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롤플레잉을 할 때, 나는 롤플레잉을 위해서 꾸준히 책과 같이 있게 된다. 지속적으로 너진똑의 도움을 받아서 인스타 게시글을 올리고 스토리를 올릴 것이다. 그런데 항상 서점에서 찍은 책 사진만 사용할 수 있나? 그러면 어떤 관찰력 좋은 한 악당이 ‘서점에서만 찍는 거보니 책 사지는 않고 사진만 찍고 나왔구나?’라고 생각하거나, 더 나쁜 경우에는 내 게시물에서 나를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후자의 경우에는 그 악당뿐만 아니고 그 댓글을 본 모든 사람들이 그 악당처럼 생각하게 될 거다. 그래서 때로는 책을 사서 집에서 사진을 찍을 때도 있고, 돈 낭비라고 생각이 들 때는 도서관에 책을 빌려서 사진을 찍을 때도 있었다. 나는 독서모습애호가로서 잘 지내고 있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나 자신이 좀 치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쨌든 책을 읽지 않고 책을 읽는 척하고 있다는 건 스스로 알고 있다. 또, 너진똑이나 이동진이 항상 덧붙이는 말도 있다. 직접 책을 읽는 것만 못하겠지만… 직접 책을 읽는 게 뭐가 중요하길래 직접 읽는 게 더 좋다고 할까? 또, 서점에서 책을 사긴 하는데 안 읽는 것도 돈이 아깝기도 하다. 물론 집에서 인테리어 소품으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긴 하지만 책 10권 두께의 액자는 책 10권 보다 훨씬 저렴하다. 그래서 나는 책을 몇 번 더 펴보기 시작했다.
책을 몇 번 더 펴보았다고 내가 실제 독서애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독서애호가가 될 가능성은 분명히 생겼고, 독서모습애호가가 아닌 사람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 독서모습애호가는 독서애호가가 되는 과정 중에 하나이고, 그중에서도 매우 자주 선택되는 길이다. 이건 독서모습애호가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독서모습애호가뿐 아니라, 우울모습애호가가 실제로 우울증이 될 가능성이 늘어나는 과정, 홍어애호가모습애호가가 실제 홍어애호가가 될 가능성이 늘어가는 과정 또한 위와 같은 형식의 이야기로 만들 수 있고, 그 가능성이 늘어난 상황에서의 변신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모습애호가는 실제 애호가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이제 두 번째로 실제 애호가도 어느 정도의 부분은 모습애호가라는 것에 대해 말해보겠다. 우리는 예술적 천재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상대방의 기준이나 시선에는 신경 쓰지 않으면서 자신이 멋지다고, 혹은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거나 더 나아가서 예술적 활동에 심취해서 자기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옛 연상으로는 베토벤은 고개 숙이지 않았지만 괴테는 고개 숙인 일화가 있다. 고개를 숙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여러 변주가 있지만, 그 이유는 차치하고 고개를 숙였다는 것에만 집중하자. 고개 숙이지 않는 베토벤과 고개 숙인 괴테 중에 누가 더 예술가인가? 고개 숙이지 않은 베토벤이다. 요즘의 연상을 보자. 배꼽이 보이도록 몸에 끼게 작은 반팔을 입고 초록색 반삭 머리에 알이 작은 뿔테 안경을 낀 오메가 사피엔이 딩고 프리스타일에서 열심히 랩을 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랩에 온전히 몰입해서 조자룡 헌 창 쓰듯 온라인 무대를 해내는 걸 보면, 그의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은 오히려 그의 천재성을 상징해 주는 껍데기가 된다. 우리는 예술가가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그의 천재성을 상기하게 된다.
난 예술적 천재가 아닐뿐더러 직업이 예술가도 아니지만, 예술적 몰입에 대해서 알고 있고 실제로 체험해 본 적도 많다. 가벼운 예시로, 나는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자주 부르는데, 나는 내가 노래 부르는 동영상을 찍어서 직접 보기 전까지 내가 노래 부를 때 짓는 표정이 우습다는 건 전혀 몰랐을 뿐 아니라 내가 노래 부를 때 어떤 표정인지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알게 된 이후에도 몰입해서 노래 부를 때, 내 얼굴이 어떤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예술적 몰입의 순간에는 예술적 활동에만 오로지 집중하기 때문에, 그 외에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리듬이 강조되는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음악 듣는 데에 흠뻑 심취해서 다른 사람이 나를 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러해야 하니까 머리가 위아래로 끄덕거렸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몰입의 순간에는 내 모습이 지워진다.
