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픈 것에 대한 농담

by 장우성

전해줄 안 좋은 소식을 한 아름 안고 왔다. 너에게 다행인 점은 안 좋은 소식들은 다 나에 대한 거라는 것이겠지.


내 안 좋은 소식들은 언제나 그렇듯 내 건강에 관한 것이다. 화불단행이라고 여러 병들이 한 번에 찾아왔다. 주저리주저리거릴 시간은 앞으로도 많으니 병명을 불러보자. 허리 디스크, 궤양성 대장염, 우울증.


익숙하고 반가운 병명도 있고, 처음 들어봤을 법한 이름도 있다. 내 친구 우울증은 디스크와 궤양성 대장염에 붙어서 같이 왔다. 어디 가든 빠지는 걸 싫어하는 스타일. 몸이 아픈 것과 우울의 관계는 매우 꾸준히 말했으니 또 반복할 필요는 없겠다. 내 졸업논문을 보거나 언젠가의 편지를 보면 되겠지.


나머지 두 가지의 병은 마치 역할을 분담했다는 듯이 근 몇 주 동안 나를 체계적으로 괴롭게 했다. 주로 육체적 고통은 허리디스크가 맡았고, 정신적 고통은 궤양성 대장염이 맡았다. 물론 서로 주 역할이 아닌 부분에서도 상부상조하며 힘써주긴 했다


이제 그 기전을 알아보자. 우선 더 친숙할 허리디스크부터 만나보자.


고통이 정말 대단했다! 허리가 아프게 된 그 과정을 자세히 묘사할 수도 있겠지만, 지겹고 귀찮으니 굳이 하진 않겠다. 여담이지만, 경제학과에선 이를 tedious(티디어스로 발음)하다고 한다. 왜 굳이 이것만 영어로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들 그러는 듯하다. 나에게는 좀 우스꽝스럽게 들린다.


어쨌든 어찌어찌해서 어느 날 아침 눈을 뜬 그 순간부터 허리가 굉장히 아팠다. 앉는 건 고사하고 움직이는 것도 고통스러웠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다고 아프지 않지도 않았다. 치료를 위한 과정들도 더 자세히 말할 순 있겠으나 좀 생략하겠다. 중요한 점은 치료를 위해 맞은 주사들도 굉장히 고통스러웠다는 점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는 남들에 비해서 고통을 참는 데에 굉장히 능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척추 근처 신경과 근육에 직접 놓은 그 주사들은 내가 손가락을 가만히 둘 수 없게 만들었다. 또, 나는 의사에 지시에 굉장히 잘 따르는 편인데, 주사를 맞은 후 근육에 힘을 빼라는 지시는 정말 따르기 어려웠다.


이런 고통은 내 생활이 완전히 멈추게 했다. 나는 10일 정도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고, 밥을 먹기 위해 아주 짧게 앉아있는 것 빼고는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식사도 짧게 앉기에 적합한 것들만 했다. 난 청소도 할 수 없었고, 수업도 갈 수 없었고, 독학, 요리, 산책 등 누워서 할 수 없는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밀리의 서재에서 책 읽기와 핸드폰에서 떠돌기, 하스스톤 투기장 정도였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덕분에 책 읽기의 재미를 다시 깨달았다.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은 나를 꽤 괴롭혔다. 수업을 듣지 않고 진도를 언젠가 따라가야 한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괴롭게 했다. 나는 그 일을 수월히 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공부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괴로움은 아직 진행 중이다.


말이 자꾸 길어지니 정리하자면, 허리가 너무 아팠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행동을 할 수 없어서 마음이 답답하고 후일이 걱정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허리디스크라는 병 자체가 나를 크게 정신적으로 괴롭히진 않았다. 엑스레이 결과 디스크가 심한 것은 아니었고, 주사를 맞으면 하루가 지날 때마다 상태가 서서히 허나 확연히 호전되었기 때문이다. 이 병세가 언젠가 없어질 것이라는 확신은 마음을 매우 편안하게 해 준다.


특히 나처럼 만성적인 병(우울증)을 앓아본 사람에게는 그 효과가 더 있을 것 같다. 남으로 살아본 게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사실 아무도 남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 고통의 정도를 묘사해야 할 때는 그것을 실감하게 된다. 어쨌든! 이 병은 낫는 병이고, 이 정도 디스크는 남들도 다 있는 수준이다! 굉장히 듣기 좋은 소리다.


