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어린왕자" 애니메이션을 보고
기독교인도 아니고, 커플이었던 적은 더더욱 없었으며, 좋은 점이라고는 게임에서 이벤트를 한다는 것 뿐이었던게 나의 크리스마스였다. 그러나 올해, 처음으로 크리스마스에 감사하고, 산타클로스에게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크리스마스에 맞춰 개봉한 어린왕자. 아직도 읽을 때마다 후유증이 심하며, 책은 종류별로 다 사들였고, 스스로 어린왕자증후군이라고 믿는, 아직 어른이 되기 싫은 나를 위한 애니메이션. 보는 내내 가슴이 미어오는 것을 참았기에, 응어리진 이 감정을 어떻게든 풀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정말 싫어하는 리뷰라는 것을 쓰게 되었다.
처음 어린왕자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는 말에 난 그저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미 원작 자체로도 완벽한 이야기이기에(개인적인 생각으론 그렇다) 각색을 한다면 오히려 사족을 붙어 원작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다 담아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여 제발, 원작을 크게 벗어나지 않기를, 그 안에 담겨있는 가치를 흐리지 않기를 바랐다.
헌데 극장을 가기 전 찾아보니 등장인물이 특이했다. "조종사", "엄마", 그리고 "소녀". 무언가 특이했다. 원작을 떠올려보면 "엄마"나 "소녀"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려는 것일까, 궁금증을 가진채 극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제작진의 각색에 감탄하며 감사하다 여겼다.
원작에서는 작가가 1인칭으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했다면, 애니메이션에서는 그 화자가 화면에 등장한다. 젊었을 적 사막에 추락하였을 때 왕자를 만났고, 그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을 찾았으나 이미 어른들 뿐인 세상에서 그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조종사". 그가 바로 어린왕자를 쓴 작가로 나온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들어주는 한 사람, 바로 "소녀"다. 명문학교 입시를 위해 이사를 오게 된 "소녀"는 옆집에 사는 괴짜 할아버지 "조종사"가 날려보낸 어린왕자의 첫페이지를 읽고는 그 이야기에 푹 빠지게 된다. 그리고 다음이야기가 궁금하다며 매일 "조종사"를 찾아가게 된다.
애니메이션은 그렇게 "조종사"가 자신의 경험을 "소녀"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책으로 읽을 때는 전혀 경험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어린왕자를 전해듣는 경험은 나에게 새롭고, 보다 더한 감동을 선물해주었다(화자가 할아버지였기 때문에 더욱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원작의 삽화를 너무나 좋아하는 나는 3D로 어린왕자가 표현되는 것 자체가 사실 그닥 반갑지는 않았다. 삽화도 어린왕자에서 중요한 요소라 여겼기에, 어린왕자가 너무 가벼이 표현되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다.
아마도 제작진도 이와 같은 고민을 해서일까. "조종사"가 이야기를 들려줄 때, 혹은 "소녀"가 어린왕자를 읽을 때면 애니메이션의 종류가 바뀐다. 평시의 영상이 일반적인 3D라면, 왕자가 등장하는 부분은 종이와 클레이가 혼합된 형태다.
이보다 더 어린왕자가 지닌 느낌(감성)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보는 내내 가슴 깊이 전해지는 소중한 메세지들을 느끼며 제작진이 얼마나 정성을 들여 이 애니메이션을 탄생시켰는지를 알 수 있었다(실제로 5년 반의 제작기간, 400여명의 제작진, 7,75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작진이 진심을 다해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는 점이고, 그것이 잘 전해진다는 것이다).
디즈니, 지브리, 드림웍스 등 애니메이션이라면 환장하면서 찾아보는 나이기에 감히 말할 수 있다.
지금껏 이보다 더 아름다운 영상을 지닌 애니메이션은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조종사와 어린왕자가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시작부터 눈물이 고였고, 조종사와 소녀가 함께하는 대부분의 장면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평소 신카이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유가 빛을 잘 활용하여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잘 살려내기 때문이었는데, 어린왕자는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섰다. 아기자기하며 예쁜 색들과 장면장면마다 전하고자 하는 느낌을 잘 살려주는 빛은 지금껏 볼 수 없었던 황홀함을 선물한다.
