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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ug 11. 2021

선녀와 나무꾼, 그 숨겨진 범죄

책 읽기와 책 소개하기 시간

아이들은 어떤 책을 좋아할까요? 

그 많은 책 중에서 아이들은 읽는 책만 읽습니다. 돌아가며 읽어서 나중에는 표지가 너덜거려도 읽은 책을 또 꺼내 읽기를 좋아합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어도 선생님이 선정해 읽어주면 그 책을 또 읽고 싶어 하는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머릿속에 새로운 그림이 하나 더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국어시간에 자신이 읽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읽은 아이만이 실감 나게 장면을 표현하여 잘 소개합니다. 


  한 아이가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아이들 대부분 알고 있는 이야기는 중간중간 끼어드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소개하는 아이가 잘못 기억하고 있을 경우, 또는 사건의 차례에 맞지 않게 이야기할 경우 아이들은 서로가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참견을 합니다.


  “야, 그거 아니잖아. 나무꾼이 사슴을 쫓아간 거지.”

  “아니거든. 사슴은 선녀가 목욕하는 곳 알려주기만 했거든.”

  책의 제목부터 나무꾼과 선녀가 맞는다는 둥, 선녀와 나무꾼이 맞는다는 둥 의견이 분분한 책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출판사마다 책의 제목이 다릅니다. 내용도 조금씩 각색이 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같지만 책의 일부를 텍스트로 한 책이나 내용을 간략하게 줄인 책, 내용 일부를 재미를 위해 변경시킨 책을 읽었던 아이들은 그만큼 빠진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얘들아, 선녀가 계곡에서 목욕할 때 옷을 입고 했을까?”

  “아니요. 어떻게 옷을 입고 목욕을 할 수가 있어요.”

너무 당연한 질문을 왜 하느냐는 듯 아이들의 대답은 명쾌합니다.

 "그럼 선녀가 알몸으로 목욕을 하고 있는데 나무꾼이 옷을 훔쳤다면 선녀는 무엇을 입고 나무꾼을 따라갔을까요?"

 

  일부의 아이들은 벌써 장면을 상상하고 “어휴!”하면서 부끄러워하고, 또 일부는 곰곰 생각합니다.

  “혹시 속옷을 입지 않았을까요?”

  “나무꾼이 옷을 벗어주었을 것 같아.”

  “수건으로 가리고 따라갔을 거 같아요.”

  “하늘에서 옷을 내려주었을 것 같아요.” 

  별의별 대답이 다 나옵니다. 나무꾼이 날개옷을 주었다면 하늘로 올라갔을 테니 분명 알몸인 것은 맞는데….


  “선생님, 어두우니까 깜깜해서 그냥 따라갔을 것 같아요.”

  “맞아. 맞아. 어두우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

  “그럼, 선녀들이 목욕하는 계곡은 깜깜한데 옷이 어디 있는지 알고 나무꾼은 선녀 옷을 훔쳤을까요?”


  순간 생각하느라 조용한 아이들의 모습이 참 귀엽습니다. 결국 어둠의 옷을 입고 옷 도둑을 따라가는 알몸 선녀의 모습이 환영으로 비칩니다. 가끔 생각하는 것이지만 전래동화를 읽으면서 아무 거리낌 없이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얼마나 순수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책은 역시 비판적으로 읽어야 더 재미가 있습니다.

나무꾼의 행동은 분명 범죄입니다. 사슴과 함께 나쁜 짓을 논의한 범죄 사전 공모죄를 비롯하여 목욕장면을 훔쳐본 성희롱죄, 선녀의 옷을 훔친 절도죄, 결혼을 위한 협박죄와 감금죄, 더구나 선녀가 잠자리에 동의했을까요? 나무꾼은 성폭력범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나무꾼에게 어떤 형벌을 얼마나 줄 지 이야기해봅니다. 물론 동화에 나온 대로 수탉이 되어 우는 장면도 들어가야겠지요? 아이들이 말로 한 판결문을 인용합니다.


-나무꾼은 선녀의 옷을 훔치고 선녀를 가족들과 떨어져 살게 만들었다. 선녀를 슬프게 만들었으니 나무꾼은 평생 닭이 되어 우는 형벌에 처한다. 그리고 치킨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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