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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주, 물방울을 그리는 화가를 만나다.

#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을까?- 여행지에서 홀로 미술관 가보기

by 다미

미술관에 가는 것. 여행을 가면 내가 으례 하는 일 중 하나다. 혼자 조용히 미술관을 둘러보고, 가만히 시간을 들여 작품을 집중해서 본다. 작품이 있고 내가 있다.

화려한 관광지도 좋지만 조용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작가가 고민한 작품과 조우하는 일은 내게 여행에서 정말 뜻깊은 순간이다. 어쩌면 작품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와 깊게 만나는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미술관을 좋아한다.


제주도에서 우연히 알게된 김창열 미술관. 렌트카 반납일 날 긁힌 자국이 있어 혹시나 내가 긁은 건가 전전긍긍하다가 카센터에서 갔다. 마음씨 좋은 사장님이 오래된 상처라고 이야기를 해주셔서 서로 멋쩍게 웃음짓고 음료수 한 잔 드리고 시간이 없어 고민하다 나선 곳. 고민을 무색하게 할만큼 아름다운 곳 이었다.

작게 열린 귤나무와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 그리고 뒤 쪽에는 화가님의 흉상과 본가가 함께 어우러진 소박하지만 알찬 미술관이었다. 천천히 미술관에 들어가면 그 앞에는 작가님의 약력과 소개글이 써있다.


물의 고장 맹산이라는 마음의 고향을 지니고 화가는 물이라는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그린다. 신문지에 우연히 묻은 물에서부터 천자문위에 자리잡은 물방울, 마치 탄약처럼 보이는 커다란 물방울까지

물방울이 이렇게 아름다웠었나? 이런 모습이 있었지 참?! 나는 이런 감상을 탄성과 함께 떠올린다. 거의

몇 십년을 다작을 하시면서도 오직 물방울을 주제로 그리셨다는 소리에 사랑을 하더라도 한 여자만을 사랑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도슨트 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작가님은 프랑스에 유학을 가서 프랑스 분과 결혼하셨는데 한국으로 오신 후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부인은 늘 한국에 들어와서는 아침 일찍 나가서 밤이 되어야 집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부인이 나를 싫어하는 건가 하는 고민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가난했던 그 시절에 작가 활동을 하기 위해서 부인은 프랑스에서 이고지고 온 물건들을 한보따리식 팔아 살림 밑천을 마련하셨다고 한다.

가난한 화가 남편을 위해서

참 아름 다운 부부구나. 진짜 부부구나 따뜻한 이야기에 다시금 감동을 받는다.





물방울은 참 다양하다. 3D 입체처럼 정교하게 그려진 수많은 물방울들과 그림자들을 보다보면 작가님의 물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수없이 보고 또 다시보고 그린 것처럼 세밀하고 정교하다.

물방울에 반사된 빛이 컨버스의 아름다운 색과 어우러져 마치 작은 보석들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자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과학시간에 배운 볼록렌즈처럼 눈을 크게 뜨고 글자들을 비추고 있기도 하다.

하나의 대상을 이렇게 아름답고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것이다. 애정어린 대상을 관찰하다보면 우리는 한 가지 대상에서 수백가지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사랑을 할 때 타인은 잘 알지 못하는 대상의 깊고 다양한 모습처럼 물방울은 수백개의 공간에서 저마다 다른 존재감을 뿜어낸다.

천자문을 배웠던 작가님은 자신의 어린 삶의 기억속에 차지했던 천자문에서 배웠던 한자들과 물방울들을 함께 그리셨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한자 중에서 '악' 이나 '배신' 등 나쁜 단어는 쓰지 않으셨다고.

세상을 보는 긍정적인 시각이 느껴졌다.

똑같은 세상이지만 내가 어떤 안경을 쓰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일것이다.

하나의 대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얼마나 깊이있게 바라보는지에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낱

톡톡 털어내야하는 물방울이 평생의 애정의 대상이되고 예술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도슨트 설명을 들으면서 "여기 미술관의 창은 아름답지만 제주에서 집을 지으면 이런 창문은 사용하지 마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바람 때문에 박물관에서는 태풍이오면 비상이 걸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제주도에 집을 짓고 살기까지야 힘들겠지만은 아름다운 고장 제주와 물방울에 대한 깊은 이야기가 있는 이 미술관은 후에 다시 한 번 더 오리라 다짐해 본다. 좋은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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