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에서 독주까지(파장 (波長))

8화

by 송필경

파장 (波長)


기억의 여울, 강은 흘러
아득한 수평선 안개 속으로
끝내 스며들어 사라졌건만,

그날의 잔상은
무수한 동심원으로 번져
물결 위에 영원히 새겨진다.

아주 미미한 불씨 하나,
심장의 맥동만 한 징표가
혈관을 타고 뜨겁게 굽이쳐
갈증처럼 목마른 열이 되어
나를 갈가리 삼킨다.

산산이 부서지고 허물어져
잿더미가 된 나,
환영 속 낯선 내가
메마른 흙빛 눈으로
그날을 겹겹이 그려 넣는다.

발목을 묶은 시간들은
물 밑 깊이 가라앉은 바윗덩이,
아득한 심연에서 길어 올린
묵직한 침묵 속에서
내 존재는 그림자처럼 웅크리고
부서진 파편들을 끌어안았다.

그때의 악마는 남이 아니었다.
숨 죽인 회피,
겹겹이 굳은 쇠사슬로
존재의 뼈마디를
시리도록 조여 왔다.

그러나 이제—
쇠사슬은 차가운 물살에 닿아
조금씩 그 육중한 무게를 잃어가고,
오랜 시간 엉겨 붙었던
미움의 껍질들은
뜨거운 물길 따라 허물어지며
투명한 살갗으로 드러난다.

나는 다시 흐르는 강.
강은 모든 것을 따스히 감싸 안으며
그렇게 흘러,
새로운 물결로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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