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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한 Apr 09. 2024

생각패턴의 성질과 영향력

생각패턴들이 제게 끼치는 영향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겨우 몇 개 밖에 안 되는 이 생각패턴들이 사실 제 머릿속 생각의 근본적 차원에서 굉장히 무서운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게 돼요. 평상시 저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작동하는 생각패턴 꾸러미를 다시 한번 적어볼게요.


‘내 생각대로 미래는 일어나지 않아.’, ‘나쁜 미래를 미리 생각하면 나쁜 미래를 피할 수 있어.’, ‘최악의 나쁜 미래를 미리 떠올려버리자.’


일단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생각패턴들은 제 머릿속 생각들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들이라는 점이에요. 이 점을 염두에 둔 상태로 이야기를 이어 나갈게요.


생각패턴의 첫 번째 성질은 생각패턴이 어떤 특정한 상황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와 관련된 것을 생각하는 어떠한 상황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우리는 수많은 경우에서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내일 날씨는 어떨지,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지, 이번 여행은 무사히 잘 다녀올 수 있을지 등등, 미래와 관련된 것이라면 이들 생각에 어김없이 생각패턴은 적용될 수 있어요. 특별한 경우만 적용된다면 그 영향력이 작다고 할 수 있지만 생각패턴은 미래에 연관된 모든 생각에 범용적으로 적용되기에 굉장히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생각패턴은 제 머릿속 생각에 굉장히 많이 그리고 자주 관여할 거예요. 이러한 생각패턴의 첫 번째 성질을 ‘범용성’이라고 부를게요.


생각패턴의 두 번째 성질은 생각패턴이 머릿속에서 떠오를 수 있는 수많은 가능한 생각들 중에서 선택적으로 생각패턴에 부합하는 생각만을 살리고, 이에 부합하지 않는 다른 생각들은 죽인다는 것이에요. 저는 사실상 미래의 어떤 일에 대해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생각패턴이 작용하면 그 다양한 생각들 중에 생각패턴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생각만이 살아남게 돼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해 예측할 때 굉장히 좋은 결과, 또는 어느 정도의 좋은 결과, 또는 그저 그렇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결과, 그게 아니면 꽤 나쁜 결과, 그리고 최악의 나쁜 결과를 다양하게 떠올려 보는 것이 가능해요. 그리고 그는 이 예측들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살펴보며 어떤 결과든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거예요. 하지만 생각패턴에 사로잡힌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저는 생각패턴에 의해서 굉장히 좋은 결과, 어느 정도의 좋은 결과, 평범한 결과, 꽤 나쁜 결과에 해당하는 생각을 억지로 죽여 버려요. 그런 후 생각패턴은 오직 제 머릿속에 최악의 나쁜 결과에 대한 생각만을 살아남게 해요. 다양한 생각들 중 생각패턴에 부합하는 생각만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생각들은 죽여 버리는 것, 생각패턴이 제 머릿속에 끼치는 이러한 영향을 ‘필터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패턴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몇 개의 생각들만이 제 머릿속에 남게 되면 이 생각들은 그 상태 그대로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예요. 이 생각들은 씨앗이 되고, 이야기가 이어지듯이 이 씨앗으로부터 점점 살이 붙어 생각이 확장되어 가요. 마치 하나의 나뭇가지에서 또 다른 나뭇가지가 나와 계속해서 뻗어나가는 것처럼 편향된 생각들은 이들에게 연결될 수 있는 또 다른 편향된 생각들로 가지를 붙여가며 계속해서 성장하게 돼요. 이렇게 되면 저는 계속해서 생각이란 것을 해나가는 것 같지만 이것은 결국 편향된 생각만을 늘리는 작업이 될 뿐이지요. 생각패턴의 이 세 번째 성질을 ‘편향된 확장성’이라고 부를 수 있겠어요.


