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에서 독주에게(접힌날개)

9화

by 송필경

접힌 날개


축 늘어진 날개, 대지를 끌며

피멍 든 손은 헛된 허공을 애타게 젓는다.

내 날갯짓은 부질없이

삶의 어둠을 긋는 그림자일 뿐.


아득한 비상의 나날은

푸른 꿈만 남긴 채 멀리 사라졌다.

남은 것은 한낱 과거의 잔해,

텅 빈 공간을 헤매는 쓸쓸한 기억.


비명조차 삼킨 축축한 무게의 깃털,

그 무게에 천상은 아득히 멀다.

나는 부서진 하늘 파편 아래

갈라진 숨통으로 애써 숨을 고른다.


자꾸만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잔인한 중력,

두 다리조차 온전히 설 수 없는 폐허의 땅.

더 이상 푸른 꿈 꿀 수 없음에 대한 절규는

목구멍 속 짓눌린 울음으로 터져 나온다.


균형 잃은 날개는

더 이상 비상을 허락지 않는다.

차라리 땅 위에 몸을 뉘여

낮고 긴 기어감을 시작한다.


날카로운 돌멩이, 축축한 흙 내음,

짓무른 살갗은 피와 땀으로 얼룩지고,

깨진 발톱 끝에 매달린 미미한 전진.

그것은 절망 속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미약하나마 거룩한 몸부림이었다.


진흙과 돌을 스치는 고통스런 손끝마다

새로 돋을 날개의 푸른 맹세를 믿는다.


이 깊은 어둠 끝에

마침내 펼쳐질 환한 빛을 향해,

나는 피 흘리는 가슴으로 스스로를 일으킨다.

꺾여도 꺾이지 않는 투박한 의지.


이 꺾인 날개, 푸른 창공을 찢을 그날까지,

나는 멈추지 않고

세상과 나 사이, 새로운 길을 벼려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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