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
프랑스 철학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말이다.
이 말은 정치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회사는, 특히 스타트업은 더더욱 그렇다.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그 회사의 조직 구성, 의사결정, 일의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대표 개인의 성향과 닮아 있다.
채용은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예다.
초기에는 대부분의 채용에 대표가 깊숙이 개입하고 결정한다.
표면적으로는 여러 조건을 따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표의 성향과 심리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 vs 나보다 멍청한 사람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주는 사람 vs 내가 이미 할 수 있는 일을 따라 해주는 사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vs 나와 잘 맞는 사람
날카롭게 나를 자극하는 사람 vs 편안하게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
조직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 vs 조직에 잘 적응하는 사람
더 나아가서는
나보다 어린 사람 vs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
도전적인 사람 vs 안정적인 사람
나를 존경하는 사람 vs 나를 동등하게 대하는 사람
말이 잘 통하는 사람 vs 결과가 확실한 사람
사적인 관계를 맺기 쉬운 사람 vs 업무 외엔 거리를 두는 사람
채용 기준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선택된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대표는 자신의 부족함을 보완하기보다는
자신의 꿈을 따라와 줄 사람을 뽑는다.
반대 의견보다 “좋아요 대표님!”이 더 쉽게 들린다.
이미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을 따라 해주는 사람이 편하다.
잠재력이 높은 사람보다 말 잘 듣는 사람이 믿음직스럽다.
이때 조직은 대표의 확장판이 된다.
조직 문화는 따로 만들지 않아도, 대표의 말투와 리듬이 조직 전체에 깃든다.
조직이 조금 커지고, 더 이상 대표 혼자 다 할 수 없을 때가 온다.
그때부터는 비로소 ‘내가 못하는 걸 해줄 사람’,
그리고 ‘나보다 똑똑한 사람’을 찾기 시작한다.
개발, 법무, 재무, 마케팅 등 전문성의 영역이 생긴다.
처음엔 조금 두렵고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시기의 대표는 "이제는 믿고 맡겨야 한다"는 생각과
"그래도 마지막 결정은 내가 해야지"라는 욕심 사이에서 흔들린다.
이 시기의 조직은 과도기적인 혼종이 된다.
기술이 앞서 있는데, 프로세스는 뒤죽박죽이고
역할은 정해졌는데 권한은 애매하다.
조직이 더 성장하면 결국 자연스럽게,
대표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조직의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이건 두려운 일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대표가 모든 걸 다 알고, 모든 걸 결정할 수 없다는 걸
‘이성적으로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때 비로소 회사는 대표 개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조직으로서의 독립성과 생명력을 갖기 시작한다.
그동안 어쩌면 ‘개인사업자’ 같았던 회사가,
이제야 진짜 하나의 '법인격'으로 태어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여기서부터 진짜 변화가 시작된다.
지분이 분산되고, 투자사의 개입이 커지고,
이사회가 만들어지고, 공동 대표나 C레벨들이 생긴다.
처음엔 “내가 책임지는 게 맞지”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내가 다 결정하면 안 된다”는 상황이 온다.
대표는 점점 최종 결재자가 아닌,
한 명의 조율자이자 협상가가 된다.
이쯤 되면 대표도 혼란스럽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회사에 필요한 일을 할 것인가.
조직의 미래를 위해 대표직을 내려놓을 것인가,
아니면 유지하면서 일부 권한을 포기할 것인가.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들과 거리를 둘 것인가,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비공식적 친분을 유지할 것인가.
이 시기의 대표는
회사의 중심이 아니라 경계선에 선 사람이 된다.
때로는 더 이상 “대표님”이라는 말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익명의 채팅방이나 팀 바깥에서 더 편하게 숨 쉬게 된다.
조직은 리더의 그릇을 넘을 수 없다.
하지만 리더의 그릇은 ‘내가 어떤 사람을 뽑느냐’로 조금씩 넓어질 수 있다.
회사는 결국, 그 대표가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의 총합이다.
모든 회사는 그 대표의 그림자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