그런데 머릿속 생각들에 영향을 끼치는 생각패턴이 가진 성질인 ‘범용성’, ‘필터성’, ‘편향된 확장성’을 잘 살펴보면 진화론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진화론에 의하면 환경적 요소에 적합한 생명체는 살아남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생명체는 사라지게 돼요. 그리고 이렇게 환경에 의한 자연선택에 의해 살아남은 생명체는 자신의 자손을 남기고 그 자손과 유사한 형질을 가진 생명체가 자연을 우세적으로 지배하게 돼요. 생각패턴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어요. 생각패턴은 제 머릿속에서 미래와 관련된 모든 생각들에 범용적으로 작용할 수 있어요. 그러므로 이 생각패턴은 머릿속 미래와 관련된 생각들의 자연환경이 돼요. 그리고 생각패턴이라는 환경에 적합한 생각만이 살아남고 다른 가능한 수많은 다양한 생각들은 환경에 선택받지 못하고 사라지게 돼요. 그리고 이렇게 환경선택에 의해 살아남은 편향된 생각은 이 생각과 성격적으로 부합한 또 다른 편향된 생각들을 끌어당기고, 이야기처럼 생각은 점점 커다랗게 이어지면서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돼요. 이렇듯 단지 몇 개에 지나지 않는 생각패턴들이 무섭게도 온전하게 미래와 관련된 머릿속 생각의 생태계를 결정짓게 되는 거예요. 원래대로라면 균형 잡힌 생각들로 채워졌어야 할 머릿속이 생각패턴에 의해 완전히 편향된 방향으로 설정되어 버리는 거지요.


하나의 생각패턴이 있다면 그 패턴은 그저 하나만으로 작동할 수도 있고, 아니면 위에서 본 것처럼 이어 붙일 수 있는 또 다른 생각패턴들을 끌어와서 하나의 꾸러미로서 작동할 수도 있어요. 생각패턴 꾸러미는 특정 상황에서 함께 작용하며 머릿속 생각들을 형성하는 기저의 역할을 하게 돼요. 그리고 여기서는 특정 예시로서 저의 생각패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여러분도 분명 어떤 상황에서 작동하는 여러분만의 생각패턴 꾸러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이 꾸러미가 밑바탕으로 작용하며 여러분의 머릿속 생태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을 거예요.


한편 이렇게 생각패턴이 머릿속 생각들을 결정지어 버린다면 억지로라도 좀 더 올바른 생각패턴을 추가해서 머릿속이 좀 더 균형 잡힌 생태계가 되도록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처럼 보여요. 기존의 생각패턴과 반대되는 생각을 떠올려서 기존의 생각을 중화시키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은 제가 정말 오랫동안 이러한 방식을 시도해 보았는데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어요. 한 번 간단한 예를 들어 볼까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을 때 귀신이 발밑에 있다는 생각이 들고 이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면 이와 함께 침대 밑에 귀여운 미키마우스가 있다고 생각해 보는 거예요. 또한 달을 볼 때 소원으로 무서운 생각이 든다면 이때 떠오른 생각과 반대되는 생각인 아프지 않게 건강하게 해 주세요를 겨우 떠올려 보는 거예요. 점쟁이의 물을 조심하라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면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이 내 몸을 얼마나 상쾌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이렇게 몸의 컨디션이 좋아지면 한해를 얼마나 활기차게 보낼 수 있는지를 점쟁이의 말과 함께 생각해 보는 거예요. 하지만 이렇게 반대되는 생각을 억지로 떠올리면 두 생각이 중화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두 생각 모두 함께 떠오른 상태가 유지되었어요. 그리고 이 두 생각 중에서 억지로 떠올린 좋은 생각보다 원래 있던 두려움과 관련된 생각이 더 힘이 강했어요. 귀여운 미키마우스보다는 무서운 귀신이 더 강했고, 컨디션이 좋아진다는 생각보다는 물에 들어갔다가 큰일이 생길까 하는 두려움이 더 강했죠. 결국 두려움에 관련된 생각이 언제나 승리했고 이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제가 억지로 머릿속에 추가하는 생각은 힘이 없었어요.


그래요. 두려움은 아무 생각이나 생각패턴으로 자리 잡도록 허락하지 않았어요. 제가 임의로 원하는 생각을 생각패턴으로 추가하고 싶어도 두려움이 판단할 때 그것이 적합하지 않으면 배척해 버렸어요. 생각패턴들이 제 머릿속 생각들을 자연선택하는 환경적 요소라면, 두려움은 이러한 생각패턴을 자연선택하는 더 근본적인 환경적 요소인 셈이었던 거예요.


이렇게 이번 글에서 우리는 생각패턴 꾸러미의 성질과 이들이 머릿속 생각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 알아봤어요. 이제 드디어 다음 글에서는 생각패턴의 본질에 대해 말해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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