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척하고 싶은 사람들 (2)

by 장우성

사람들은 모습애호가를 비웃지만 내가 이번 글에서 실제로 말하고자 하는 건 모습애호가는 허세에 찌든 일부 위선자들만의 모습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선호의 단계이며, 실제 애호가도 어느 정도, 어쩌면 꽤 많은 부분으로 모습애호가라는 것이다. 먼저, 모습애호가가 자연스러운 선호의 단계라는 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멋져 보여서’ 이건 앞으로 뭘 할지 정할 때 자주 거론되는 이유다. 직업을 고를 때나, 취미를 고를 때, 인생의 기조를 고를 때, 우리는 그걸 하는 사람이 멋져 보여서 고르는 경우가 많다. 왜 기업금융인이 되기를 원했나? 골드만삭스 다니는 학교 선배가 너그럽게 동아리 회식을 결제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서. 왜 축구를 취미로 삼았나?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AC 밀란을 상대로 넣은 헤딩 골을 넣은 스티븐 제라드의 멋진 모습을 보고. 왜 여유로운 삶을 추구하나? 무슨 일에도 당황하지 않는 chill guy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러운 생각의 과정이고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그것보다 더 많은 경우에 취미 혹은 생활의 기조를 선택할 때, 그걸 훌륭하게 해내는 사람의 모습이 멋있어서 선택한다.


하지만 그걸 고른 건 고른 거고 실제로 잘 해낼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여기에서 우리는 모습애호가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고 개념이 아니라 세상의 사례로 끌어내리기 위해서 어떻게 모습애호가가 되어가는지 살펴보자. 우리는 위에서부터 계속 독서를 예로 사용하고 있으니 독서를 예로 들어서 이야기를 하자. 내가 이제 취미를 고르는 사람이라고 하자. 나는 원래 영화를 좋아해서 이동진의 파이아키아를 즐겨 시청했고 나는 이동진의 팬이다. 이동진은 자기 취미가 독서라 하고 이동진이 유창하게 책의 내용을 설명해 내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 또, 머릿속에 펼쳐지는 모습, 햇살이 잘 드는 방, 창 밖에는 눈이 함박 쌓인 하얀 산이 겹겹이 있다. 방에는 잔잔한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고, 나는 몸이 푹 꺼지도록 푹신하면서도 나를 잘 지지해 주는 안락의자에 앉아있다. 내 옆에 작은 책상에는 김이 나는 따듯한 커피와 잘 준비된 쿠키. 나는 훈훈한 방 안의 온도와 내게 한도 없이 주어진 시간의 여유를 즐기면서 고전 소설을 읽고 있다. 멋지다 멋져. 나는 독서를 취미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취미로 삼았으니 책을 사고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사는 과정부터 독서의 시작이라고 하지 않나. 마침 내일, 이번 주 금요일 오후 반차를 냈으니 그때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보면서 골라야겠다. 일단 서점으로 가본다. 이동진이 동기부여 자기계발 책은 쓰레기라고 했으니까 소설 쪽으로 가본다. 소설애호가들은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주로 읽는다고 어렴풋이 들은 것 같다. 밀란 쿤데라의 불멸! 이름도 멋지고 이걸로 하는 게 좋겠다. 책을 결제한 순간 나는 이미 30% 정도 안락의자에 앉은 이동진이 된 것 같다. 새로 산 책 사진을 찍는다. 뒤로 흐릿하게 알라딘 중고서점의 마크도 보이게 한다. 이 기념비적인 순간을 사진에 담는다. 난 독서애호가가 될 준비를 마쳤다.


집에 와서 어느 정도의 준비를 한다. 캡슐커피도 만들어서 준비해 놓았고, 디저트 카페에서 도넛도 포장해 왔다. 잘 차려진 독서상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책을 펴 읽기 시작한다. 처음 책을 펴자 정말 재밌다. 수영장에 나이 든 여자가 보인 몸짓에서 등장인물이 피어나는 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하다. 특히 이 어구가 마음에 든다! ‘_______________’ 잊지 않기 위해 밑줄을 치고 사진을 찍었다. 재미있게 읽고 있던 중에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뭐해?’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들고 답장한다. ‘책 읽는 중. 밀란 쿤데라의 불멸 되게 재밌네.’ ‘아 책 읽는구나. 다음 주 화요일에 뭐해? 만날래?’ … 간단하게 이야기하면서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인스타그램에 들어간다. 역시 무의식적으로 스토리를 휙휙 넘기던 중에 순간 정신이 든다. 뭐 첫날부터 책에만 집중할 수는 없지. 인스타를 킨 김에 아까 찍어 놓은 사진 세장을 스토리로 올린다. 멋진 모습을 뽐내게 되어서 좋다. 올렸으니 다시 책을 읽기로 한다. 책을 다시 읽으려는데 이번에는 아까랑 다르게 몸이 좀 근질근질거린다. 생각보다 좀 지루하고 글자가 잘 안 읽히기도 한다. 집중력이 떨어진 것 같으니 잠깐만 쉬었다 보기로 하고 다시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릴스를 좀 내리다가 스토리에 반응 온 DM에 답장도 한다. 친구의 DM ’ 책 읽는 거 재밌어? 난 항상 읽으려고 해도 자꾸 핸드폰 보게 되던데’ 나의 답장 ‘나도 자꾸 핸드폰 보고 싶긴 한데, 뭐 그러면서 보는거지. 그리고 보다 보면 재밌어’ 수다를 떨면서 시간이 술술 지나간다. 그날 책은 다시 펴지 않았다.


