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풀어줘
아이들끼리 싸움이 붙었습니다. 1학년 아이들은 싸우는 애들보다 말리는 아이와 고자질하는 아이들 때문에 더 소란스럽습니다. 싸움이 한참 전에 상황 종료되었어도 목격자들 모두가 한 마디씩 진술을 해야 진정으로 싸움의 승패가 나뉩니다.
싸움의 원인은 한쪽에서 먼저 화를 냈거나 시비를 거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먼저 화를 낸 쪽은 화를 낸 이유가 있겠지요. 요즘의 아이들은 자기표현과 자기주장이 강해서 양보나 이해보다는 즉각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말싸움이 행동으로 번지기도 하지요.
이럴 때 서양의 어른들은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려서 판단을 내려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칭찬할 점은 칭찬하고 꾸중할 부분은 가려서 엄격하게 꾸짖는다고 합니다. 인도의 어른들은 둘 다 혼낸답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어른들은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다는 황희 정승의 심판을 내리는 쪽이 잘 판결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1학년은 아무래도 인도의 방식을 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시시비비는 이미 목격자 아이들의 진술로 판가름되었으니 둘 다 야단을 칩니다. 한쪽은 시비를 걸었으니 혼나고, 또 한쪽은 화를 못 참았으니 혼나는 겁니다. 그리고 황희 정승처럼 싸움 오래 끌지 않고 금방 끝낸 것에 칭찬을 합니다. 화해를 잘해야 2차전으로 가지 않으니까요. 언제든 싸울 수는 있지만 화해는 싸움 후에 딱 1번, 완벽하게 해야 앙금이 남지 않거든요. 그리고 전체 아이들을 통하여 화를 참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얘들아, 화가 나면 어떻게 화를 가라앉히는 게 좋을까?"
1학년 아이들의 대답
"화가 나면 화를 내요."
"화가 나면 싸워요. 그리고 화를 풀어요."
"화가 나지 않을 때까지 울어버려요."
어쩐지 대답이 산으로 갑니다. 그러더니 한 아이의 대답이 번개처럼 뇌리에 박힙니다.
혼자서만 화를 참고 혼자 삭힐 게 아니라 화를 제공한 원인자에게 책임지라고 하는 방법. 아, 그게 있었군요.
예전에 3학년 아이들이 알려준 화를 참는 방법보다 더 명확합니다.
- 하늘 보고 열까지 세기
- 상대방 대신 인형 때려주기
- 혼자 방에 들어가서 실컷 울기
- 화가 나면 마음속으로 '진정, 진정, 진정….' 하고 외친다.
- 화장실에 들어가서 화가 풀릴 때까지 휴지를 박박 찢는다.
- 연습장에다 화나게 한 사람 이름 적어놓고 연필로 찌른다.
- 지우개를 화나게 한 사람 모양으로 만들어서 때려준다.
- 베개를 화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집어던진다.
- 엄마에게 화가 난 사람을 혼내주라고 한다.
아무래도 화를 나게 한 상대방에게 마음을 이야기하고 풀어달라는 것이 최선의 방법 같습니다. 1학년 꼬마 성자에게 또 한 가지 처세술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