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part 3
안녕하세요 카테난조입니다.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하권"의 시작인 part 3 연재를 시작합니다.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상권"인 part 1과 part 2 에서는 각 인물의 성격과 이들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또한, 각 캐릭터의 가치관이 다르더라도 극복할 수 없는 외부적 환경을 통해 결국 하나의 선택을 종용당하는 현실을 그려내려 노력했습니다.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하권"은
상권에 이어서 불안한 사회적 시스템으로 인해 가치관이 다른 우현, 승기, 그리고 효상이는 돌이킬 수 없는 하나의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선택을 엿보면서, "우리가 확신하는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결정은 정말 최선의 선택인가?"를 자문하는 게 소설 전체의 메인 테마입니다.
그럼 시작할게요.
"조금씩, 느릿느릿, 꾸역꾸역"
“우현아, 전화로는 할 이야기는 아니고
만나서 이야기했으면 하는데,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돼?”
1. 오랜만에 듣는 소리다. 대학교 졸업 후, 효상이가 먼저 연락해 따로 만나자고 하는 일이 드물다. 아마도 승기와 자주 어울려서일지도 모른다. 효상이와 승기는 입사 동기다. 서로 전혀 맞지 않는 성격을 지닌 둘이 친하게 지내는 게 나로서는 별일이다. 그리고 솔직히 좀 서운하다. 아니, 정말 서운했다. 대학교 때 그렇게 친했던 우리여서다. 효상이와 어울렸던 대학 생활은 어머님의 그리 강조한 ‘끼리끼리’의 응용[1]이었다. 그리고 당시는 지지리 궁상맞던[2] 시절이었다. 물론, 효상이네 형편이 어려웠지 우리 집 형편은 어렵지 않았다. 예를 들면, 지금이야 돈가스는 길거리에 널린 흔한 음식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돈가스는 분식집이 아닌 레스토랑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고급 요리였다. 운이 좋게도 아버지가 대구에서 큰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1980년대, 100평형대의 레스토랑은 대구에서도 손꼽혀서다. 배고플 때마다, 아버지를 찾아가 원 없이 돈가스, 생선가스, 함박스테이크 등을 먹었다. 당시에는 그게 귀한 음식이라는 생각조차 없었다. 또한, 청소년 시절은 그 어떤 시대보다 해외 브랜드가 한국을 뒤흔들던 시대였다. 돌아보면, 그만큼 대한민국은 발전의 시대였다. 그렇기에 2022년을 살아가는 젊은이가 안타깝다. 국가의 발전이 무엇이라고 피부로 느끼기 어려워서다. 우울한 이야기다. 다시 1990년대 돌아가면,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게스, 미찌코 런던, 인터크루
안전지대, 마우이, 퀵실버, 베이직, 캘빈클라인, 폴로,
보이런던, 배드보이, 펠레펠레, 리바이스, 겟유즈드
2. 언급한 모든 브랜드를 즐겨 입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브랜드가 아니면 구매하지도 않았다. 특히,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가 정말로 인기가 많았던 청바지인데, 바지 지퍼 부위에 붙어있는 로고는 부의 상징이었다. 가격도 정확하게 기억난다. 65,000원이었다. 청바지가 몇천 원 하던 시절이었기에 65,000원은 정말로 비싼 청바지다. 소개팅에 이 청바지를 입고 나가면, 모든 여자의 관심은 내게 쏠렸다. 여자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입은 옷을 스캔했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는 자존심이자 정체성이었다. 오랜만에 어린 시절을 돌아보니, 현재 내가 얼마나 무능한 아버지인지를 깨닫는다. 결혼해 아이를 키워보니까 알겠다. 아이에게 입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원 없이 해주는 게 말처럼 쉽나? 그래, 칠흑 같은 어둠이 오든지 말든지, 하늘에 있는 별을 따서 내 아이를 웃게 해주고 싶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다. 마음만 먹는다고, 손을 있는 힘껏 뻗는다고, 사다리를 빌려 올라가더라도, 하늘에 있는 별은 딸 수 없다. 애초에 욕심이다. 그렇게나 어려운 일을 어린 시절에 난 쉽고 간단한 일이라 생각했다. 내 아이와 과거의 내 어린 시절을 비교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리고 부모님께 정말로 감사한다.