하지만 두 번째 소식은 양상이 좀 다르다. 궤양성 대장염이란 병에 대해 들어봤는지? 일단 난 처음 들어봤다. 굉장히 익숙한 두 단어가 합쳐졌는데, 그리고 그것들이 부자연스러운 조합이 아닌데도 처음 들어본다는 것이 좀 신기하긴 했다. 그리고 그 두 단어의 조합은, 나는 몰랐었지만, 합쳐지면 시너지 효과를 낸다!


증상은 그냥 장염과 비슷한데, 혈변이 나온다. 배가 좀 아프고, 설사하고, 변을 처리할 때 휴지에 피가 묻어 나와서 기분이 좀 나쁘다. 증상은 사실 나를 그렇게 괴롭게 하지 않았다. 무른 변과 복통이야 뭐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고, 피가 좀 나긴 하지만 아프진 않으니 말이다.


사실 처음에는 치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귀찮은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선홍색의 피가 변과 따로 나왔다. 피가 선홍색이라는 건 변이 나오기 얼마 전에 피가 섞였다는 걸 뜻한다. 위나 소장에서 피가 날 경우, 피가 소화되면서 검게 변하기 때문에 흑변이 나온다. 또한, 대장에서 피가 났을 때에도, 대장의 윗부분에서 피가 나올 경우에는 변과 섞여서 변의 색이 전체적으로 붉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이 피는 항문과 가까운 곳에서 났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거기에 더해서, 나는 객관적으로 치질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우선, 우리 외할아버지가 치질로 꽤나 오래 고생 중이다. 그리고, 원체 설사와 무른 변을 많이 보다 보니 항문이 염증에 자주 노출되고, 성격 탓에 뒤처리할 때에도 좀 심하게 한다. 내 항문은 유전적, 생물학적, 물리적 공격에 둘러 쌓여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이는 내가 이전부터 아주 잘 인지하고 있는 사안이었다.


마지막으로, 치질로 고생한 경험이 있는 민구에게도 내 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더니, “치질 걸렸네 ㅋㅋ ㅅㄱ ㅜㅜ”라는 단정적인 답변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당연스럽게도 대항외과에 가는 것이었다. 이것부터도 굉장히 불편한 일이었다. 대항외과에 간다는 것이 나에게 심리적 장벽이 있던 건 아니었다.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을지 혹은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남들보다 수치심을 덜 느낀다. 또, 내가 간 대항외과는 신도림에 있는, 내과 전문의도 있는 의원이어서 전에도 자주 갔었던 의원이었다. (놀랍게도 이는 결과적으로 나를 도와준다) 대항외과 업무로 간 건 처음이었지만.


그래서 뭐가 불편했느냐! 안타깝게도 이때 나는 위에서 말한 허리 디스크에 굉장한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더해서 병원에 가기로 결정한 날짜가 공교롭게도 5월 6일 대체 공휴일이어서 나의 집 근처인 서울대입구에는 여는 대항외과가 없었기에, 신도림에 가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신도림보다 가까운 병원들은 대부분 휴진이었고, 사당에 한 병원이 운영하긴 했지만, 그때의 나는 치질로 정기적으로 다닐 병원이니 어쨌든 생활권역 안인 신도림의 병원에 가는 것이 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본가에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가기 때문에 그때 치질 치료를 받으면 되겠거니 생각했던 것이다.


움직이는 것이 굉장한 도전인 나는 통증을 끊임없이 방사하고 있는 허리를 붙잡고 신도림 대항외과로 향했다. 안타깝게도, 환자들이 자주 택하는 수단인 택시는 내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좁은 택시 안에서 앉아있거나, 쭈그려 누워서 이송당한다는 것은 당시의 나에게는 감히 꿈꾸기 힘든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병원으로 향하고 있는 내 머릿속은 개 같은 타이밍을 끊임없이 저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치질은 한시라도 빨리 치료하는 것이 낫다는 민구의 조언을 되새기며 잘 따라오지 않는 발걸음을 봉천역으로 질척 질척 끌고 갔다. 대항외과에 도착한 나는 잠시지만 여전히 고통스러운 대기시간 후에 의사에게 내 항문을 드디어 보여줄 수 있었다. 목적의 성취와 치료의 달콤함이 마땅히 나에게 주어져야 했지만, 돌아온 것은 안타깝게도 애매함이었다. 직장 부분만 살짝 볼 수 있는 내시경으로 본 결과, 항문에는 치질이 없고, 어딘가에서부터 염증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나는 뭔가가 잘 못 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혈변을 만드는 놈 중에 최약체가 내 병명 후보에서 떠나가는 순간이었다. 자세한 진단을 위해 대장 내시경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들었고, 마음이 뭔가 불안해진 나는 가능한 한 빨리 내시경을 예약했다.


