 나면 더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그래도 괜찮아? 솔직히 말하면, 걱정이 앞선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를. 한편으로는 네가 우리 사업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고.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할게. 정말로 알고 싶어? 그동안 나와 임 대표가 너만 빼고 둘이서만, 그러니까 너를 서운하게 했던 이유를?”



뭐가 그리 심각해? 정말 망하는 거냐? 카테피아가? 그럼 우리를 믿고 따라온 수많은 카쿠르터, 직원, 그리고 투자자는? 그리고 나는? 우리의 인생 2막은? 그럴 리가 없다. 사업의 방향은 의심할 여지없이 완벽하다. 모인 투자금만 보아도 바로 알 수 있다. 상상이 가지 않는다. 카테피아가 무너진다고?



“승기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갑자기 긴장된다. 일단, 들어 보고 판단할게.”

 

“효상아,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이 이야기를 듣고 감당하기 어려워. 지금처럼 사는 게 좋지 않아? 아무것도 모른 채. 임 대표에게는 내가 잘 말할게.”

 

“승기야, 난 알아야겠다. 하지만 지금은 들을 자신은 없다. 일주일만 시간을 줘. 그 후 결정할게.”







50. 약속한 일주일의 시간은 곧 다가온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병가를 내고 북한강 근처에 있는 카페에 앉아 있다. 초록색으로 뒤덮인 전경[250]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다. 눈앞의 펼쳐진 풍경은 작년과 또 다르다. 그리고 재작년과도 또 다르다. 점점 자연색은 사라지고 인공색으로 뒤덮인다고 해야 하나? 오묘한 기운을 내뿜어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산과 강 그리고 인적이 드문 카페. 기억하는 10년 전 이곳이다. 사람의 마음은 비슷하다. 이곳의 아름다움을 나만 사랑하는 게 아니었다. 하나둘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한다. 감성을 듬뿍 담은 인테리어로 치장한 예쁜 카페가 들어선다. 엄청나게 들어선다. 지금도 들어서는 중이다.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도 사람, 저기도 사람, 거기도 사람, 온통 사람뿐이다. 사람. 사람. 사람. 그리고 나도 그중 하나다. 아마 녹색이 사라진다면, 그때나 멈추겠지.



오묘한 기운을 내뿜은 산의 정기를 짙은 먹구름이 삼킨다.

눈앞에 펼쳐진 알록달록한 덧니로 가득한,

그것을 개성이라 부르는,

그것을 다양성이라 부르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찾아볼 수 없는 흉물이다.



자연을 훼손한다는 죄책감에 이곳을 더는 오지 않을까? 그건 아니다. 감성적인 인테리어로 치장한, 나를 멋지게 하는 카페를 끊을 마음은 없다. 자주 올 생각이다. 말은 흉물이라 하지만, 아직은 아름다우니까. 무자비한 개발로 민둥산이 되어 푸른색이 아닌 황토색으로 뒤덮기 전까지는, 무자비한 개발로 오염수로 인해 녹조로 덮인 죽음의 강이 되기 전까지는, 아마도 그때가 되면 발길을 끊겠지. 인간의 본질은 이기적이다. 인간은 군중 속에 숨어서 타인에게 이타적인 선택을 강요한다. 흉물이 될 눈앞의 경치를 바라보니 답이 섰다. 선택적 정의로, 선택적 올바름으로, 선택적 분노로 카테피아를 완성하리다. 승기가 말한 사업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한다고 알 길은 없다. 그리고 승기가 아직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른다.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카테피아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리고 승기에게 또 어린애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다. 어른처럼 행동하자. 인간처럼 행동하자. 들러리가 되어 흉물은 되고 싶지는 않다. 다시 태어나면, 반성하는 마음으로 나무가 될 거다. 크리스천은 다시 태어나 이승[251]을 밟지 않는다. 모든 게 명확해졌다. 승기를 만나러 가야겠다.



더욱 신기한 게 무엇인지 아는가?

아무도 풍경을 보지 않는다.

 

모두가 약속한 것처럼

그들에게 익숙한 6.7인치의 디지털 풍경만 바라본다.

 

여기에는 왜 온 건데?

하하하.

 






51. 승기 집으로 가는 중이다. 승기는 누구도 이 이야기를 몰랐으면 한다. 누구도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밀 사항이다. 승기와 마트에 잠시 들렀다. 생강과 모양이 비슷한 못생긴 감자, 돼지감자를 승기는 비닐봉지에 담는다. 돼지감자와 생강을 바로 구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둘의 차이를 알고 나면, 멀리서도 구별하기 쉬운 게 돼지감자와 생강이다. 생강은 길쭉하지만, 돼지감자는 뭉뚝하고 타원형이다. 그리고 한눈에 보아도 돼지감자가 생강보다 크다. 후각 중추를 자극하는 신호 또한 다른데, 돼지감자는 흙냄새가 난다. 반면에 생강은 매콤한 향이다. 이렇게나 다르다. 하지만, 둘의 쓰임과 관련이 없어 관심이 없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언제나 생강은 돼지감자고 돼지감자는 생강이다. 어쩌면 그동안 승기와 우현이를 모른 척했는지도 모른다. 둘이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관심도 없으면서 그들이 날 멀리한다고 합리화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야, 따돌림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다. 의심으로 시작한 불편한 감정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야 난 선하니까. 그래야 난 바르니까. 그래야 난 틀리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우현이와 승기는 나쁘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면 우현이와 승기는 틀렸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면 우현이와 승기는 악하다고 해야 하나? 그건 분명히 아니다. 나처럼 그들도 선을 지키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들도 나처럼 카테피아를 건설하려는 마음은 진심이다. 모든 것을 옳고 그름으로 바라본다. 눈을 감고 차이점을 보려 하지 않는다.



돼지감자와 생강 중

무엇이 착하고 나쁜 것인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

 

눈을 부릅뜨고

생강과 돼지감자를 구별할 시간이다.



to be continued....



[248] 기겁 (氣怯): 갑자기 놀라거나 겁에 질려 숨이 막히는 듯함.

[249] 심약 (心弱): 마음이 여리고 약하다.

[250] 전경 (前景): 앞쪽의 경치.

[251] 이승: 지금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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