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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ug 11. 2021

닭과 계란 프라이의 차이

닭이 되면 어차피 치킨 되잖아요

 학기 초에는 돌아가며 모두 한 마디씩 발표하는 릴레이 발표를 시키곤 합니다. 발표 훈련뿐 아니라 소극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아 용기가 없는 아이들을 표현의 장으로 이끌기 위함이죠. 그래도 입을 닫고 한 마디도 안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부끄러움이 많아할 듯 말 듯 망설이죠.

  

  그럴 때 칠판에 커다란 타원을 하나 그립니다. 

  “이 알 안에는 닭이 될 수 있는 병아리가 들어있단다. 그런데 알 껍데기를 깨고 나오려면 병아리가 너무 힘들겠지. 그 조그맣고 약한 부리로 딱딱한 알 껍질을 어떻게 깰 수가 있겠어. 그렇지만 병아리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부리로 껍데기를 쪼아대지. 혹시 밖에서 엄마 닭이 듣고 도와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스스로 계란을 깨고 나온단다. 그런데 힘들다고 포기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아니? 안에서 썩어서 죽는 거야. 태어나 보지도 못하고.”


  아이들 참 열심히 듣습니다. 초롱초롱 듣는 눈망울을 보면 이제 막 돋는 병아리의 날개처럼 신비하고 신령스러운 기운까지 감돕니다. 이어서 말합니다.

  “그리고 있잖아. 무섭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안에서 나오지 않으면 누군가에 의해 깨뜨려져 계란 프라이가 될지도 몰라. 병아리가 들어있는지 아닌지 아무도 모르니까.”


  아이들 점점 몰입합니다. 자신이 병아리라도 되는 양 눈까지 찡그리면서 밖으로 나오기 위해 열심히 부리를 쪼아대는 모습 같습니다.

  “너희들은 계란 프라이가 되고 싶어, 닭이 되고 싶어?”

  대부분 닭이 되겠다고 한 목소리로 말하는데 한 녀석 말합니다.

  “근데 있잖아요. 닭이 되면 어차피 치킨 되잖아요.”


  바로 아수라장이 되는 교실. 아이들 여기저기서 치킨 먹은 이야기부터 프라이드치킨, 양념치킨 등 교실이 치킨집으로 바뀔 태세입니다.

  “선생님이 말 잘못했어. 이 안에는 솔개가 들어있단다. 독수리처럼 용맹하고 매처럼 슬기롭고 타조처럼 큰 새 말이야. 아니, 어쩌면 백조처럼 우아한 새가 들어있을지도 몰라. 알은 모두 비슷비슷해서 어떤 새가 들어있을지 사실은 아무도 모르거든.”


  어느새 자꾸 말이 바뀌면서 아이들 눈치를 봅니다. 갸우뚱갸우뚱하던 아이들.

  “알았어요. 새가 되라는 말씀이지요?”

  

  한 번은 속담을 통해 좋은 이야기를 들려준답시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단다.” 했다가 호되게 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더 먼저 잡아먹혀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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