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틀 속 마음 한 덩이
하원 가방 속에서,
봄 소풍 안내장이 삐죽 얼굴을 내밀었다.
“교회 운동장까지 걸어서 갈 거예요.”
그 말에 잠시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걷는 것도 아직은 서툰 네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까지 걸어간다는 사실이
기특하면서도 걱정스러웠다.
“김밥 싸야 하나?”
무심코 던진 말에
아내는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요즘은 이거 많이 해. 주먹밥 틀이야.”
토끼 모양이 박힌 틀.
“이걸로 해보자.”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론 좀 불안했다.
그날 밤,
우리는 부엌 테이블 앞에 나란히 앉았다.
따뜻한 밥에 참기름을 한 방울,
김자반을 넣어 고루 비볐다.
김 냄새가 퍼지자
잠든 네 얼굴이 떠올랐다.
작은 토끼 틀에 밥을
꾹꾹 눌러 담았다.
첫 주먹밥은 귀가 찌그러졌고,
둘째는 눈 없이 태어났다.
셋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귀가 선 토끼 하나가 완성됐다.
서툴지만, 제법 사랑스러웠다.
아내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처음이니까, 이 정도면 잘한 거야.”
소풍 날 아침,
아내는 일찍 출근했다.
현관 앞에서 가볍게 내 어깨를 두드리곤
“잘 부탁해요, 아빠.”
작게 웃으며 사라졌다.
주방엔 도시락 가방이 놓여 있었고,
김자반 향이 여전히 공기 속에 남아 있었다.
나는 네 방으로 가 조심스레 불렀다.
“일어날까? 토끼 도시락, 아빠가 챙겼어.”
눈을 비비며 일어난 너는
도시락을 꼭 껴안고 “빠빠, 토끼!”
옹알이 섞인 말로 기분을 전했다.
작은 손에 도시락을 쥐여주며 속삭였다.
“오늘은 너의 첫 소풍이야.
아빠는 거기까지만 같이 갈게.”
그 말의 뜻을 다 알진 못했겠지만
도시락을 꼭 안은 너의 표정엔
작은 설렘이 피어 있었다.
운동장까지는 걸어서 5분 남짓.
선생님 손을 잡고 또래
친구들과 줄을 선 너는
뒤뚱뒤뚱 걸음을 옮겼다.
나는 멀찍이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으로 빌었다.
넘어지지 말고, 도시락도 꼭 먹고…
잘 다녀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