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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한 Apr 16. 2024

생각패턴의 본질

이전 글에서 저는 여러 예를 들면서 두려워만 할 수 있다면 그 생각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어요. 또한 모순되는 생각들도 두려워만 할 수 있다면 모순을 뛰어넘어 두려워할 수 있다고 말했죠. 왜 이처럼 두려움과 연결된 생각은 진실, 가짜, 모순에 상관없이, 즉 이성적인 합리성에 상관없이 머릿속에서 작동할 수 있는 걸까요?


이것은 아마도 두려움이라는 존재 자체의 근본적 성향 때문일 거예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우리의 두려움은 생존과 직결된 존재예요. 만약 우리에게 두려움이 없다면 위험한 것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이로 인해 생명을 쉽게 잃게 될 거예요. 그러므로 두려움에 의해 정착된 어떤 생각은 자신의 생명과 관련된 굉장히 중요한 생각이므로 다른 일반적인 생각들보다 우선되는 생각이 되어야 할 거예요. 또한 이 생각은 다른 생각들에 의해 쉽게 침범되거나 훼손되어서는 안 될 거예요. 왜냐하면 생명을 지키는 생각이 어떤 다른 생각에 의해 휘둘린다면 두려움 입장에서는 저의 생명을 제대로 지킬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이 생각이 거짓이고, 가짜라고 하더라도 이미 두려움에 연결되어 버렸다면 이 생각은 이성적 판단을 초월해서 견고하게 존재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두려움과 연결된 생각은 생명과 연결된 중요한 생각이므로 언제라도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했을 때 또다시 이 생각을 바로 떠올릴 수 있어야 저의 생존에 도움이 될 거예요. 그래야 그 상황에서 이 생각을 바탕으로 빠르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두려움과 연결된 생각은 생각패턴으로서 제 안에 저장되는 거지요. 저의 안에서 언제라도 다시 불러올 수 있는 형태로 저장되는 거예요.


사실 두려움은 생명과 관련되어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직접적으로 생명에 관련되지 않은 사소한 것들도 두려워할 수 있어요. 근본이 생명인 것이지 인간은 복잡한 진화 과정을 겪었기에 두려움도 그 활용 범위가 넓어졌거든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두려움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작동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지요. 혹시 중요한 시험을 볼 때 떠올리고 싶지 않던 반복성이 있는 노래가 머릿속에서 계속 떠오른 경험이 있으신가요? 왜 떠오를까요? 시험이 아니라면 노래는 쉽게 지나갔을 텐데 시험이기에, 노래가 떠오르면 시험을 망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작용하면 노래는 머릿속에서 반복돼요. 두려움은 나를 괴롭히고 망가뜨리기 위해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걸까요? 그럴 리가 없어요. 두려움은 분명 나를 지키기 위한 마음의 작동 방식이므로 이렇게 하는 것도 분명 나름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왜 두려움의 입장에서 노래를 반복시키고 시험을 망치게 하는 게 나를 지키게 되는 행위가 되는 걸까요? 왜 피하고 싶은 것을 더 떠올리게 하는 걸까요? 피하고 싶다는 것은 내가 그것을 그 상황에서 두려워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러므로 두려움은 나를 지키기 위해 오히려 내가 두려워하는 바로 그것을 내가 계속 인식하게 해요. 그래야 내가 그것을 인식하면서 그것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요. 우습게도 두려움은 나를 지키기 위해 그것을 계속 떠오르게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그것 때문에 현재 상황을 망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어떤 생각을 피하고자 노력할수록 두려움은 다음처럼 말하는 거예요. ‘아, 피하려고 하니까 그게 두려운 대상인가 보다. 그렇다면 더 떠오르게 해서 내가 더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해주자.’ 이렇게 되어버리는 거지요.


그렇다고 해서 ‘어? 내가 피하려고 하니까 더 떠오르는 거라고? 그러면 피하려고 하지 않으면 되나? 노래가 반복돼도 괜찮아라고 나에게 말해주면 되는 건가?’ 하지만 이처럼 단순히 피하던 것을 피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것은 잘 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내가 나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에요. 나는 그것을 피하고 싶은 거예요. 그것을 피하지 않으면 시험을 망치게 되니까. 그 솔직함을 나 스스로에게 감출 수는 없어요.


하지만 이로 인해 내가 망가지더라도 그것은 두려움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저 내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실제 지금 바깥에 있었다면(사자를 만나는 것처럼) 이것은 내게 큰 도움이 되지만(사자를 계속 강하게 인식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내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내 내면, 머릿속에 있는 경우 두려움은 그저 바깥쪽과 안쪽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도 계속 떠오르게 하는 것일 뿐이죠. 이로 인해 내가 망가지게 되더라도, 두려움은 두 경우 모두 나를 지키기 위해 작동하는 것뿐이에요.


바로 이런 거지요. 두려움은 이처럼 머릿속에서 작동해요. 저의 생각패턴도 이와 마찬가지로 두려움이 저를 지키려는 방식이었죠. ’내 생각대로 미래는 일어나지 않아‘, ’그러니까 나쁜 미래를 미리 떠올려버리자‘ 이와 같은 생각패턴들은 현재의 저를 힘들게 하고 불행하게 만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우습게도 이 현재의 힘듦과 불행을 느끼며 어딘가 오히려 안도하고 있었어요. 현재는 이들 때문에 불행하더라도 이들로 인해 결국 무서운 미래를 피할 수 있다고 여겼으니까요. 설령 이들이 거짓이라는 것을 제가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게는 나쁜 미래가 너무나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에 그러한 미래를 피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이 없었어요. 더 큰 나쁨을 그보다는 좀 더 견딜 수 있는 나쁨인 [생각패턴]으로 막고 있는 거죠.


그래요. 두려움이 '나를 지키려 하는 힘'이라면 이 힘이 만들어낸 저의 미래를 지키려는 머릿속 ’ 보호막‘이 바로 생각패턴이었던 거예요. 두려움에 의해 만들어진 생각패턴은 적어도 두려움의 입장에서는 저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것이 생각패턴의 본질이었던 거지요. 저는 이 보호막을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현재의 행복을 버리고 있었던 거예요. 생각패턴으로 인해 현재는 불안했지만 미래의 저는 이로 인해 지켜질 수 있었으니까요.


두려움은 근본적으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생각이라도 그 생각이 두려움과 연결돼있다면 그 생각을 두려워하는 그 순간만큼은 그 생각에 생명만큼의 힘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어요. 내 안에 있는 것들 중에 아마 생명을 지키려는 힘만큼 강한 것은 여간해선 없을 거예요. 제 생각패턴들은 두려움과 연결된 생각들이었고 그래서 이들은 생명만큼의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어요. 저는 생각패턴이 보호막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이 생각들로 인해 삶이 너무나 힘겨웠기 때문에 이들을 극복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방금 말했듯 생각패턴을 이겨내려는 시도는 어쩌면 자신의 생명에 맞서는 시도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는 자신의 생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요? 다음 글에서 우리는 두려움과 관련된 가설들을 살펴보며 이 질문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함을 알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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