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정말 신기하지요? 대중매체는 인간이 좋아하는, 우리의 아픔으로 장사하는....한 마디로 양아치입니다. 그런데요, 이들의 기막힌 장사수완으로 돈을 버는 존재는 누구인가요? 그래요, 부자입니다. 우리가 아니라. 부자는 더욱더 부자로, 가난한 자는 더욱더 가난한 자로, 살아가야 하는 빈익빈 부익부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요? 아니요, 바꾸지 못합니다. 잔인하지만 그게 사회를 지탱하는 메커니즘입니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은 어떠한 시스템보다 견고합니다. 그렇기에 이에 도전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건 풋내기 혹은 천둥벌거숭이의 객기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항상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방법은 있습니다.”
5. 괄약근에 힘이 들어간다. 그래 뼈 빠지게 일해서 결국 회사 오너의 배만 불린다. 15년 차 영업사원의 연봉은 정말 짜다. 더군다나 내가 속한 곳은 사양산업이다. 관련한 시장은 점점 축소된다. 그렇기에 동기들도 하나둘 버티지 못하고 떠난다. 진작 떠났어야 했는데, 그래서 몇 번이나 이직하려 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다. 15년 차의 능력 없는 영업사원을 받아줄 회사가 많지 않아서다. 어느 회사가 부담만 증가하는 늙은 사원을 받아주겠는가? 아버지의 작은 도움이 없었다면, 여전히 빚쟁이에 시달리는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거다. 그리고 몇 년째 연봉 동결이던가? 올라도 기껏해야 3%가 최대다.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연봉을 인상했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배는 더욱더 홀쭉해진다. 승기도 효상이도 나도 무언가 공평하지 않게 세상이 돌아간다는 사실은 진작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무엇인지를 몰랐다. 단순하게 사회구조 시스템의 문제라 생각했다.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다들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
“가진 자를 위해 움직이는 사회의 메커니즘을 활용하려면 우리도 힘이 있어야 합니다. 세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블루 고스트는 파레토 법칙[74]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롱테일 법칙[75]을 고수합니다. 즉, 블루 고스트는 20%의 엘리트 집단이 아닌 80%의 평범한 이를 위해 만들어진 유령입니다.”
6. 유령이라니?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 컴퍼니라는 말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유령회사란 말인가? 그나저나 상위 20%의 매출액의 합계보다 하위 80% 매출액의 합계가 크기에, 다수의 아이템을 소홀하게 여기면 안 된다는 롱테일 법칙을 아버지 입을 통해 다시 듣다니 다소 놀랍다. 정말 단순한 돈가스 사장은 아니었나 보다. 다만, 아버지가 평범한 다수를 위해 무엇을 한단 말인가? 장황한 이야기뿐이다. 실무적인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을 팔아 다수의 입에 풀칠하려는지 알 수 없다. 보물 지도가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아버지에게 보낸다.
“세계화라는 단어를 주위에서 심심찮게 보고 듣습니다. 세계화는 기술력의 발전으로 세계가 하나의 사회공간으로 거듭나는 단일화 시장체제를 말합니다. 말이 어렵지요? 조금 쉽게 이야기하면, 미국의 악랄하고 야심 찬 제국주의 전략입니다. 미국은 후진국을 계몽한다며 세계화를 연일 떠듭니다. 세계화를 선한 영향력 혹은 온정주의라 말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그들의 시스템을 전파해 그들의 언어와 재화, 그리고 가치관을 퍼뜨려 각 나라의 특색을 지우려 합니다. 자국의 고유문화보다 미국의 문화가 우월하게 느끼게끔 교묘하게 사람들을 세뇌합니다. 세계화는 현존하는 시스템 중 가장 폭력적인 인류집단세뇌 정책입니다.”
세계화라니?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그나저나 아버지가 이렇게 박식한 분이었나? 햇빛에 비쳐 투명한 빛깔을 띠는 아버지의 빽빽한 흰머리가 왠지 살아온 인생의 훈장처럼 느껴진다. 지금 아버지의 모습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내는 간달프 마법사다. 아버지는 잠시 한숨을 쉰 후 말을 이어간다.
“제가 아까 말한 질문 기억하나요? 세계화가 인류사회를 움직이는 메커니즘이라면 우리는 세계화를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통설인 세계화를 거부할 힘 또한 없습니다. 그렇기에 세계화를 올바르게 이해해 적용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블루 고스트는 세계화 메커니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러’를 파악합니다. 블루 고스트는 잠깐 열리는 ‘에러’의 공간에 침투해 수익을 창출하는 집단입니다.”
7. 세계화를 이처럼 진지하게 강조하는 한국인을 만나본 적이 있던가? 미국과 세계화? 물론, 미국에서 굵직한 사건이 터질 때면, 다음 날 대한민국 주식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잠을 설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는 주식 초보자에게 일어나는 일시적 현상이다. 시간이 지나면, 미국에 폭탄이 떨어졌다고 해도, 잠을 깊이 잘 수 있다. 지금 내가 그렇다. 미국 시황을 보지 않은 지 오래다. 주식 초보자는 스스로 공부해 투자하면 일확천금[76]을 달성할 수 있다는 근자감[77]을 지닌 게 공통점이다. 사실, 이는 주식 초보자만 지닌 게 아니다. 근자감을 지닌 사람들은 실패한 수많은 이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다양한 정보의 수집으로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녔다고 믿는다. 그들은 관련한 필드에 오랫동안 몸담은 다른 이의 충고를 철 지난 표어[78]로 치부한다. 그들은 듣고 싶은 목소리에만 반응한다. 그런데도 스스로 누구보다 객관적인 시야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스스로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믿는다. 볼드몰드 사건 이전까지 나 역시 그랬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다.