말처럼 쉬웠다면,
난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지도 않았겠지.
그리고
효상에게도
승기에게도
이런 짓을 하지 않았겠지.
3. 말이 나와서 말인데, 1990년대 소개팅은 지금과는 다른 아날로그 형식이었다. 예를 들면,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서로의 목소리로만 호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당시는 인터넷이 없었던 시대라, 이를 뭐라 불러야 할까? 음성 데이트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은 특정 전화번호를 부여한다. 특정 전화번호는 일종의 사서함이다. 호출기(삐삐)와 비슷한 알고리즘이라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지역을 설정하고, 인사말을 녹음해 사서함에 올린다. 비슷한 지역을 설정한 이성은 인사말의 녹음을 듣고 음성 데이트를 신청한다. 주로 남자가 여자한테 신청하는데, 나는 달랐다. 당시에 경상도에서 서울말을 쓰는 10대는 드물어서다. 그게 호기심이든지 호감이든지, 내 말씨 덕분에 많은 이성과 음성 데이트를 했다. 음성 데이트가 무르익으면, 서로의 번호를 교환한다. 번호 교환 과정까지 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보통 음성 데이트만 즐기다가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너 어디 사는데?”
“나 범어동에 살아.”
“삐삐 번호가 뭐야?”
“삐삐 없는데”
“아 그래? 그럼 집 전화번호를 알려줘.”
“내 짐 완전 뚱뚱해가지고 만나면 실망한다.”
4. 중학교 시절, 삐삐를 가지고 다니는 여학생은 거의 없었다. 삐삐는 청소년이 소지하기에 비싼 전자 제품이어서다. 오히려 여학생이 삐삐가 없는 게 내게는 호재였다. 당시는 삐삐를 지닌 청소년은 동경의 대상이어서다. 문제는 집으로 전화하면 부모님이 전화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게 문제다. 부모님에게 건전한 학생이라는 인상을 남겨야 해서다.
“안녕하세요, ○○이 친구, 임우현입니다. 혹시, ○○가 집에 있습니까?”
서울 말씨는 이성 친구 부모님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긴 것 같다. 항상 바꿔 주었다. 한참 이성 친구와 통화를 하다 보면, 갑자기 이성 친구가 사투리로 소리를 지른다.
“엄마는 왜 내 전화 엿듣는데!! 내 전화다. 엿듣지 마라.”
“딸깍”
5.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각 방에 전화기가 있었다. 물론, 전화기를 사달라고 엄청나게 졸랐다. 거실이 아닌 방 안에서 누군가와 사적인 통화를 즐기는 행복은 청소년에게 로망과 같았다. 부모님으로부터 전화기를 받아내면 모든 준비는 끝났다. 달콤함을 즐길 여유만 있으면 된다. 학원을 거쳐 독서실에서 공부가 끝나면, 얼추 밤 11시가 넘었다. 서로 시간을 정해, 보통은 새벽이다. 그렇기에 부모님이 받기 전에 먼저 받아야 한다. 정말 잽싸게 받아야 한다. 새벽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경비 업체에서 보내는 경보음처럼 상상을 뛰어넘은 소음이어서다. 벨 소리가 제대로 울리기 전에 전광석화[3]로 전화를 받으면 그때부터 둘만의 달콤한 음성 데이트를 시작했다. 잠들기 전, 무거운 수화기를 귀 옆에 대고, 침대에 누워, 뜬눈으로 지새운 적이 참 많았던 시절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굴도 모르는 이성과 그렇게나 할 이야기가 많았을까?
목소리만 듣고,
누군가를 상상하며 좋아할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다.
to be continued....
[1] 응용 (應用): 어떤 원리나 지식, 기술 따위를 다른 일을 하는 데 활용함.
[2] 지지리 궁상맞다 (窮狀―): 매우 심하게(지긋지긋하게) 초라하고 꾀죄죄하다.
[3] 전광석화 (電光石火): 아주 신속한 동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