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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우 Sep 08. 2024

따뜻함을 지켜나가는 것

"무대 전환"

한줄기의 빛


사실 "표현"이라는 것은 저에게 있어 성인이 되고난 후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는데요.

지금 되돌아보면 성인이 되고나서 지금까지 약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제 안에 큰 변화들이 일어날 때마다 이 표현이라는 것이 함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번 글에서 얘기했듯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고 표현에 대한 저의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는데요. 사실 그 뒤로도 성인이 될 때까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적인 말을 하거나 따뜻한 말을 건네는게 어느정도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거기에 더해 그렇게 표현을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큰 영향을 받는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어찌보면 그때까지는 진정으로 따뜻한 말의 힘을 느껴보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스스로 따뜻한 말을 잘 해주지 못하니 언제나 저를 가두기만 했었고(지난 글들 참고), 그러다보니 거친 말에만 익숙해져 나에게 오는 미약한 따뜻함에도 거부반응을 보였던 것 같거든요.


그러다 한 친구를 만나게 되는데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학창시절에 친하게 지냈던 한 친구를 성인이 되고나서 다시 연락하게 됐어요.

그 친구는 정말 제가 살면서 만나본 친구중에 제일 따뜻한 친구에요. 저는 그 친구를 떠올리거나 생각할 때 "윤슬" 같은 친구라고 생각하는데요.

정말 따뜻한 사람을 표현할 때 햇살 같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봄날의 햇살"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도 햇살이라는 표현은 너무 뜨겁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너무나 뜨거워 사람이 접근할 수도 없는 그 작열하는 태양이 내뿜는 빛은 저에게 있어 너무나 거친 표현처럼 느껴져요.

그러나 윤슬은 다르게 느껴져요. 윤슬의 정의는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의미하는데요.

이 아름다운 윤슬은 뭔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물 위에서 빛난다는 점에서 혼자서 빛나는 태양보다 좀 더 다같이 빛을 내는 존재처럼 느껴졌어요. 뭔가 좀 더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친구도 정말 그렇거든요.

제가 저를 잘 챙기지 못할 때 저를 자책하기만 하고 한심한 사람으로만 바라봤는데, 그때 그 친구는 저에게 저도 보지 못한 저의 모습을 바라봐줬어요.

저에게 예전에 같이 학교를 다니면서 봤던 저의 좋은 모습들,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던 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고 얘기해줬어요. 그러면서 그 시간들은 다 지나갔다고 해서 그날의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닌건 아니라고 얘기해줬는데요.

원래 과거는 과거고, 현재의 내가 한심한건 현재의 내가 거지같고 한심하기만 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친구의 말을 통해 뭔가 제 마음속에도 그때의 열정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완전히 불이 꺼진 방 안에 작은 희망의 불씨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 외에도 그 친구는 제가 가고자 하는 길, 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옆에서 응원해줬어요.

지난 글들에서 얘기했던 제 첫 연극을 응원해줬고, 비록 공연은 직접 보러오진 못했지만 유튜브에 올라온 1시간이 넘는 공연영상을 다 보고 너무나 고생했다고 연락해주기도 했어요.




그런 따뜻함은 저에게 있어 너무나 벅찬 따뜻함이였어요. 내 마음의 그릇은 옹졸하고 작은데 이렇게나 큰 따뜻함을 받아도 되는건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친구가 저를 따뜻하게 대해줄 때마다 제 마음에 따뜻함이 차고차고 또 차서 넘쳐 흐르더라고요.

이걸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한가지 묘안을 생각해냈어요.


그건 바로 저 또한 그 따뜻함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자는 것이였어요.

저는 태생적으로 분석적이라 남들에게 그 친구가 해줬던 만큼의 따뜻함은 주지 못하겠지만, 오히려 저만의 특성을 이용해 새롭게 접근을 했는데요.

그 친구가 한심한 저에게도 하나의 빛을 찾아내줬던 것처럼 내가 한 사람을 분석할 때 그 사람의 숨은 빛들을 찾아내줘 전달해주자는 식으로 접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남들에게 건네는 말들은 남들과는 다른 저만의 분석을 기반으로 한 칭찬이 되었고, 다행히도 그 친구가 저에게 줬던 따뜻함을 조금씩 나눌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하다보니 제 안에 새로운 가치관이 자리잡기 시작했는데요.

요즘은 정말 혐오와 비난이 난무한 시대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고 모두가 예민해지고, 스스로 자신감을 갖기엔 주위의 비난과 비판에 묻혀져 의기소침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흐름에 꼭 동참해야 되는건 아닌 것 같아요.

혐오와 비난이 난무하다고 해서 나도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고 비난하기보다 제 친구가 그랬듯 따뜻한 하나의 말이나 행동을 전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표현 하나의 가치와 힘이 더욱 강조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저번 글의 본문 제목에도 썼지만 이 표현이라는 것은 어떤 비용과 힘도 들지 않거든요.

그 가치를 깨닫게 해준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전하면서 이번 글은 마치도록 할게요.



드디어! 3화부터 이어졌던 "소외감"이라는 키워드를 이렇게 마무리할게요.

와 소외감이라는 키워드가 이렇게나 길게 이어질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제 인생에 있어 거의 모든 일의 기반이여서 더 길어졌던 것 같네요.


이제 다음 글부터는 또 새로운 키워드를 가지고 열심히 연재해볼게요.

오늘도 살짝 연재 시간이 늦어져서 죄송해요. 노트북을 얼른 수리하고 돌아온다고 했는데 이제는 아예 노트북을 새로 하나 사야되는 상황이에요ㅠ

얼른 빨리 해결하고 돌아올게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 글에서 다시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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