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을까?- 인생 만화책 읽기 (너는 펫)
한 때 화제가 되었던 말중에 '펫'이라는 말이 있었다. 펫이 하나의 밈이 되어 대유행이었던 시기까지 있었을 정도. 지금의 초등학생들이 들으면 "뭐라고요? 펫?"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을 것 같은 느낌의 단어이다. 도대체 유교걸 유교보이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펫이라는 이 충격적인 소재가 왜 인기가 많아졌을까? 아마 원작의 자극적인 소재 안에 감춰진 사랑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이 수많은 유교걸들을 무장해제 시킨것이 인기의 비결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꽤 오래전에 영화나 드라마 이전에 만화를 통해서 이 소재를 접했었는데 만화책을 읽는데도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직 사랑을 모르는 풋내기 고등학생 시절부터 30대의 나이든 어른이 될 때까지 오랫 동안 모모와 스미레의 스토리가 내 가슴 한 켠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책을 보고 싶어서 서점을 뒤져 주문했다
도쿄대를 나온 엘리트 기자인 스미레는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칼 같은 성격, 완벽한 업무 능력, 흐트러지지 않는 옷차림, 사람들과는 거리를 둔 차가운 냉미녀.
남자친구도 완벽하다. 도쿄대 출신에 완벽한 비주얼의 훈남 선배. 그러던 어느 날 스미레는 버려진 박스 하나를 발견하고, 그 안에 있는 강아지 같은 금발머리 모모라는 남자아이를 발견한다.
동경했던 선배와의 연애지만 스미레는 연애를 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꽁꽁 숨긴다. 오해가 있어서 질투가 나는 상황도 꾹 눌러 담고, 자신의 약한 모습은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선배에게 프로포즈를 받지만 자신이 선배의 환상을 투영하고 있는 인형이라고 느낄 뿐
아직도 선배에게는 진짜 감정을 드러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스미레는 괴로워한다. 그러나 모모에게 는 다르다.
가끔은 강아지처럼 보일정도인 이 남자에게는 '약한 모습도' '기가 막힐 만큼 꼴 사나운 모습도' 보일 수 있다. 감정도 숨기지 않는다. 모모를 껴안고 있으면서 때로는 힘든 이야기들을 털어 놓으면서 스미레는 말한다.
" 모라토리엄(유예)는 계속되지 않아 "
"문득 이러고 있는 세계가 행복한 꿈일지도 몰라"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머리속에 저장된 그녀가 정해놓은 완벽에 가까운 연애 상이 모모와의 관계를 끝이 예정된 슬픈 유예라고 단정짓는다. 때문에 모모는 청년 고다다케시가 아니라 '펫'인 모모일 뿐이고
스미레에게는 그와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어른이라면 언젠가는 지나쳐야할 '꿈'일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것은 모모라는 것을 깨닫고 첫사랑 하스미 선배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펫으로서가 아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모모와 '진짜' 사랑에 빠진다.
꽤나 어렸을 때였는데도 정말 마음에 든 만화책 이었다. 사실 지금 보면 구닥다리 생각이 있는 부분들도 있지만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날카롭게 꿰뚫었다는 점을 높게 사고 싶다.
동경하는 사람과의 멋진 연애. 우리가 누구나 한번쯤 꿈꿔보는 상황이다.
너무나 그 사람을 사랑한 나머지 때로는 상대의 이상을 나에게 투영하려고 노력한다. 약한 모습을 드러내어서도 안될 것 같고, 나의 부정적인 면은 철저히 감춰야할 것 같고.. 하지만 반대로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싶은 욕구도 존재한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기를 원하는 욕구. 모순은 이럴때 일어난다.
스미레는 결국 자신의 껍질속안의 '진짜'를 사랑해줄 사람을 원했다.
사실 진짜 사랑은 그 사람의 껍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껍질너머도 받아들이는 것일 것이다.
그건 사실 어려운 일이다. 세상이 보여주는 또는 그 사람의 잘 포장된 세련된 모습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방어기제, 이해할 수 없는 고집들, 한없이 약한 부분들마저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의 일부로 인정해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완벽하게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고 한들
그럼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받아주는 사람만 만나야하나?
정답은 없겠지만 내 생각엔 자신의 모습은 유지하고 인정하되 상대가 원하는 근원적인 욕구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서 맞춰 갈 수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관계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일은 물론 용기를 요한다. 이야기를 꺼낼때도 용기가 필요하고 상대가 원하는것을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진짜 관계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앞으로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억지스럽게 내 모습을 꾸며내진 않겠지만 부드럽고 솔직하게 그 사람의 니즈에 대해 알아내고 나의 욕구를 이야기해 악기를 연주하듯 자연스레 관계에서 서로가 원하는 바를 조율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그 시절 '펫'에 그렇게 열광했던 이유.
그건 아마도 나의 약한 부분도 내보일수 있고
조건없이 나를 믿어주는 존재를 원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를 건드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어딘가에 있을 나의 '모모'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