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안녕하세요! 사람 향기를 좋아하는
임우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1. 동아리 문을 연 후, 빼꼼히 머리만 들이밀어 내부를 살피는 우현이와 눈이 마주쳤다. 우현이는 미어캣처럼 큰 눈에 동글동글한 체형을 지닌 귀여운 외모다. 입고 다니는 옷을 보노라면 귀태가 흐른다. 서울 말씨를 쓰는 경상도 사람이다. 요즘이야 서울 사람과 지방 사람의 구분이 있겠는가? 하지만 우현이는 아니다. 농담인진 진담인지 알 수 없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울 사람과 지방 사람을 구분한다.
“지역 번호가 ‘02’ 아니면 다 지방이지.
그래서 난 지방 사람이야.”
2. 우현이는 은연중[22] 서울 사람을 동경함에 틀림이 없다. 부모님 모두 서울 사람인데 우현이가 어렸을 때 이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우현이 말투에서 경상도 말씨의 억양을 찾아보기 힘들다. 경상도 말투는 정말 즐겁거나 당황할 때 나온다. 동아리를 선택한 이유도 서울 여자가 많을 거로 생각해서다. 우현이를 옆에서 보면 여자를 참 좋아한다. 우현이의 여성 편력을 친구로서 다 드러내기는 어렵다. 그래도 하나 정도는 이따가 이야기하려 한다. 이런 남자를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우현이가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다른 이에게 손가락질받을만한 행동을 한 게 아니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이성적 판단은 놀라울 뿐이다. 다만, 오직 여자와 얽힐 때만 놀라울 정도로 총명하다. 박애주의를 가장한 어장관리의 끝판왕이다. 우현이는 이를 ‘감성적 상상력’이라고 표현한다. 심리학 시간에 배운 ‘도덕적 상상력과 민감성’[23]에 한참 심취하더니만 이제는 박애주의를 가장한 어장관리를 모든 이의 마음을 이해하여 공감하는 감성적 상상력이라 우기고 있다. 헛소리다. 그냥 우현이는 여자가 좋은 거다. 예를 들어서, 우현이의 여성 예찬론은 가히 종교에 가깝다. 남자가 맛집을 찾는 이유도, 공부하는 이유도, 돈을 버는 이유도, 외모에 신경 쓰는 이유도, 모두 여자와 사랑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현이는 모든 성취감의 원초적 이유를 여자라 확신한다. 우현이는 항상 강조한다.
“효상아, 10명의 여자가 네 스타일이라 치면, 10명에게 다가가 네 진심을 보여줘. 그러면 최소한 2명은 관심을 보인다. 진짜다. 모든 여자가 우리를 싫어하지는 않아. 결국, 사랑의 늪에 빠져 뒹굴고 싶다면 확률 싸움에 능해야 해. 우리는 어리다고. 사랑하려고 너무 많은 이유를 만들지 마. 네가 꼰대라면 모를까.”
3. 미친놈이다. 그런데 이 말에 귀 기울이는 내가 더 한심하다. 우현이는 정말 확률 싸움에 능해 보였다. 알고 있는 우현이의 사랑만 손을 꼽을 정도다. 부러운 녀석이다. 그리 잘생기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여자들은 우현이를 왜 좋아할까?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배우고 싶다. 좀 성의 있게 가르쳐 달라고. 속성으로. 나도 확률 싸움에 능하고 싶다고. 나쁜 놈, 소개팅 한 번을 안 해 주냐. 어떻게 한 번을… 우현아, 나 아직 모태솔로다.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했니?
4. 우현이와 난 사진 동아리 부원이다. 카메라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진 찍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동아리에 가입했다.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을 좋아하고 시끄러운 곳보다 조용한 곳을 선호한다. 나무, 돌, 물, 꽃, 흙 등 자연물은 말이 없다. 아니다, 온몸으로 자기 삶을 표현한다. 인간만 알아듣지 못할 뿐이다. 자연물은 욕심이 없다. 생존하려고 다른 종을 위협하지 않는다. 자연물은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만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한다. 그래서 인간의 대화법이 아닌 아름다운 절제를 지닌 이들의 대화법을 익히고 싶다. 말하지 않아도 삶을 표현하는 법을 알아가고 싶다. 사진을 배우면 이들의 대화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왠지 사진 동아리는 풍경 사진을 찍으러 다닐 것 같다. 그나저나 우현이는 정말 이곳에 서울 여자가 많을 거라고 믿은 걸까?
to be continued....
[22] 은연중(隱然中):남이 모르는 가운데
[23] 도덕적 상상력과 민감성: 상대방의 처한 상황을 이해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관점에서 행동을 상상하기에 타인에 대한 공감과 다양한 상황에 대한 민감성 발달로 이어진다. 이는 더 나은 도덕적 판단으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