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 보면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사실 집단에 따라 그 편차가 워낙에 다른 것이 사람들의 부류인지라, 어떤 사람들이 많은지는 각자가 속해있는 집단에 따라 그 형태가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적어도, 내가 속해 있는 집단 안에서는, 합리적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내가 속해 있는 연구실이라는 곳은, rational design, rational thinking이라고 하는 것을 몇 년에 걸쳐 (최소 이공계 학부기간에 해당하는 4년 이상) 학습해 온 사람들이기에,
일종의 직업병처럼
자신의 말이 합리적인지, 다른 사람의 말이 합리적인지
계속해서 판단하고, 생각하고, 반론을 제기하고 하는
그런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지금 현재 글을 쓰고 있는 나 조차도,
합리적인 생각, 합리적인 행동, 합리주의라고 불리는 그 틀 안에서 사고하고, 행동하고, 평가하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30년도 채 살지 않은 "인생 뉴비"의 눈에서도
세상은 대단히 합리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세상은 부조리와 비이성, 비합리성으로 가득 차 있고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합리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대단히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내가 이러한 모순을 보며 내린 결론은,
합리적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우리는 꽤나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 생물 시간에 배운 멘델의 완두콩 실험이 다들 기억나려는지 모르겠다.
수도자였던 멘델은 콩의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라는 것을 색깔과 쭈글쭈글한 완두콩의 비율을 보고 추정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멘델이 지금으로 치면 연구부정행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멘델은 자기가 나온 가설에 적합하도록, 임의로 맞지 않는 개수의 콩을 적절히 버리는 방법으로
자신의 가설이 맞다는 증명을 해내었다는 것이었다.
지금에서야, 우리는 그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 수학적으로 보면 "큰 수의 법칙" 때문이고, 생물학적으로 보면 "유전형질 발현에 관여하는 다양한 인자"의 결과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시대를 살던 멘델의 입장에선 자신의 합리성의 산물인 가설에 어긋나는 그 현상이 주는 모순이 감히 추측하건대, 견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아무리 합리적이라는 굴레를 씌워 생각하더라로 생각한 대로 항상 작동하고 또 굴러가는 것은 전혀 없다.
"이게 되는 게 (내 머릿속 합리적 생각으로는) 당연한데 왜 안되지?"
"이게 원래 안되어야 하는데 왜 되지?"
이러한 생각은
결국,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자신의 생각만이 논리적 문제가 없다는 "믿음과 자신, 더 나아가서는 오만"에서 오는 것일 테다.
생각해 보면 대단히 모순적이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합리적이라고 믿지만,
그 합리적이라는 근거는 각자의 믿음이라고 하는
감성적인 영역에서 많은 것이 기인한다는 것을.
그렇기에 우리는 이렇게 인정하여야 한다.
수많은 지식 속에서 헤엄치는 우리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아직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세상이 왜 이렇게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인지 생각하기보다,
내가 당연하게 말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겸허함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믿음이라는 감정에 기대어 내가 맞다고, 합리적이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내가 모르는 것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겸허함이야말로
진정한 합리주의가 아닐까 하는
그런 짧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