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저는 어째서 제가 미리 생각한 미래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상한 생각패턴에 갇혀버리게 된 걸까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언제나 재미를 위해 반전 요소를 넣어 놓는데 이러한 것들을 많이 봐서 그런 걸까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꼭 등장인물이 생각한 대로 미래가 일어나지 않고 그 생각과는 다른 미래가 일어나요. 그래야 뻔하지 않은 흐름이 되고 시청자들이 이러한 반전에서 놀라움을 느끼며 신선한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본건 저만이 아닐 거예요. 다른 사람들도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았을 거예요. 그런데 정상적인 사람들은 드라마를 많이 봐도 현실은 꼭 이렇게 드라마와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어요. 정상적인 사람들은 미래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죠. 하지만 저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저는 균형을 유지할 수 없었고 [생각패턴]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생각패턴이 이성적인 것을 뛰어넘어 저의 균형을 잃게 만들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생각패턴의 뒤에서 이를 떠받치고 있는 강한 지지대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것은 바로 ‘두려움’이었어요. 저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강한 두려움을 느꼈거든요. 두려움이 생각패턴을 정착시키는 유일한 원인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두려움이 생각패턴을 정립시키는데 가장 강한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틀림없어요.
이제 [생각패턴]들이 제 머릿속에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두려움의 관점에서 상황별로 살펴볼게요. 우선 첫 번째로 좋은 미래를 떠올렸는데 실제로도 좋은 미래가 일어난 경우부터 볼게요. 이 경우에는 두려움이 개입하지 않아요. 좋았던 일뿐이니까요. 그러므로 이 상황에서 생각의 흐름은 그저 지나가게 돼요. 이번에는 두 번째 경우로 제가 좋은 미래를 떠올렸는데 실제로는 나쁜 미래가 일어났다고 해볼게요. 그러면 여기에는 두려움이 개입하게 되죠. ‘어? 난 좋은 미래를 떠올렸는데 나쁜 미래가 일어났어. 설마 내가 좋은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나쁜 미래가 일어나는 건가? 그러면 좋은 미래를 떠올리는 것은 너무 두렵잖아.’ 한 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두려움은 이 생각을 더욱더 강화시키게 돼요. 세 번째 경우로 나쁜 미래를 미리 떠올렸더니 실제로 그 나쁜 미래가 일어나지 않는 경험을 했다고 해볼게요. 이 때도 역시 두려움은 이 상황에 주목하며 나쁜 미래를 미리 생각하는 것이 저를 더 안전하게 할 수 있다고 해석해 버려요. 위 세 가지 경우로부터 두려움은 나쁜 미래를 피할 수 있는 생각의 방법을 나름대로 정립해나가게 돼요. 이렇게 정립한 생각이 바로 생각패턴이 되는 것이죠. ‘내 생각대로 미래는 일어나지 않아.’, ‘나쁜 미래를 미리 생각하면 나쁜 미래를 피할 수 있어.’, ‘최악의 나쁜 미래를 미리 떠올려버리자.’ 이렇게 생각패턴 꾸러미를 만들었어요. 두려움은 나쁜 미래를 피하기 위해 이 생각패턴들을 생각의 습관으로 정착시킨 후 이것을 평상시 저만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돼요.
그런데 여기에는 이상한 점이 있어요. 네 번째 경우로 나쁜 미래를 떠올렸는데 정말로 나쁜 미래가 일어나는 때도 있을 거예요. 이런 것을 경험했다면 상식적으로 나쁜 미래를 떠올리는 것을 피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저의 두려움은 정말 이상하게도 이렇게 하지 않았어요. 두려움은 일단 앞서 살펴본 세 가지 경우에 알맞은 생각패턴을 정립시켰어요. 그리고 평상시 저만의 미래를 떠올릴 때 이 생각패턴을 작동시켰어요. 한편 이 네 번째 경우는 특별한 상황인 소원을 빌 때와 선택을 해야 할 때 그리고 다른 사람과 관련된 생각을 할 때에 적용되게 했어요. ‘내가 나쁜 미래를 생각하면 그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이 특정 상황들에서는 이 생각이 작동했죠. 그래요. 이것 역시 사실 또 다른 상황에서 작동하는 또 다른 생각패턴이었던 거예요. 이것은 앞서 본 생각패턴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생각이죠. 이처럼 완전히 상반되는 성격의 생각패턴들이 제 안에 함께 존재하면서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생각패턴이 작동하는 것이죠.
정말 이상하죠? 제가 생각해도 이상해요. 하지만 이것이 이상해 보여도 어쩔 수 없어요. 제 머릿속은 실제로 그렇게 작동했으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를 알아챌 수 있어요. 즉, 두려움에게는 모순이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저 제가 두려워하면 그렇게 작동할 수 있는 거죠. 동전이 양면을 다 갖고 있는 것처럼 저의 두려움은 이런 모순성을 기꺼이 뛰어넘어 제 머릿속에서 작동했어요. 저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실제로 그렇게 작동했으니까요. 두려움에게 완전한 합리성을 바라는 것을 포기해야 했어요. 어떤 경우에는 미래가 제 생각대로 될까 봐 두려워하고 어떤 경우에는 미래가 제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하는 이 모순성을 받아들이기로 한 거죠.
