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긁힘 아래, 남겨둔 마음
(소개 합니다.)
오늘 아침,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뒤에 있었던 작고 사소한 일입니다.
일상 속 작은 순간이지만,
마음 한 편에 오래 남는 이야기들이 있지요.
이번 단편 에세이를 통해
그런 흔적들을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차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옆 차에서 두 분의 할머니가
내리려던 참이었다.
그 순간,
운전석 쪽 뒷문이 갑자기 열렸다.
나는 이미 지나가고 있었고,
결국, 차 옆면엔 희뿌연
긁힘 하나가 남았다.
별다른 소리는 없었지만
금세 알 수 있었다.
작은 사고였고,
그보다 더 빨리 마음이 움찔했다.
‘전에 있던 긁힘 자국과
이번 사고가 같은 자리인것 같은데,
둘 다 한꺼번에 고쳐야 할까?’
이미 난 삶에서의 계산을 하고 있었다.
운전수분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가 문을 잘 열어드렸어야 하는데…
할머니께서 갑자기 문을 확 여셔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조용히 멈췄다.
사고의 크기보다
마음의 크기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괜찮습니다”라는 말로
내 안의 혼란을 정리했다.
내 마음 한 편에 남은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아니라
누군가가 내게 남긴
작은 은총처럼 느껴졌다.
물론, 우리집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남은 건 후회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른다.
왜 그냥 보냈냐고,
나 같으면 못 참았을 거라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의 내가
조금은 자랑스럽다.
잠깐이나마
‘내가 되고 싶은 사람’에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그 결정은 짧았지만,
그 울림은 길었다.
사고 난 차는
우리 집 아래 노인유치원의
등하원 차량이었다.
운전을 맡은 분은
아마 그곳에서 어르신들을 돌보시는
요양보호사였을 것이다.
그분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내 차 옆면에 작은 흔적을 남겼고,
나는 그 흔적 위에
사소한 연민과 함께
내 마음 한 켠을 덧댔다.
차 옆면의 흰 긁힘은
컴파운드로 얼마든지 지울 수 있었다.
이전 상처는 남았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자국을 남겼다.
지우지 않은 것은 실수가 아니라
내가 받아들이고, 견뎌내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 위한 흔적이었다.
완전한 지움이 아니라
조금은 거친 흔적을 통해서라도
내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서 있어야 하는지 기억하고 싶었다.
차 옆면의 흰 긁힘은
누군가에겐 흠일 테지만,
내게는
마음의 방향을 기억하게 해주는
조용한 흔적이다.
그건 상처가 아니라,
내가 선택했던
하나의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