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조쌤의 하키토브
관찰 그리고 기록.
노트북 키보드를 타각타각 두드린다. 나는 관찰자다. 동기의 모습을 망망대해에 놓인 작은 쪽배에서 관찰 중이다. 타자소리에 맞추어 동기의 미간 주름은 점점 깊어진다.
그녀는 이메일을 읽고, 한숨을 쉰다.
그녀는 전화기를 보고, 한숨을 쉰다.
그녀는 귀 뒤로 머리를 넘기고, 한숨을 쉰다.
타각타각, 타각타각
긴급한 키보드의 소리는
조급함을 녹아내는
그녀만의 루틴일지도.
그 루틴은 고도의 집중을 위한 행동인지 모른다. 작은 15인치의 노트북 화면은 그녀의 올곧은 공간이다. 그녀의 시선은 그곳을 넘어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슨 부서일까?, 경력직 직원인가?,
아니면 선배 사원인데 신입사원 교육을 위해서 배치해 둔 건가?’
다양한 분석은 각자의 목소리를 양탄자 삼아 회사 주위를 날아다닌다. 관련한 프로젝트를 설명하려고 서로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명확한 답은 없다. 앗! 눈부시다. 그녀의 은은한 안광을 노트북을 뚫을 듯 고정한다. 그래서 그럴까? 위협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녀에게 대화를 건넬 담력은 없다. 그러나 내가 그녀를 관찰하 듯, 누군가도 나를 관찰 중이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상대방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 초조한 내 모습이 회의실 유리창에 비쳐서다.
관찰을 끝내야 한다.
동기의 미간을 깊이 관찰하면
십중팔구 오해를 받으니까.
자연스레 책상에 놓인 다이어리로 시선을 옮긴다. 다이어리는 오늘 주제에 맞춘 듯 텅 비어 있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고 아무것도 적을 것은 없다. 다이어리마저 나와 비슷한 처지다. 우리는 둘 다 신입 사원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딩동댕, 신입 사원 교육을 시작한다. 긴급히 정보를 무의미하게 다이어리에 욱여넣는다. 각 부서의 팀장님은 부서 소개 및 업무 진행 프로세스를 설명한다. 이해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영업맨이다. 영업 및 개발 업무를 같이 하기에 모든 부서와 업무 연관성이 있다.
그래, 이해는 나중에 하자.
우선 다 기록하자.
다이어리가 여기저기 까맣게 물들어 간다. 입사 이후 계속 텅 비어 있던 다이어리에도 이제 중요한 정보로 그득하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쉴 새 없이 적다 보니
교육 첫째 날이 끝났다.
다이어리가 채워진 만큼, 교육 시작 전에 다른 동기와 비교하여 불편했던 마음은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어려운 취업 시장을 뚫고 신입 사원이 되었다. 이것으로 충분히 성공한 게 아니던가?
곧 이들처럼 바빠질 테니깐
지금은 잠시 취업 성공의 열매에 취해 보자!
이른 새벽 집을 떠나 하루를 그득하게 채워 낸 자신에게 대견의 상장을 수여한다. 전반적으로 차갑고 어두웠던 마음에 작은 온기와 불빛이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출장으로 이곳에 왔기에 회사에서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나에게 보상을 줄 수 있는 시간은 다가온다. 퇴근까지 30분 남았다. 위협적인 키보드 소리 주인은 급박한 시간을 노트북에 담아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날 긴장하게 하는 요소는 그렇게 사라져 간다. 이 평온한 마음에 아름다운 노랫가락 같은 제안이 온다.
‘동기들끼리 저녁 먹으러 갑시다.’
뽀글 머리 파마머리에 굵은 뿔테 안경을 쓴 동기가 용기 있게 제안한다. 12명 정도 되는 동기들, 그들의 눈빛은 순식간에 오고 간다.
나는 확인해야 할 눈빛이 없었다.
용기 있는 동기의 제안에 이미 충분히 설득당해서다.
아니, 고마웠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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