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순백의 페이지가
오늘도 나를 부른다.
그 속에서 나는
박제된 상처와 마주 선다.
거울 속 내면의 활자는
녹슨 탄식과 병든 회한으로 뭉쳐
불편하게 타오르는 열기,
활활 끓는 쇳물처럼 번진다.
차갑게 식히고 싶지만
구원의 순간조차
결국 스스로 엮은 쇠사슬로
손목을 결박할 것만 같다.
펜 끝에서
미지의 암호를 토해낸다.
검은 선으로, 심연을 긋듯
숨죽인 심장이 흔든다.
남겨진 백지 위
깜빡이는 미지의 글자들.
나는 오늘도
영원한 해답의 암호를
찾아 헤맨다.
그리고 알았다.
해독자는 나 자신,
밤의 끝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자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