무지해서다.
8. 얼마 전, 정신과 전문의를 통해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더닝-크루거 효과’라고 들어 본 적 있는가? 특정 영역의 전문가가 아님에도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과대평가하는 현상이다.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라는 말이 ‘더닝-크루거 효과’의 대표적인 예시이다.[79] 볼드몰트 사건 이전까지는 금융업에 종사하는 분석가가 떠드는 원론적인 분석은 단지 그들의 수익을 위해 떠드는 거짓 정보라 확신했다. 물론, 이런 기조는 여전하다고 믿는다. 업무 특성상, 다양한 국적의 바이어를 상대한다. 해외 영업을 통해 알게 된 수많은 지인으로부터 자연스레 관련한 산업 동향을 주워듣게 된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거시적 관점을 지녔다고 믿는다. 사실은 거짓말이다. 신뢰성이 떨어지는 난잡한 정보임에도 분석할 힘이 내게는 없다. 그렇기에 눈을 질끈 감고 확신한다. 엄청난 정보라 호돌갑을 떨면서 이야기하는 그들이 가짜 뉴스를 흘렸을 리가 없다고.
날것의 소문을
고급정보라고 확신했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은 국제 정세에 밝지 않다. 대중매체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그들이 들을 수 있는 전부다. 술자리에서 떠드는 안줏거리는 대중매체에서 떠드는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떠드는 게 고작이다.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무지하다. 사람들은. 그렇기에 상대방의 무지를 계몽한다는 마음으로 가짜 뉴스를 흘리며 마치 자신의 분석인 양 너스레를 떨었다.
“뭐 이렇게 순진해? 진짜 믿는 거야? 방송에서 떠드는 소리를? 언제 좀 넓은 시야를 가질 거냐? 눈을 똑바로 뜨라고. 큰 숲을 보려고 노력해야지. 그쪽 사람들과 계약을 진행 중이라 잘 알고 있는데, 방송에서 나온 이야기가 진실은 아니야, 세계는 말이다.....”
이렇게 물꼬를 트면, 대부분 쥐 죽은 듯 내 이야기를 듣는다. 곧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너희들은 운이 좋아. 이런 정보를 공짜로 듣게 되니까. 곧 좋은 소스 얻으면 공유할게. 바로 총알 준비해서 쏠 준비 하라고.”
9.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를 추켜세우지는 않는다. 내 정보를 의심하는 유일한 놈이 있어서다. 김승기다. 효상이는 회사를 그만두고 글 쓴 지가 꽤 오래되었다. 아직 집필을 끝내지도 않았고, 사실 출판하더라도 효상이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효상이 역시 이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기에 마땅한 수익처가 없는 효상이는 내심 함께 투자하고 싶어 한다. 그걸 내가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승기다. 김승기. 효상이는 승기 눈치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효상이는 승기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무지한 승기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었다. 승기야말로 ‘더닝-크루거 효과’의 전형적인 예시여서다. 볼드몰트 사건 때 승기의 반응은 역시 한결같았다.
“고급정보가 우현이까지 흘러 왔으면 끝물일 수도 있어. 정보라는 게 그래. 돌아가는 순위가 있거든. 우현이하고 연락하고 지낸다는 중국인? 우현이 성격이라면 한 번쯤 중국인에 관해서 이야기해야 했는데 오늘 처음 들었다. 효상이 너도 처음 듣지 않았어? 더군다나 중국인이야. 한국인이 아니라고. 아까 사이트 보니까 전부 중국말이야. 주식 공부하려면 한국어로도 시간이 필요한데, 한국 주식 시장도 아니고 중국 주식 시장이야. 다른 나라 사람의 말만 믿고 그대로 따라가는 방식이 옳다고 보지는 않는다. 우현이, 넌 여기 사이트에 올린 글을 정말 다 이해하고 보는 거야? 그래프하고 숫자만 보고 좋아하는 것 아니야? 하여튼 많은 욕심이 모여 엄청난 수익률을 보일 때 빨리 투자금 회수해. 우린 술이나 얻어먹으면 돼. 효상이 너도 쓸데없는 생각 말고.”
to be continued....
[74]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 [출처: 위키백과]
[75] 주목받지 못하는 다수가 핵심적인 소수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현상 [출처: 위키백과]
[76] 일확천금 (一攫千金): 단번에 천금을 움켜쥔다는 뜻으로, 힘들이지 않고 단번에 많은 재물을 얻음을 이르는 말.
[77] ‘근거 없는 자신감’의 줄임말.
[78] 표어 (標語): 주의·주장·강령(綱領) 등을 간결하게 나타낸 짧은 어구. 슬로건.
[79] 구재영, 『근거 없는 자신감이 과하다면... 더닝-크루거 효과?』,
경남도민일보, 2022.04.29.,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92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