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에서 독주까지(심연의 끝에서 가늘게 드리운 한줄기)

7화(에세이)

by 송필경

심연의 끝에서 가늘게 드리운 한줄기


나는 가장 깊은 바닥에 닿았다.

잔인한 파동은 나를 집어삼켰고, 그 거대한 메아리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질문했다.

나는 누구인가, 이토록 무너져버린 존재가 과연 사람인가.

흩어지는 자아 속에서 묻어둔 기억의 칼날이 나를 다시 찌르고, 시간마저 정지된 필름처럼 멈춰 버렸다.

내 모든 감각은 얼어붙었고, 존재의 뿌리마저 균사처럼 부식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그야말로 모든 의미가

소거된, 텅 빈 방의 차가운 온도만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 바닥, 더 이상 떨어질 곳도, 느낄 고통마저 없는 그 극한의 어둠 속에서, 문득 눈을 감았다.

그리고 떴을 때, 그 지독한 투명함이 섬뜩했던 '빛'이 있었다.

묵음의 심장을 꿰뚫기에는 너무나 가늘고 여린,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달빛이었다.

그 달빛은 마르지 않는 젖은 기억처럼 잊고 싶은 상념들을 감은 눈 위로 맺혀 올렸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실처럼 내 안의 어딘가를 잡아주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믿음'이라 부를 용기조차 없었다.

단지, 그 빛바랜 기억들과 함께 기어이 내 삶에 아로이 새겨진 그 가느다란 실 한 가닥을 붙잡을 뿐이었다.

그것은 어떤 해결책도, 완벽한 치유도 아니었다.

그저 '이 어둠을 건너보자'는,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아주 작고 약한 '움직임'의 시작이었다.

상처는 여전하고, 길은 여전히 어둡고 불안하다.


하지만 부디 내일의 달빛은, 아물지 않은 상처보다 먼저 나를 비추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이제 다시, 아주 천천히, 내 안의 흐름을 느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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