원작을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하며 읽었던 나는 애니메이션에서 전하고자 하는 의미들을 내 나름의 해석을 통해 전달받았고, 본 의미가 무엇이든 내가 느낀 메세지들을 정리해 보았다.
책의 서문에 작가가 적어놓은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모든 어른들도 한때는 어린이었다(하지만 아주 소수만이 그것을 기억한다)."
제작진은 작가의 서문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원작에서 전하는 메세지들 중 이 내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다. 어른을 위해 어린왕자를 쓴 것에 대해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던 작가의 말과, 그 속에 숨어있는 작가의 본심을 제대로 파악한 것 같다.
어른이 되기 싫다는 소녀에게 조종사는 '어른들도 처음엔 아이였다, 그걸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전개되는 과정을 통해 어른들의 모습(어쩌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통해 모든 어린이들은 어른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통해 조종사는 소녀에게 '훌륭한 어른'이 될거라고 말한다. 즉, 소녀도 언젠가는 어른이 되겠지만 지금 느끼는 소중함들을 잊지 않을 것을 알려준다.
4-2. "조종사", "소녀", "엄마"
애니메이션에는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할아버지(조종사), 아이, 엄마만이 등장할 뿐이다. 이는 어쩌면 애니메이션 속 등장인물이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릴적의 순수함(꿈)을 그대로 유지하며 주변에서 괴짜로 여겨지는 조종사,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이의 평생의 스케쥴을 짜두고 그대로 살아가도록 지시하는 엄마, 그런 엄마의 아래에서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찾으려는 소녀.
너무 익숙하지 않은가?
세상(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은 성인이 되어서도 아직 순수함, 또는 꿈을 쫓는 사람들을 보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을 사회부적응자로 여겨 별종 취급을 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이 다른 아이들에게 뒤쳐지는 것을 두려워해 학원을 보내고, 공부를 시키면서 정작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방황하며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마저 잃어버렸다(애니메이션 첫 장면에서 '커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하는 질문에 소녀는 대답 대신 엄마가 외우도록 한 다른 질문의 답변을 줄줄 말한다).
4-3. 세상엔 어린왕자가 존재한다-
제작진은 몸이 편치 않은 조종사를 위해 떠난 소녀의 여행에서 어른이 잊고 살던 어릴적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해주는 모습을 통해 다음과 같은 메세지를 전달한다.
"어린왕자는 현실에 존재하며, 이는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어른(우리 모두)'와, 사막에서 조종사에게 진정 소중한 가치를 알려주듯 어른이 품고 있는 어릴적 모습을 다시 깨닫게 해준 소녀(우리의 아이들)이다."
'중요한 일', '숫자', '통계'라는 현실에 파묻혀 살아가는 것도 어른이지만, 진정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깨닫게 된다면 우리도 언제든 다시 어린왕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5. 마치며-
글을 쓰다보니 처음에 떠올랐던 느낌들을 그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주절주절 길게만 늘어졌던 것 같다. 내가 느낀 감동을 그대로 담아내고 싶었지만(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일어나질 못했는데, 나 혼자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부족한 글재주로는 분명 한계가 있으니 꼭 극장에 가서 보길 바란다. 분명한 것은 어린왕자는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이며, 어린왕자를 읽어보았든 그렇지 않든 애니메이션은 당신에게 헤어나오지 못할 감동을 전달할 것이다.
연말에 우리를 찾아 머나먼 소혹성B612에서 여행을 나온 어린왕자를 기쁜 마음으로 반기러 가보는 것은 어떨까.
* 극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어른은 나 뿐일까 생각했었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던 어머님이 함께 눈물을 훔치셨다. 그리곤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아이와 함께 자리를 지키셨다. 분명 이 어머님의 아이도 훌륭한 어른이 될거라 생각했다.
** 한 여학생은 영화가 끝나고는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친구들이 "영화가 슬퍼서 울어?"라고 묻는데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했다. 아마 그 학생도 내가 느꼈던 가슴 속의 울림을 느꼈으리라. 소중한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을 말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