그런데 저는 분명히 앞서 본 생각패턴들이 올바른 것이 아닌 어딘가 그릇된 패턴이라는 것을 근본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어요. 이들이 옳은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분명 알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생각패턴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처럼 어떠한 것이 사실 진짜가 아님을 알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휘둘리게 되는 경우는 일상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깜깜한 방에서 침대에 누워있으면 전 귀신을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발 아래나 머리 위로 검고 긴 머리카락을 내린 여자 귀신이 저를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머릿속에 귀신의 이미지가 그려지면서 서늘함이 느껴지게 돼요. 또 다른 예로 점쟁이의 말도 있어요. 예를 들어 당신이 점을 보았는데 점쟁이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해볼게요. “올해는 물을 조심해야 해.” 원래 당신은 점을 그렇게 믿지 않는 편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이 말을 그냥 흘려 들었어요. 그런데 여름이 되어 친구들이 바다 여행을 같이 가자고 당신에게 제안하게 되었어요. 당신은 원래 바다를 좋아했기 때문에 당연히 이 제안을 수락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점쟁이의 그 말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예요. ‘올해는 물을 조심해야 해.’ 당신은 이 말을 믿지 않지만 그래도 뭔가 꺼림칙해요. 혹시나 정말로 바다에 갔다가 뭔가 나쁜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아니야, 고작 그런 말 한마디 때문에 친구들과 즐겁게 놀 수 있는 바다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어, 흠, 그래도 미래는 모르는 일이잖아. 이번만 가지 말까... 이런 상황에 빠진 당신은 분명 점쟁이의 말이 그릇된 정보일 수 있다는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에 휘둘리는 자기 자신을 어찌할 수 없는 거예요.
즉, 그것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진짜든 가짜든, 근거가 있든 없든, 직접 경험한 것이든 아니든, 두려움에게는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두려움과 연결된 생각이라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생각에 휘둘리게 돼요.
한편 제가 두려워하는 생각들을 잘 살펴보면 이 생각들이 바로 ‘미래’에 대한 생각임을 알 수 있어요. 저는 왜 하필 세상에 있는 수많은 것들 중에서 특히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이렇게 많이 휘둘렸던 걸까요? 사실 ‘미래’는 제가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에요. 그런데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미래는 특별한 성질을 갖고 있어요. 그 성질은 바로 미래는 제가 절대로 명확하게 알 수 없다는 점일 거예요. 저는 미래를 절대로 명확하게 알 수가 없어요. 아무리 확신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항상 변수가 생길 수 있고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른 미래가 올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있어요. 그리고 절대로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은 거기에는 항상 검은 장막이 쳐진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래서 저는 그 검은 장막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계속해서 끝없이 제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어요. 이 상상하는 방식이 부정적이라면 저는 그 암흑 속을 여러 가지 다양한 부정적인 형상들로 번갈아가며 떠올릴 수 있지요.
제가 절대로 확실하게 알 수 없는 대상, 아무리 빛을 밝혀도 절대로 보이지 않는 어둠에 대해 저는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이 두려움이 만드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어둠의 늪에 끊임없이 빠져들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와 같은 성질을 갖는 또 다른 존재가 있어요.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머릿속’이에요. 저는 절대로 ‘다른 사람의 머릿속’을 명확히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미래’에 대해 그러했듯이 ‘다른 사람의 머릿속’을 끊임없이 추측했어요. 굉장히 예민하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신경 썼고, 혹시라도 그가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소한 제 행동 하나하나에도 신중을 가했어요. 이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었어요. ‘다른 사람의 머릿속’도 ‘미래’와 같은 성질을 갖고 있었기에 앞서 본 패턴들처럼 두려움은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관련된 생각패턴들도 만들어냈어요. 그리고 이들 역시 대부분 제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저는 인간관계에서도 역시 어려움을 겪게 되었어요. '건강'도 마찬가지였어요. 제 몸을 완벽히 샅샅이 살펴보지 않는 이상 저는 제 몸이 완전히 건강한지, 아니면 몸 안 어딘가에 병이 있는 건지 절대로 완벽하게 알 수 없어요. 그래서 항상 건강을 걱정할 수 있었죠. 이처럼 미래와 인간관계, 그리고 건강은 보이지 않는 어둠이 있을 수밖에 없고 두려움은 이 어둠을 부정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저는 다른 대상들보다 이들에게 더 크게 휘둘렸어요.
다음 글에서 우리는 생각패턴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들이 머릿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거예요. 그럼으로써 두려움과 생각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