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까지 내려오는 흰 가디건을 입은 그녀가
막 꽃망울을 터뜨린 라일락처럼 첫 장면으로
내 시선 속으로 스며들었다.
운명의 실타래 속, 우리는 이미 맞물려 있었다.
서로를 끌어당기고 밀어내며
두 행성이 중심을 향해 움직이듯 조용히 서로를 찾아갔다.
어둠이 깔린 골목, 가로등 불빛도 없는 밤.
그녀의 눈빛만은 온기를 품고
잠든 내 안의 적막을 살며시 깨웠다.
입술이 스치던 순간, 도시는 숨을 죽였고
나는 달콤한 미로 한가운데서 길을 잠시 잃었다.
시간의 심장이 한 박자 쉬어간 찰나였다.
빙긋, 그녀의 미소가 흘러내릴 때
세상의 밤이 가만히 풀려 녹았다.
그날 밤, 그녀는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나타났다.
흰 가디건과 라일락 향은 단순한 옷과 꽃이 아니라
내 마음에 깊게 새겨진 시간의 조각이었다.
그녀와의 짧은 순간을 떠올리면
골목의 어둠, 도시의 숨결, 그리고 가벼운 스침까지
모두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맞물려 있었고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모든 움직임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중심으로 흘러갔다.
짧았지만 그 시간은 특별한 기적처럼 오래 남았다.
지금도 나는 그 밤을 떠올리며
조용히 창가에 앉아
흰 가디건과 라일락 향을
다시 마음속으로 불러낸다.
멀어졌지만 그 빛과 향은 여전히 내 안에서
작은 빛으로 반짝인다.
그리고 깨닫는다.
사랑은 가까이 있을 때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기억 속에서도 그 빛과 온기는
여전히 내 마음을 감싼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