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주 한 잔 1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by 카테난조



# 소주 한 잔

1화




“소주 한잔하자.”  



1. 사회생활에서 만난 승기는 1살 많은 형이다. 1살 많은 형이지만 회사 동기여서 친구처럼 지낸다. 보슬보슬 비 내리는 소리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싶다며 강변역 정류장 주위에 쭉 늘어선 포장마차에서 보자고 했다. 비가 와서 그런가? 옷이 줄었다. 살이 찐 건 아니다. 출근하면서 평소에 즐겨 입던 옷과 실랑이를 벌였다. 어느 날부터 비만 오면 옷을 입기가 불편하다. 살이 찐 건 정말 아니다. 이유를 모르겠다. 두 달 만에 승기를 본다. 살이 좀 쪘다고 한소리 하려나? 아니다, 승기가 매사에 잔소리가 심하지만, 외모 지적질은 안 한다. 잡다한 생각에 벌써 강변역에 도착했다. 개표구를 지나 1번 출구로 나와 신호등 앞에 서 있다. 눈앞에 즐비한 주황색 방수 천막이 줄을 지어 나를 반긴다. 떨어지는 빗소리와 타인의 발자국에 발맞춰 남몰래 춤을 추며 건널목을 걷는다.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승기는 이미 자리를 잡고 혼자 마시고 있다. 온실가스의 공범인 플라스틱 파란색 테이블과 등받이 없는 빨간색 의자, 이들의 동침이 오늘따라 대한민국의 고단함을 그려낸 태극기의 태극문양 같다. 하지만 그 고단함 안에서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수많은 ‘나’와 마주하는 게 때로는 위로가 된다. 사람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그렇게나 재미없는 이야기를 그렇게나 즐겁게 떠들고 있다.




이들의 몸은 고단했기에

고달픈 마음 누군가는 위로해야지.

닭똥집에 계란말이 그리고 오도독뼈

소주 한 잔하면서 이들을 씹으며

오늘을 견딘 나를 위로하며

내일을 견딜 나를 사랑하자.




2. 승기에게 소주는 특별한 신호다. 소주는 주로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는 이와 무언가 논쟁을 하고 싶을 때 마신다. 난 술을 못한다. 알코올을 섭취하면 바로 머리가 지끈거리기에 맛을 느끼기 어렵다. 술이 맛있다고 표현하는 이를 보면 부러울 때가 많다. 가질 수 없는 감정이라서 그렇다. 승기도 내가 술을 못하는지 아주 잘 안다. 그래서 승기가 맥주가 아닌 소주를 마시자고 할 때는 술을 먹고 싶어서가 아니다. 내 생활에 관해 대화하고 싶을 때이다. 대화는 무슨…. 곧 난 초토화될 예정이다. 승기의 팩트 폭력은 정말 들어주기 힘들다. 너무나 맞는 말만 해서 도망가고 싶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오지랖이 넓은 성격도 아닌데 유독 내 생활에 관심이 많다. 진짜다. 소주를 먹다 다른 이와 사회적 이슈에 관한 논쟁으로 술자리를 파한 상황을 목격한 일은 수도 없었지만, 누군가의 삶 안으로 들어와 이야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도대체가 말이다. 네가 말하는 다른 삶이 무어냐?

1년을 지켜봤는데 변한 게 없어.

그래서 그때 말렸잖아.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3. 1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경영에 관련한 글을 쓰겠다고 승기에게 호기[3] 있게 말했다. 승기의 대화법은 일정한 알고리즘으로 답을 도출하려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까 알겠다. 그의 능력이다. 승기는 명의[4]라 상대방의 문제점을 금방 파악해 해결책을 제시한다. 주위에 사람이 많을 법도 한데 나와 우현이뿐이다. 승기는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해 대화하는 유형은 아니다. 상대방의 아픈 곳을 허락 없이 강제로 열어 확인하는 타입이다. 그러니 승기 주위는 시끄럽다. 젊은 시절에는 항상 사건·사고를 달고 다니는 ‘이슈메이커’였다. 그래서 승기가 사고 칠까 봐, 사건에 얽히는 게 싫어서 하나둘 곁을 떠났다. 나로서는 그게 싫지만은 않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승기의 사건·사고는 우리에게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는 젊음의 표상[5]이었다. 승기를 통해 조금은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기감정에 솔직한 승기를 바라보며 대리만족을 느꼈을까? 그래,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살지 못하니까.



“승기야,

네가 보기에는 답답해도

하루하루 변해가고 있어.”



그래, 다른 삶을 걷기로 했다.




Even if everyone is telling you that something wrong is something right. Even if the whole world is telling you to move... it is your duty, to plant yourself like a tree... look them in the eye and say "No, you move." [6]


모든 사람이 네게 잘못된 일을 옳다고 말해도, 전 세계가 네게 물러서라고 말하더라도, 굳건한 나무처럼 서서, 그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아니, 네가 물러서.”라고 말하는 게 네 의무야.



4. 영화의 멋진 대사에 감동하여 삶을 송두리째 변화할 만큼 어리석은 나이는 아니다. 아까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투명인간이라고. 큰 뜻이 있어서 타인과의 관계에 초연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주위 사람이 나를 배제한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사람이 그리워 밤마다 베개를 감싸며 외로움에 몸부림치지도 않는다. 탁자 위에 놓인 스투키가 되고 싶다. 어떤 느낌인지 알겠는가? 사람의 행동을 방해하지 않는 동선에 놓여 짙은 초록색 빛깔을 내뿜는 스투키가 나는 좋다. 아무도 스투키가 그 자리에 있다고 문제 삼지 않는다. 그렇다고 스투키가 사라진다고 누가 걱정이나 할까? 존재하면 미약하게나마 미관을 살리고 사라져도 타인의 공간을 그대로 살리는 그런 물질이고 싶다.



to be continued....



[3] 호기(豪氣): 씩씩하고 호방(豪放)한 기상.

[4] 명의(名醫): 병을 잘 고쳐 이름난 의사.

[5] 표상(表象):대표적인 상징.

[6] 조 루소와 앤서니 루소 (감독) 마블 스튜디오 (제작) (2016).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영화]. 미국: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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