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위로

by 영아



오늘은

너의 눈동자가 아닌

하얀 종이를 바라본다


마음보다 느린 손가락

진심보다 연한 연필심


조심스레

한 글자씩

꺼내어본다


너를 바라보는 시간보다

종이를 마주한 시간이

조금 더 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이 손끝으로

조금씩, 조심스레

너에게 닿고 싶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이 마음을 붙잡은 채

꾹꾹 눌러써본다


오월에 들어서며

푸른 잎이 햇살을 가리고

바람을 따라 소리를 낸다


그 안에서

싱그러운 여름같은

너를 떠올려본다


모기가 너를 괴롭히지 않기를

더위가 네 잠을 삼키지 않기를


네가

잘 웃고 잘 자기를

아무 일도 없기를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계절을

너는, 무사히 지나기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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