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기어이 만개했다.
길은 하얗게 잠기고, 꽃잎은 제 무게를 잊은 듯 내려앉는다.
오래전 이 길을 함께 걸었다.
손을 잡고 나란히 맞추던 걸음걸이.
약속은 남지 않았고, 떨어지는 장면만 또렷하다.
이제 걸음은 예전 같지 않다.
무릎이 먼저 흔들리고 숨이 늦게 따라온다.
단단하다고 믿었던 몸은 금이 가 가벼워졌다.
나는 속도를 낮추고, 그녀는 내 곁에서 발끝을 본다.
내가 휘청일까 봐,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조심스레 내 소매를 붙잡고 어깨를 기댄다.
꽃은 아랑곳없이 내린다.
흰빛이 어깨 위에 쌓였다가 흩어진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지만 붙잡지 않는다.
붙잡는다고 머무는 것은 아니다.
내년의 봄을 말하지 않는다.
오늘의 빛만 그녀의 눈에 남겨둔다.
나는 여기 멈추고, 그녀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흩날리는 꽃잎 사이에서 나는 비켜 선다.
그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는 흰빛을 본다.
길은 끝까지 하얗다.
봄은 늘 빠르게 다가와, 흘러가고, 다시 쌓인다.
벚꽃이 만개한 길 위에서 나는 오래전의 나를 마주한다.
누군가와 함께 걷던 발걸음과, 말없이 전해지던 온기.
그 순간들은 붙잡기도 전에, 이미 꽃잎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오늘, 나는 걸음을 멈춘다.
붙잡을 수 없는 기억과, 그때는 알지 못했던 마음을 그대로 둔 채
그녀는 내 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알게 된다.
사람도 시간도, 붙잡는 쪽보다 먼저 떠나는 쪽이 더 빠르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늘, 뒤늦게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남지 않을 것 같던 순간들이
오히려 가장 오래 남는다.
흩날리던 꽃잎처럼,
잡히지 않던 장면들일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빛난다.
그리고 나는 안다.
멈춰 서 있는 이 순간조차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쌓이고 있다는 것을.
오늘의 빛과 봄의 바람과 벚꽃은
지금 이대로, 충분히 선명하다.
길은 끝까지 하얗다.
나는 오늘도 그 길 위에서
조용히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