내시경을 위한 준비도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대장내시경을 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장 세척제를 먹고 장을 변으로 다 비워내야 하는데, 변을 보려면 안타깝게도 변기에 ‘앉아야’ 한다. 현대의 인간이 진화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자세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지!


또한, 내 예민한 신경 덕에 잠도 두 시간밖에 이루지 못했다. 이 몸은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만 잠에 들 수 있는 저주에 걸렸다. 꾸르륵거리며 장 청소제 잔여물이 장 내에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상황’이 아니다. 고통스러워도 시간은 흐른다. 고통 속에 시간이 흘러, 대장 내시경을 하는 그 시간이 왔고, 프로포폴이 주사되며 분명히 1부터 10까지 세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순간, 내시경은 끝났다.


갈무리를 하고 나온 나에게 의사가 한 말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궤양성 대장염일 것 같은데, 조직검사를 해야 알 수 있으니 조직검사가 되면 연락 주겠다. 여기에서 나는 한 차례 안도했다. 궤양성 대장염이 뭔진 모르지만, 위궤양은 매우 친숙한 병이다. 주변에서 한 두 명 정도는 걸리는 걸 봤고, 그 사람들 모두 다 나았다. 다행히도, 이 병으로 고생은 좀 하겠지만, 결국에는 낫는 병인 것이다. 이 점은 위에서도 설명했다시피 내 마음을 매우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이 안도는 매우 성급한 것이었으며 나는 이 안도를 꽤나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지금 문자로 규정한 것도 크게 영향을 주겠다. 내 안도는 궤양성 대장염을 네이버에 검색해 보자마자 철회되었다. 네이버가 한 줄로 설명하는 궤양성 대장염은 내가 질색하는 단어들을 많이 데리고 있었다. 어쩌고 저쩌고를 증상으로 하는 ‘원인 불명’의 ‘난치성’ ‘만성’ 염증성 대장염. 또! 만났다. 내 언어로 이 설명을 해석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당신은 앞으로 아플 건데, 왜 아픈진 모르고 평생 안 나을 거야. 그냥 아프기만 해. 나는 방금 동네 병원 복도에 서서 내 생활을 앞으로 꽤 오랜 기간 동안, 획기적인 의학적 발전이 없다면 평생 동안 규제할 병명을 만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직검사 결과가 안 나왔는데 왜 벌써 단정 지었느냐. 이건 내 많은 통원 경험이 나에게 귀띔을 했다. 의사가 어떤 한 병명이 의심된다고 말했다면, 비록 그 의사가 어떤 단서를 달았더라도(이번 경우에는 조직 검사를 기다려봐야겠지만이라는 단서), 그 의사는 자신의 능력 하에서 거의 단정적으로 진단을 내린 것이라고 봐야 한다. 자신의 진단에 대한 확신이 없을 경우, 의사는 병명을 말하지 않는다. 의사가 붙이는 단서조항들(~~ 병의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조직이나 혈액 검사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하지만, 직접 내시경을 봐야 알겠지만 등등)은 거의가 면책용이다. 뭔가를 확정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고학력자라면 갖춰야 할 소양이다. 확정적이지 않은 것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대부분 덜 배웠거나, 자기 성찰이 부족하거나, 상대를 기만하려는 사람일 것이다.


