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겸은 노란색 원피스를 입었다.
아버지가 고른 옷이었다.
“시킨대로만 해. 단정하게.”
그는 언제나 같은 말을 반복한다.
테이블은 둥글었고,
접시는 흠 없이 반짝였다.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었다.
정돈된 자리에는 예측 가능한 대화가 오간다.
P는 늦지 않았다.
단정한 넥타이,
계산된 미소.
“처음 뵙겠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과하게 웃지 않았다.
말수도 적었다.
하지만 손목의 시계는 의도적으로 보였다.
하겸은 그 시계를 한 번 보고 눈을 내렸다.
임하겸의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도했다.
“요즘은 시스템이 중요하죠.
개인의 실수보다 설계가 중요합니다.”
설계.
하겸은 그 단어에 잠시 멈칫했다.
P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결과는 결국 구조가 만듭니다.”
두 사람의 말은 비슷한 결을 가졌다.
그 시각,
다른 건물 1층 카페.
고준원은 노트북을 열어두고 있었다.
새로운 아이디,
새로운 계정.
이름을 바꾼 뒤 이상하게도 더 조용해졌다.
조회수는 적었고,
댓글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급하게 올리지 않았다.
데이터를 쌓고 있었다.
전환율,
출제위원 겹침,
용역 계약 시점.
패배는 인정했지만
포기는 아니었다.
방법을 바꾸는 중이었다.
성시현은
그 건물 맞은편 병원에 있었다.
진료는 하지 않는다.
자문 형식으로만 출근한다.
이유를 묻는 사람은 없다.
그는 엘리베이터 안 거울을 보며
자기 이름을 떠올렸다.
성시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이름.
휴대폰에는 읽지 않은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발신자: 고준원.
그는 아직 열어보지 않았다.
선택은 항상 늦게 한다.
상견례 자리로 돌아간다.
술이 한 잔 돌았고,
분위기는 매끄러웠다.
P가 말했다.
“요즘 온라인에 이상한 글들이 많더군요.
근거 없는 의혹 제기 같은 것들.”
임하겸의 아버지가 웃었다.
“젊은 사람들이 정의감이 넘치지.”
정의감.
하겸은 물컵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P가 덧붙였다.
“근데 대부분은 오래 못 가죠. 흐름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 말은 부드러웠지만 명확했다.
흐름.
누가 만드는 흐름인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고준원의 화면에는 한 개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발신자 이름은 익명.
첨부 파일 하나.
“자문단 외부 추천 명단 일부.”
그는 파일을 열지 않고 잠시 창을 닫았다.
급하게 움직이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게임의 규칙부터 다시 설계할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직접 보게 만들 방식.
병원 복도에서 성시현은 휴대폰을 켰다.
고준원의 메시지를 열었다.
“그날의 기록을 알고 있습니다.”
짧은 문장.
그는 숨을 멈췄다.
그날.
그 단어는
항상 현재형으로 들린다.
그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대신,
저장해두었던 파일을 열었다.
사건 당시 공식 보고서 사본.
지워진 시간 표시가 하나 있었다.
3분.
그는 그 공백을 지금도 설명하지 못한다.
상견례는 끝나가고 있었다.
결혼 날짜가 대략 정해졌다.
“올가을이 좋겠군요.”
아버지가 말했다.
하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자기 의견은 장식에 가깝다는 것을.
하지만 오늘은 다르게 들렸다.
P가 무심코 한 말이 머릿속에 남았다.
“흐름은 만들면 됩니다.”
그 말은 누군가의 패배를
전제로 하는 문장이었다.
그날 밤,
임하겸은
휴대폰을 켰다.
고준원의 이름을 다시 검색했다.
조회수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글은 지워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만약 흐름이 만들어진 것이라면,
나 역시 그 안에 세워진 사람 아닐까.
성시현은 파일을 닫았다.
3분의 공백.
그는 알았다.
기록은 완전하지 않다.
그리고 완전하지 않은 기록 위에
누군가의 삶이 세워진다.
고준원은 새 문서를 열었다.
제목을 적었다.
“선택은 어떻게 설계되는가.”
이번에는 폭로가 아니라
구조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이야기가 아니라,
규칙을.
그들은 다르지만
같은 밤을 지나고 있었다.
아직 만나지 않았지만,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
14부|공백의 3분
기록에서 사라진 시간.
지워진 문장.
그리고
누가 그 공백을 만들었는가.
실체는 더욱 혼란스러워져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