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눈이 잔잔히 내리던 오후였다.
버스 정류장 의자 맨 끝에
작은 분홍 장갑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어른 손보다 훨씬 작은,
털이 몽실하게 달린 아이의 장갑이었다.
눈발이 점점 굵어지자
장갑 위로 하얀 눈이 천천히 쌓여 갔다.
나는 괜히 털어주고 싶었지만
손을 뻗지 못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잠시 후,
머리 끝까지 목도리를 두른 작은 아이와
그 손을 잡은 엄마가
정류장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다가왔다.
눈 더미 속의 장갑을 발견한 순간,
아이의 표정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아마도
보고 싶었던 건 장갑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장갑을 잃어버렸던 동안의
불안과 서러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장갑을 주워
아이의 작은 주머니 속에 조심스레 넣어주었다.
아이는 아직도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질까 말까 한 얼굴로
버스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조용한 오후,
분홍 장갑이 놓여 있던 자리에는
작은 손자국만 남아 있었고
그마저도 곧 눈 속으로 천천히 사라져 갔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내 마음도 생각이란 눈에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물건을 잃어버리고 다시 찾은 그 순간에는
미안함과 안도함이 그리고 원래 내 곁에 있었던 것들의 소중함이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보니,
사라졌던 것을 되찾고도
예전만큼 반가워하지 못하는 마음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릴 땐 무엇을 잃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듯 울음을 삼키며 끝까지 손을 뻗었지만,
지금의 우리는 잃어버린 것들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되찾아도 예전처럼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한번 식은 온도는 예전의 따뜻함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이미 배워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
눈은 고요한 빛을 머금고 내리고 있었다.
나는 내가 잃고도 돌아서버렸던 많은 것들을 떠올렸다.
그중 몇 가지는 지금도 마음 한편에서
분홍 장갑처럼 조용히 눈 쌓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기억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
나는 그제야 알게 될지도 모른다.
사라진 것들은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누군가의 마음을 거쳐 지나간 온기는
언제나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우리 안에 쌓여간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