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0: # 블루 고스트 1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by 카테난조






Episode 10:

# 블루 고스트 1화






“안녕하십니까?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블루 고스트 아시아 헤드인 정호입니다.”



1. 누군가 아버지 사무실로 들어와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한다. 파란색 넥타이, 그리고 짙은 남색 정장 차림이다. 이 요새의 유일한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강렬한 햇빛으로 누구인지 알아보기가 어렵다. 누구지? 아버지인가? 블루 고스트? 아시아 헤드? 정호? 정호는 아버지 함자[68]인데? 눈 부신 빛으로 가려진 실루엣이 점차 선명해진다. 아버지다. 아버지의 다른 모습에 사뭇 놀랐다. 아버지의 연세[69]가? 맞다 곧 여든 살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 건강해 보인다. 아니다. 건강을 넘어서 회춘[70]한 느낌이다. 더군다나 자기소개하는 아버지 모습은 당당하고 늠름하기까지 하다. 어제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 진시황이 아버지를 보고 있다면, 분명히 이렇게 물었을 거다.



“당신을 보니 내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네.

제발 알려 주시게. 불로장생[71]을 이루는 불로초의 행방을!!”



아버지는 계속해 브리핑을 이어 간다.



“임우현 씨, 인간은 창조된 이후로 눈부신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의 삶은 정말로 윤택해졌습니다. 불과 150년 전만 해도 비행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어요. 가까운 과거로 가볼까요? 불과 30년 전만 해도 손바닥만 한 휴대전화를 모든 인간이 사용하리라 생각이나 했을까요? 이처럼 인간의 발전과 변화는 어떠한 개체도 이루지 못한 위대한 업적입니다. 그런데요,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이 유일하게 변화를 거부하는 게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무엇일까? 모르겠다.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모든 이가 오늘을 만족하지 않고, 더욱 나은 삶을 꿈꾸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문명을 이처럼 발달하게 한 근본적인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래요, 바로 인간의 탐욕과 욕망입니다. 임우현 씨? 당신은 무엇을 원해서 이 자리에 있습니까?”





2. 그 어느 때보다 목소리에 힘을 주어 아버지는 말한다. 아니면, 원래 아버지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블루 고스트 아시아 헤드 정호로 만나는 아버지는 낯설다. 이런 사내였단 말인가? 곧 여든 살임에도 여전히 꿈을 꾸며 설파하는 남자. 그리고 꿈을 공유해 세력을 확장하려는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 그의 카리스마에 매료돼 자신의 꿈을 태운 수많은 사람을 이끄는 남자. 내가 알고 있는 돈가스 사장의 아버지는 처음부터 위장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이런 남자에게 반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과 지금과 다른 환경에서 걱정 없이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 꿈을 이곳에서 이루었으면 합니다.”



답변이 식상[72]했을까? 아버지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말을 이어간다.



“그렇습니다. 제가 만난 모든 사람은, 희한하게도 임우현 씨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도대체 왜 우리는 서로 다른 인종, 문화, 그리고 성격을 지녔음에도 같은 바람을 말할까요? 도대체 왜요? 그래요, 행복하지 않아서입니다. 지금의 환경에서는 더는 답을 찾기 어려워서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우현 씨, 핸드폰을 꺼내세요. 그리고 눈에 띄는 기사가 무엇인지 찾아서 말씀 주세요.”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일단 아버지의 말을 따르고 싶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워서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포털 사이트를 장식한 오늘의 메인 기사를 검색한다.



전 국민이 피해자

바닥이 없다 -72% 하락

빚투 개미 빨간불

2030 영끌족 패닉

신변비관으로 극단 선택 증가

내년 경제 더욱 암울


아무리 뒤져도

훈훈한 기사는 없다.

대한민국의 장래는 어둡다.





3. 세상이 이렇게 흉흉했나? 온통 빨간불이다. 눈을 부릅뜨고 보아도 훈훈한 기사를 찾기 어렵다. 이 정도쯤 되면 대중매체가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내용으로 도배하는 게 틀림없다. 현재의 다양한 감정은 같은 상황을 다르게 느끼게 한다. 이게 참 신기하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아서일까? 예를 들어서, 가끔 만나는 훈훈한 기사로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 느낀다. 이러한 기사로 마음이 따뜻해졌다면, 길거리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표정을 봤으면 한다. 따스한 햇볕만큼 감미로운 미소로 가득 찬 그들로 인해 웃음을 띠는 세상을 만나게 될 거다. 물론 반대의 감정으로 가득 찬 세상을 만날 때도 있다. 절망의 몸부림 끝에서 찾아낸 마지막 탈출구였던 마포대교, 그때의 세상을 잊을 수 없다. 엄동설한 날씨에 얼어버린 호수 위, 맨발로 있기에 발의 감각은 서서히 사라진다. 얼음 호수를 정처[73] 없이 걷고 있다.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도 모르게 호수 아래를 바라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시커먼 호수 안은 무엇으로 가득할까?



멸시, 핍박, 조롱, 경멸, 배척, 외면, 모욕, 억압,

증오, 착취, 질책, 혐오, 구박, 질타, 지탄, 희롱, 그리고 냉대.


그래, 사람들은

세상 끝자락에 선 나를 그렇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늘 날씨는 맑음이다.



기사의 제목을 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더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간다.



“절망적인 기사만 눈에 띄는 게 신기하지 않으세요? 대중매체의 습성이 이렇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절망과 고통 그리고 공포를 이용해 장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절망과 고통 그리고 공포가 이들에게 왜 돈이 될까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이를 좋아해서입니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통해서 삶의 위로를 얻습니다. 임우현 씨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렇지 않다고요?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뜨고 포털 사이트에 무작위로 올려진 기사를 다시 보세요. 아마도 다른 기사가 눈에 보일 거예요. 지금 찾아보세요.”





4. 타인의 고통을 통해 위로를 얻는 그런 천박한 존재가 인간이라고? 아버지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다시 한번 기사를 검색한다.



착한 기업 돈쭐 내는 소비자.

여학생들 대화 들은 손님이 베푼 선행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하루 선물

각계각층 온전의 손길 훈훈

지구사랑 두 바퀴 대축제


아무리 뒤져도

훈훈한 기사만 보인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찬란하다.



아버지 말대로다. 훈훈한 기사는 곳곳에 널려있다. 처음 검색했을 때는 왜 보이지 않았을까? 왜 타인의 절망과 고통 그리고 공포에만 관심을 보였을까? 어쩌면 타인의 훈훈한 생활에 질투가 나서 애써 모른척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마법 같은 아버지 손길에 점점 녹아든다. 냉정함을 유지하기 어렵다. 보물 지도를 손에 얻은 기분이다. 지금은 무엇보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싶다.



to be continued....



[68] 함자 (銜字): 남의 이름을 높여 일컫는 말.

[69] 연세 (年歲): ‘나이’의 높임말.

[70] 회춘 (回春): 도로 젊어짐.

[71] 불로장생 (不老長生): 늙지 않고 오래 삶.

[72] 식상 (食傷): 같은 음식이나 사물의 되풀이로 물리거나 질림.

[73] 정처 (定處): 정한 곳. 일정한 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