다음 주 화요일이 됐다. 퇴근 후 저녁에 친구를 만났다. 회사 근처에서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려고 저녁 메뉴는 피자로 골랐다. 즐겁게 이야기하던 중에 친구가 묻는다. ‘약속 잡을 때 책 읽었다면서? 원래 책 보는 거 좋아해? 몰랐네’ ‘나 책 보는 거 좋아해. 책 좀 읽어야지.’ ‘아 그래? 지금은 뭔 책 봐?’ ‘어 지금 보고 있는 건 밀란 쿤데라의 불멸이라는 책이야’ 나는 친구가 밀란 쿤데라도 모르고 불멸도 모르며 밀란 쿤데라의 불멸은 머리털 나고 처음 들어볼 것이라는 걸 안다. ‘아 그래? 유명한 책이냐? 첨 들어봤네. 재밌어?’ ‘뭐 지금 읽고 있는 중인데, 괜찮아. 아이디어도 참신하고 작가 어투도 재밌더라구.’ 30페이지 밖에 읽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감상을 말하기에는 충분하다. ‘오 그렇구나. 멋있네. 나도 책 너무 안 읽어서 책을 좀 읽어야 되는데. 나 좀 재밌는 걸로 추천해주라.’ 아 이건 예상하지 못한 베리에이션이다. 난 사실 추천할만한 책을 많이 알지 못한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불멸 재밌어. 이거 읽어봐’ 어차피 친구가 책을 읽지 않을 거라 더 묻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일단 말한다. 그래도 여러 가지 책을 알아야겠다는 경각심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줄 수 있는 답안의 선택지를 좀 더 넓혀야겠다. 혹시 ‘그거 말고는 없어?’라는 청천벽력이 내릴 수도 있으니. 대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흘러갔다.


집에 돌아가는 길, 아까 들었던 경각심이 순간 다시 기억났고, 유튜브에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검색했다. 유튜브 검색결과로 너진똑의 ‘데미안 완전판(세계 최초)’ 영상이 뜬다. 40분짜리 영상인데 집에 가는 버스가 마침 나를 집에 데려다주는 시간이 1시간 언저리다. 너진똑 영상을 틀었다. 재밌다. 책 요약도 재밌게 잘해주고, 해석도 좋다. 책을 실제로 읽은 건 아니지만 책을 읽은 것 같은 충만함을 준다. 사실상 책은 그 글자를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용을 아는 게 중요한 것이니 이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독서를 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또, 데미안 영상을 보면서 내가 자아를 형성해 나갔던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당시에 있었던 여자친구에 대한 문제 때문에 부모님과 심하게 다투고 집을 나갔던 기억. 아빠에게 크게 혼나면서 맞고, 내가 부모님에게 종속되어 내 의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존재인지에 대해 고민했었다. 이렇게 깊이 있는 생각을 하고 책의 내용을 내 과거의 이야기와 연결시켜서 구체화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인스타그램에 이 이야기를 올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글과 함께 올려야 하니 게시글로 올려야겠다. 그런데 너진똑 영상을 캡처해서 올릴 수는 없지 않나? 나는 너진똑 영상으로도 충분히 독서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너진똑 영상을 본 것은 독서가 아니고, 쉬운 방법으로 독서를 대체하려 한다고 나를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버스에서 내리니 저번에 들렀던 알라딘 중고서점이 눈에 들어온다. 시간이 늦었지만 아직 영업 중이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어가 데미안을 찾아서 사진을 찍고 다시 내려놓고 나왔다. 책의 글자를 읽는 것보다 내용을 아는 게 중요하니 꼭 다시 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서 내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와 데미안을 읽은 감상을 잘 버무려서 마음에 드는 글을 적고 책 사진을 첨부해서 인스타그램 게시글로 업로드했다.


이 이야기의 나는 독서모습애호가가 되었다.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책을 읽고 싶어 졌지만, 책을 읽는 것의 재미를 알게 되지 않았다. 책에 노출은 됐지만 독서를 길게 하진 않았다. 실제로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은 사람처럼 보이게 인스타그램에 게시물과 스토리를 올렸고, 친구에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독서애호가는 아니더라도 책을 읽는 사람처럼 다른 사람에게 비춰져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독서모습애호가로 사는 게 지겹다면 책에 대한 관심을 끊고 다른 취미를 찾아서 떠날 것이다. 독서모습애호가로 사는 게 좋다면 책에 대한 관심을 유지한 채 계속 롤플레잉을 하게 될 것이다. 다른 취미를 찾아서 훌쩍 떠나는 건 많이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건 모습애호가가 아니어도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계속 롤플레잉을 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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