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6.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버거워, 삶의 달콤함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은 지 오래다. 생각해 보면, 청소년 시절은 그렇게나 어른이 되고 싶었다. 부모님의 잔소리도 싫었고, 학교라는 시스템에 얽매여 통제당하는 것도 싫었다. 타인의 속박[4]에서 벗어나, 원하는 행동을 눈치 보지 않고 펼치는 그런 날을 매일매일 꿈꿔왔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보니 알겠다. 청소년 시절이 얼마나 눈부시고 행복했던 순간이었는지를. 적어도 사회가 감옥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서다. 어른이라는 명찰을 가슴에 단 순간부터, 거대한 힘을 지닌 타인의 속박으로 이루어진 감옥에 제 발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도 무기징역이다. 들어가기 싫다고 거부할 수도 없다. 암흑이 전부인 관을 내 집으로 삼기 전까지는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다. 다만, 감옥 안도 나름 소소한 재미는 있다. 드라마에서도 나오지 않는가? 어울리는 세력에 따라서 행동의 범위가 죄수마다 다르다. 적어도 효상이와 승기보다는 다양한 것을 누리며 징역[5] 중이다. 그래서 승기를 보면 안쓰럽다. 감옥 안에 갇힌 줄도 모르고 아직도 혼자 트루먼 쇼[6]를 촬영 중이다. 감옥 안에 갇힌 죄수라는 사실을 승기가 깨닫는다면, 승기는 뭐라고 답할까? 자기는 억울하게 옥살이 중인 백로라 항변[7]할까? 아니면 현재 상황을 받아들일까? 아니면 존재하지도 않는 바깥세상을 지어내어 탈옥을 시도할까? 궁금하기는 하다. 효상이는 승기보다는 낫다. 수형[8]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존재하지도 않는 바깥세상으로 탈옥을 시도 중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만의 길을 걷는다고 하는데, 감옥 안에서 자기만의 길을 걷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모르겠다.
모두가
감옥에 갇힌 까마귀다.
그 안에서
선량한 척 사는 게
더 위선적인 삶이 아닌가?
까마귀는 백로가 될 수 없다.
난 차라리
까마귀 왕이 되고 싶다.
7. 어머님은 ‘끼리끼리’ 어울리라고 항상 강조하셨다. 하지만 ‘끼리끼리’의 의미를 청소년 시절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부분 내 시간은 경상도에 머물렀다. 그렇다면, ‘끼리끼리’의 지칭은 경상도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를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보내려고 그렇게나 악착같이 공부하라고 했을까? 모순적인 말씀이다. 어렸을 때, 서울에 살았던 기억은 없다. 친구라는 개념을 이해한 후, 줄곧 경상도에 있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구다. 불알친구[9]가 있는 곳은 대구다. 어머님은 항상 정말 귀 딱지 앉도록 이야기한 게 있다.
“우현아,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야 해.
누구랑 같이 있느냐에 따라서
네가 만날 수 있는 환경이 변해.
그러니, 집에서는 꼭 서울말을 써.”
8. 우여곡절[10] 끝에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했다. 공부를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할만한 성적이라고 말하기는 모호[11]했다. 운이 좋았다. 당시의 대학 수학능력시험의 난도[12]가 대폭 하락해서 점수가 많이 올라서다. 나보다 상위권에 있는 친구들은 이로 인해 엄청난 손해를 봤다. 그들의 수능 점수는 더 올라가기 어려워서다. 반면에 나처럼 중상위권에 있는 학생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고민에 빠졌다. 수능 성적이 대폭 상향해서다. 정말로 운이 좋았다. 그리고 너무나 행복했다. 꿈에나 그리던 서울 생활의 시작이라니. 동대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에 탑승 후, 서울역까지 이르는 지루한 4시간이 이렇게나 행복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부모님 통제에서 벗어나 다양한 이성과 데이트할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공부는 고등학교 때 지겹게 했다. 더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부모님이 다 해줄 거라고 믿었다. 매달 용돈은 주지,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지, 부족한 게 없었다. 완벽한 자유다. 사람들과 어울려 사랑하고 사람들과 섞여 즐겁게 살아가고 싶었다. 물론, 사람의 예는 여자만을 말한다. 20대 때, 나의 최대 과제는, 많은 이성을 만나 매력을 뽐내는 일뿐이었다. 칙칙한 남자를 만나는, 그런 상상하기도 싫은 범죄 같은 행동은 대구의 불알친구로 충분했다. 서울에서는 더는 남자와 우정을 쌓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했던 게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딱, 한 명
효상이만 예외였다.
9. 여자가 좋아할 만한 동아리를 가입하는 게 첫 번째 학교생활의 미션이었다. 당시의 유행은 누가 뭐래도, 디지털카메라였다. 보통은 ‘디카’라고 줄여서 말했다. 지금이야 핸드폰으로 모든 게 가능한 세상이지만, 당시만 해도 어깨에 디카만 걸쳐도 이성이 바라보는 눈빛부터 달랐다. 이성에게 자랑하려면 최소한 100만 화소를 지닌 디카가 필요했다. 문제는 가격이다. 물론, 책값을 핑계 삼아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더 달라고 요구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책값을 핑계로 용돈을 더 달라는 꼼수는 비상상황을 대비해 남겨두고 싶었다. 사실, 디카를 사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사진을 찍는 게 목적이 아니어서다. 요즘 스타일인 ‘엣지남’[13]이 되는 게 목표였다. 그렇기에 난 반드시 사진 동아리에 가입해야 했었다. 그곳에는 내 판타지를 채워줄 수많은 디카가 날 기다려서다.
“안녕하세요! 사람 향기를 좋아하는
임우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to be continued....
[4] 속박 (束縛): 어떤 행위나 권리 행사를 자유롭게 행하지 못하도록 얽어매거나 제한함.
[5] 징역(懲役): 교도소 안에 가둬 일정한 기간 노동을 시키는 형벌.
[6] 1998년에 개봉한 미국의 SF 드라메디 사실주의 영화이다. 현실처럼 꾸며진 스튜디오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인생 연대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쉬지 않고 방영하는 텔레비전 쇼와, 주인공이 그 사실을 조금씩 인지해가고 자신의 삶의 진실을 발견하려고 파고드는 이야기이다. [출처: 위키백과]
[7] 항변 (抗卞): 대항하여 자신을 변호함.
[8] 수형(受刑): 형벌을 받음.
[9] 불알친구(親舊): 남자 사이에서, ‘어릴 때부터 같이 놀면서 친하게 지낸 친구’를 이르는 말.
[10] 우여곡절 (迂餘曲折): 뒤얽혀 복잡한 사정.
[11] 모호하다 (模糊―): 말이나 태도가 흐리터분하여 분명하지 않다.
[12] 난도 (難度): 어려움의 정도. 난이도(難易度).
[13] 남들과는 다르고 개성 있는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여자들 또는 남자들을 일컫는 말 [출처: 네이버 오픈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