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벚꽃은 멈추지 않는데, 나는 멈췄다

by 송필경

벚꽃이 기어이 만개했다.

길은 하얗게 잠기고, 꽃잎은 제 무게를 잊은 듯 내려앉는다.

오래전 이 길을 함께 걸었다.

손을 잡고 나란히 맞추던 걸음걸이.

약속은 남지 않았고, 떨어지는 장면만 또렷하다.


이제 걸음은 예전 같지 않다.

무릎이 먼저 흔들리고 숨이 늦게 따라온다.

단단하다고 믿었던 몸은 금이 가 가벼워졌다.

나는 속도를 낮추고, 그녀는 내 곁에서 발끝을 본다.

내가 휘청일까 봐,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조심스레 내 소매를 붙잡고 어깨를 기댄다.


꽃은 아랑곳없이 내린다.

흰빛이 어깨 위에 쌓였다가 흩어진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지만 붙잡지 않는다.

붙잡는다고 머무는 것은 아니다.


내년의 봄을 말하지 않는다.

오늘의 빛만 그녀의 눈에 남겨둔다.

나는 여기 멈추고, 그녀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흩날리는 꽃잎 사이에서 나는 비켜 선다.

그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는 흰빛을 본다.

길은 끝까지 하얗다.


봄은 늘 빠르게 다가와, 흘러가고, 다시 쌓인다.

벚꽃이 만개한 길 위에서 나는 오래전의 나를 마주한다.

누군가와 함께 걷던 발걸음과, 말없이 전해지던 온기.

그 순간들은 붙잡기도 전에, 이미 꽃잎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오늘, 나는 걸음을 멈춘다.

붙잡을 수 없는 기억과, 그때는 알지 못했던 마음을 그대로 둔 채

그녀는 내 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알게 된다.

사람도 시간도, 붙잡는 쪽보다 먼저 떠나는 쪽이 더 빠르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늘, 뒤늦게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남지 않을 것 같던 순간들이

오히려 가장 오래 남는다.


흩날리던 꽃잎처럼,

잡히지 않던 장면들일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빛난다.


그리고 나는 안다.

멈춰 서 있는 이 순간조차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쌓이고 있다는 것을.


오늘의 빛과 봄의 바람과 벚꽃은

지금 이대로, 충분히 선명하다.


길은 끝까지 하얗다.

나는 오늘도 그 길 위에서

조용히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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