하지만 예술적 몰입이 인생의 모든 순간에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 형태가 무엇이든 예술을 사랑할수록, 또 직업이 예술이라면 예술적 몰입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훨씬 늘어나겠지만, 그렇다고 인생의 모든 순간에서 다른 모든 생각을 배제한 완전한 몰입을 하지는 않는다. 몰입은 너무 힘든 일이라서 몰입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쉬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 남들이 그러하듯이 혹은 직업의 특성상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데 사용할 것이다. 만약에 직업적 예술가가 예술애호가라면(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부동산투자신탁 딜소싱 전문가라고 해서 부동산투자신탁 딜소싱 애호가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그가 예술을 좋아하는 것에는 예술적 활동을 하는 본인의 모습을 좋아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건 단지 예술가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성 해방 운동가로서 볼셰비키 혁명에 참여한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이 사람이 실제로 볼셰비키 혁명애호가였는지 난 모를 일이다. 하지만 볼셰비키 혁명은 예술보다 사람을 더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으니 애호가라고 생각해 보겠다.)도 볼셰비키 혁명에 대한 몰입을 하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고, 혁명에 대해 몰입하지 않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 노동자들의 대표로 블라디미르 레닌, 이오시프 스탈린, 야코프 스베르들로프 등의 쟁쟁한 혁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본인의 모습을 분명 사랑했을 것이다.
어떤 것의 완전한 애호가가 된다는 것은 불가분적으로 그것과 함께 있는 본인의 모습도 애호해야 한다. 독서애호가라면 책 읽기와 함께하는 본인의 모습을, 뷔 애호가라면 뷔의 영상이나 노래, 혹은 가능하다면 실제 뷔 자신과 함께 있는 본인의 모습을, 독립운동 애호가라면 독립운동에 내 모든 걸 내던지는 모습을 사랑할 것이다. 영혼과 육체가 불가분 한 것처럼 애호와 애호의 모습은 불가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애호와 애호의 모습이 불가분 하기 때문에 만약 그가 ‘완전한’ 애호가 라면 모습애호가이기도 할 것이다라고 했지만, 이는 사실 순환논증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나는 완전한 애호가를 그것도 사랑하면서 그것과 함께하는 내 모습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어떤 애호가들은 분명 그것을 사랑하지만 그것과 함께하는 내 모습은 사랑하지 않거나 혹은 싫어할 수도 있다. 나도 그런 예가 있는데, 나는 하스스톤이라는 게임을 하는 걸 매우 좋아하지만, 그걸 하는 내 모습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결국에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애호가들은, 그것도 큰 일부의 애호가들이, 모습애호가라는 것이다.
나도 어떤 것들의 애호가다. 또 어떤 것들의 모습애호가다. 또 더 많은 것들에 대해서는 애호가와 모습애호가 둘 사이의 애매한 곳에 있다. 나는 내 여자친구의 완전한 애호가다. 나는 여자친구의 얼굴과 몸이 생긴 모양, 목소리, 말하는 방법, 코에 난 점 등을 사랑한다. 또, 나는 내가 여자친구를 사랑하고 아끼면서 꼭 안는 따듯한 모습, 내가 남들에게 여자친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여자친구를 존중하면서 말하는 모습 등을 사랑하기도 한다. 또 나는 홍차모습애호가다. 나는 홍차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그 맛과 향을 너무나 사랑하지도 않으며, 홍차가 없더라도 내 삶은 아무 문제 없이 이루어질 것이고, 또 두 달 전의 나는 홍차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홍차를 마시는 사람이 가지는 고풍스러운 이미지, 여유로운 이미지, 다례를 아는 교양은 흠모한다. 그래서 홍차를 마시기도 하고 쿠팡으로 차 주전자를 시켜놓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글쓰기의 애호가와 모습애호가의 중간 어느 지점에 있다. 나는 확실히 글쓰기의 모습애호가이다. 나는 내가 글 쓰는 모습을 좋아한다. 내가 재밌는 글을 쓰려 고민하는 모습을 제3의 시선으로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책들의 작가들도 그러했을 거라 겹치면서 흡족해한다. 그러면서도 글쓰기를 너무나 사랑하진 않는다. 글을 쓰는 게 그렇게 즐겁진 않고 선뜻 손이 잘 안 간다. 그러면서도 어떤 날에는 글을 너무나 쓰고 싶을 경우도 있고, 글을 다 완성하고 나서 완결된 내 글을 읽는 것은 매우 좋아한다.
어떤 모습애호는 단지 모습애호에서 끝날 것이고, 어떤 모습애호는 더 이상 모습도 사랑하지 않게 되면서 끝날 것이고, 어떤 모습애호는 애호로 변할 것이다. 모습애호는 그저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어떤 단계이다. 모습애호 그 자체로는 잘못된 것이 없다. 그건 위선이 아니고, 모습애호가이면서 본인이 모습애호가가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위선이다. 또, 자기는 모습애호가인적이 없었던 양 구는 것도 위선일 것이다. 애호하는 대상이 좋은 애호대상인지 아닌지와는 별개로, 모습애호가가 너무 눈꼴시리게 굴지 않는다면 그냥 놔두자. 솔직히 나도 모습애호가가 너무 눈꼴시리게 하면 핀잔을 주면서 비웃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