그 후에 여러 번 병명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먼저 그 의원의 내과 전문의에게 소견을 들었다. 재미있는 표현. “저는 80퍼센트 확신하는데, 대학 병원 선생님께 방문해서 고견을 듣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말은 참 재미있다. 돌려 말하기가 없는 세상은 얼마나 지루할까. 돌려 말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돌려 말하는 걸 잘 못 알아듣는 사람일 거라고 나만 생각한다. ~~라고…저만…네… 저만 생각합니다. 이 표현은 최강록씨가 자주 쓰는 표현이다. 최강록이 누군지 아는지?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여하튼 신도림 대항외과의 내과 전문의는 저렇게 말했고, 나는 보라매 병원을 예약해서 어제 다녀왔다. 보라매병원 페이지에 궤양성 대장염을 검색하니 전문의가 한 명 있었다. 젊어서 그런지 보라매 병원인 것 치고 예약이 매우 널널했다. 목요일 새벽에 금요일 진료를 예약할 수 있었으니. 그는 젊고 꽤 유쾌하고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의사였다. 내가 가져간 내시경 CD를 보더니 뭐 궤양성 대장염 맞는 것 같은데, 제가 직접 한 번 다시 보고 싶으니 직장 내시경 한 번만 더 합시다.라는 의견을 들었다. 그렇게 나는 다음 주 수요일에 또 내시경을 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궤양성 대장염이 뭔지를 지금까지 내가 파악한 걸 토대로 말해보겠다. 내 정보는 병원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디씨인사이드 염증성 장질환 갤러리(존재가 인상 깊다), 구글, 네이버, copliot 등에서 규합하여 내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다.


궤양성 대장염의 증상은? 설사, 복통, 혈변, 체중감소 등 일반적으로 장염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증상들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 병의 백미는 다른 합병증으로 쉽게 옮겨 간다는 것이다. 옮겨 갈 수 있는 합병증으로는 대장암, 영양부족, 류머티즘, 염증이 대장 전체로 퍼지는 것(정식 명칭을 잘 모르겠다) 등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치명적인 합병증들의 발병률이 유의미하게 올라간다.


궤양성 대장염의 원인은? 이는 자가면역질환으로 장 내의 세포들이 뭔가에 과민반응해서 끊임없이 염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럼 왜 그러는데? 그건 잘 모른다. 장 내에서 발생하는 아토피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너는 아토피를 앓고 있으니 잘 이해할 수 있겠지. 나에겐 안타깝고 너에게는 다행히도, 장 내에서 발생하는 자가면역반응이 더 치명적이다.


궤양성 대장염의 치료는? 궤양성 대장염의 치료 목적은 염증의 관리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단계에선 완치, 즉 다시는 이 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경지는 목표할 수 없는 것 같다. 염증의 관리는 약물로써 한다. 무슨 무슨 약을 쓰고 이런 것에 정보도 접근할 수 있긴 했는데 그건 의사가 할 일이고, 나나 너가 알아야 할 일은 아닐 거 같다. 하지만 이 치료 목표, 염증의 관리가 마냥 쉬운 건 아니다. 그냥 일반적인 진통소염제 먹는 걸로 해결되진 않는다. 또한, 치료법에 대한 발전이 상대적으로 꽤 빨라서, 다른 말로 하면 완성되어 정립되어 있지 않아서, 의원급에서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흔한 병도 아니라서 의원급에선 그에 맞는 약재가 구비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희귀한 병이냐. 이게 또 나를 심적으로 괴롭힌 부분이다. 궤양성 대장염 환자는 대한민국에 대략 5만 명 정도 살고 있다. 최근 빠르게 환자 수가 늘고 있긴 하지만 (서구화된 식습관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전히 환자가 많지 않은 병이다. 나라에서는 이 병을 만성난치성 질환으로 분류하고 건강보험 산정특례라는 제도를 통해 치료비의 90퍼센트를 지원한다. 나만 운 없다. 나만 아니면 되는데, 하필 내가 걸렸다.


아직 이 병을 제대로 겪어보지 않은 입장에서 나라에서 이를 만성난치성 질환으로 분류하고 따스한 복지를 베풀어준다니, 내가 앞둔 고통이 아주 걱정된다. 아무래도 치료비의 90퍼센트를 받는 행복이 병을 앓는 고통을 보상해주지 않을 것 같다. 그런 만만한 병이라면 나라에서 그렇게 대우해주진 않을 것이니. 결과적으로 이 병에 운이 없게도 걸렸다. 이 병을 얻었기 때문에 나는 내 미래에 대해서 어떤 부분들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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