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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Sep 06. 2021

1학년의 '우리 사귀어요.'

여자친구의소원

수업시간에 선생님을 보는 눈치가 좀 이상한 애들이 눈에 띕니다. 종이가 왔다 갔다 하는 본새가 무언가 작당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얼른 가서 종이를 뺏어 쓱 훑어보니 연애편지 같습니다.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안된 쪽지의 내용은 사뭇 진지합니다. 웃음이 나오는 걸 참고 간신히 수업을 마쳤습니다. 두 아이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소원

1. 결혼해주면 좋겠어.

2. 데이트하고 싶어.

3. 같이 얘기를 많이 하고 싶어.


잊고 있다가 다음날 아침 일찍 온 남자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누가 쓴 거야?"

여자 친구가 썼답니다. 공책은 자기 것을 찢어서 주었다는군요. 소원을 두 가지 들어줄 테니 써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결혼해 줄 거야?"

"에이! 결혼은 어른이 하는 거죠."

남자아이는 좋은가 봅니다. 선생님의 표정을 보니 혼낼 것 같지 않은 분위기에 그동안의 과정을 술술 다 이야기합니다.  


"너 유치원에 있다는 여자 친구는 어쩌고? 2명을 사귀기로 한 거야? 바람둥이 되려고?"

"그래서 고민이에요. 둘 다 좋단 말이에요."

녀석은 1학기 때 이미 고백을 받은 전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2명을 한꺼번에 사귈 수 없다고 거절했다더니 지금은 수업시간에도 꽁냥꽁냥 하고 있습니다. 여자애가 워낙 적극적이었거든요.


"데이트는 어떻게 하는 건데?"

"그건 그냥 둘이 얘기하는 거죠."

"둘이 안 사귀어도 이야기는 할 수 있잖아. 왜 꼭 사귀어야 하니?"

서로 사귄다라는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해서 질문이 이어집니다.

"사귀는 건 서로 약속하는 거예요. 둘이서만 선물 주고, 둘이서만 얘기하고, 둘이서만 좋아해야죠. 서로 소원도 들어주고요."

무언가 공공연한 사이가 되는 건 확실히 분명해 보입니다. 대답하는 남자아이의 얼굴에 환희와 싱그러움이 가득합니다.


"그럼 너도 소원이 있겠네. 너는 무언데?"

조금 머뭇거리더니 웃으면서 "저는 없어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럼 너는 아직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거 아니야?"

남자아이는 절대로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그러면서

"저도 결혼하는 거예요. 그리고 둘이 햄스터를 키우는 거예요."

"햄스터?"

"우리는 햄스터를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강아지도요."


이미 둘이는 탐색과정을 지나 공통점까지 찾아냈나 봅니다. 

"그래도 공부시간에는 공부에 집중해야지. 안 그래?"

이미 둘이서 그러기로 약속했답니다. 에구, 귀여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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